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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십자가는 '희생'과 '낮아짐'과 '생명'이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다. 기독교가 자신을 세상에 명함을 내민 후 예수의 십자가는 자신들의 존재근거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는 자신들의 존재 근거를 예수의 십자가가 아니라, 교리와 예식과 의식, 그리고 자신들의 세속적 권력에 두고 말았다. 그중에 중세의 '십자군 전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십자군>의 십자가는 '죽임'과 '오만함'이었다. 예수의 십자가가 생명을 위한 피흘림이라면 십자군의 십자가는 살육의 피흘림이었다. 십자군의 십자가는 신의 이름을 도적질한 모욕의 십자가였다.

▲ <십자군 이야기 1>
ⓒ 길찾기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2>는 신의 이름, 십자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으며, 그 만행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를 들추어 냄으로써 현재 기억의 망각을 획책하는 자들에게 도전했다.

"과거의 교훈을 되살리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폭력에 맞서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대중의 기억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많은 사람의 기억을 조작하고 싶어한다. 글 쓰는 사람을 매수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비싼 돈을 들여 여론을 호도하며, 심지어 군대를 풀어 약한 자들의 입을 틀어 막는다. 기회가 올 때마다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일어서서 싸울 것이다. 기억이 남아 있는 한, 폭력은 아직 승리한 것이 아니다." (본문 5쪽 인용)

폭력과 불의로 인민을 폭정으로 억압한 자들은 과거 회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현재와 미래 시대를 화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한다. 과거 친일부역자들의 후손들이 되풀이하는 것을 보면 김태균의 말이 맞는 말이다.

십자군 전쟁의 명분이었다. 무슬림의 성지 순례자들의 박해는 사실인가? 아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해적이 나타나는 일도 있었고, 그들 가운데 무슬림 출신이 있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여전히 기독교에게 무척 안전한 곳이었다. 무슬림에 의한 박해가 십자군 전쟁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서유럽에서 '아님 말고'식으로 퍼뜨린 흑색 선전에 지나지 않았다." (본문 178쪽 인용)

평화를 위협하는 이는 무슬림이 아니라 서방이었다. 어디서 많이 보았던 장면 같다. 미국 주도로 수행되었던, 수행되고 있는 수많은 전쟁은 미국 자신이 위협의 당사자이지만 폭격당하는 나라라고 지금도 서양 언론과 서양을 추종하는 이들은 평화위협 세력을 무슬림이라 외치고 있다. 십자군 전쟁이 지난 지 1000년이 흘렀지만 동일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곡된 평화 위협 세력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들 십자가군들은 어린아이들을 데려다 팔다리를 찢어 죽였다. 몇몇 어린아이들은 나무 말뚝에 꽂아 불에 굽기도 했다. 저건 희생자가 아닙니다. 저건 단지 '부차적 피해'올시다. 오인 공격에 의한 '부차적 피해' 말입니다." (본문 198쪽 인용)

"미 국방부 관계자는 15일 이라크 민간인 희생자의 수를 집계할 계획이 없다, 고 밝혔다. 미공군 관계자는 국방부가 공습의 부차적 피해를 조사하면 그 결과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문 199쪽 인용)


그렇다 참혹한 죽임이다. 그 죽임을 당하는 이들은 아무 죄가 없다. 죄 없는 그들을 죽이면서도 그들은 죄책감이나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다. 진짜 평화위협세력의 눈에는 죄없이 죽어가는 이들이 고귀한 생명은 '부차적'인 것이다. 부차적이라는 의미 속에는 '인간'이라는 존엄한 존재가 아님을 의미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말 얼마나 죽어야 그들은 전쟁을 끝낼 것인가?

정말 예수의 십자가를 안다면, 믿는다면 부차적 죽음을 만들어가는 이들이여, 당신들의 입에서는 '십자가' '평화' '인간의 존엄'을 말하지 마라.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의이며, 평화에 대한 예의이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십자군 이야기 1·2>은 십자가를 모욕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였다.

덧붙이는 글 | <십자군 이야기 1․2> 김태권 ㅣ 길찾기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르, 개정판

김태권 글.그림, 비아북(2011)


#십자군 이야기#김태권#길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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