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영화를 찍으려는 영화인들에게 반가운 소식하나. 전주시가 지난 8월 28일 결의한 '영화지원 유관기관 협의회' 구성이 그것이다. 전주영화제는 물론 영화제작사의 영화제작 등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원스톱'으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영화촬영유치 및 섭외·헌팅, 영화제 운영 등을 맡게 되는 총괄운영단을 비롯해 행정·현장·제작·민간지원단 등 5개 조직으로 구성되며, 영화촬영 때 교통통제와 소품·차량·인력 등을 일괄적으로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한다는 기쁜 소식이다.
이제 전주를 영화의 도시라고 부르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듯싶다. 영화를 찍기 위해 전주에 오는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이 전주에서 처음 마주치게 되는 사람이 누구일까? 아무래도 이 지역 로케이션을 책임지는 스태프들이 아닐까.
그 가운데는, 스크린 속 멋진 풍경 한 컷을 찾아내기 위해 전주시 현장 곳곳을 발로 누비고 다니는 전주영상위원회의 로케이션팀이 있다. 올해로 4년차에 접어든다는 이세리 로케이션팀장을 5일, 전주영상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나보았다. 마침 때 아닌 장맛비가 한창이었다.
안소민(이하 안) : "올해는 비가 참 많이 내리네요. 이런 날 헌팅 다니려면 힘들겠어요?"
이세리(이하 이) : "그래도 해야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매력 있는 게 이 일이예요."
안 : "며칠 전 전주시에서 발표한 '영화지원 원스톱 시스템' 기사를 보았어요. 영화인들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 될 것 같네요."
이 : "네. 그렇죠. 지금도 전주에 영화 찍으러 오는 팀들이 많긴 한데, 아마 시스템이 잘 구축되면 더욱 좋아질 것 같아요."
안 : "지난 전주국제영화제 때 전주에서 촬영한 영화의 포스터를 전시해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전주에서 촬영한 영화가 의외로 많더군요."
이 : "많은 분들이 그 사실을 잘 모르세요. 영화촬영지라고하면 남이섬이나 안면도 같이 관광특구가 되어버린 몇몇 장소를 떠올리는 것이 대부분이니까요. 그런데 전주의 경우에는 정류장, 골목, 천변, 학교와 같이 우리 주위에서 아주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곳들 대부분이 촬영지예요. 너무 평범하고 일상적이니까 기억을 잘 못할 수밖에요."
영화촬영지, 꼭 유명관광지가 돼야하나?
안 : "그래도 로케이션팀 입장에서 봤을 때는 영화 속 장소가 관객들에게 잘 알려지고 기억되면 좋지 않을까요?"
이 : "전주는 그런 관광지와는 엄연한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어, 겨울동화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남이섬의 경우, 배용준의 일본팬들을 겨냥해 철저히 상업적인 목적을 계산에 두고 만들어진 곳이거든요. 그렇게 상업적으로 나갈만한 장소는 따로 있어요.
하지만 전주는 그런 곳과는 색깔이 좀 다르죠. 여건이 다르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한옥마을을 영화촬영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돈을 쏟아 부어 인위적으로 따로 다듬을 필요는 없죠. 그냥 영화 속 자연스러운 한 장면으로 기억되었으면 해요. 영화를 보면서 '어 저기, 느낌이 참 좋다, 한 번 가고싶다' 그렇게 느낀 사람들이 한 번씩 와서 둘러보고 가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별 것 아닐 것 같지만 그게 은근히 저력이 있거든요."
안 :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나요?"
이 : "정확한 수치가 나와 있지 않아서 그렇지 영화 속 그 장면을 보기위해 찾는 분들이 꽤 많아요. 그런 분들이 한옥마을과 같은 전주의 명소를 보기 위해서 오겠어요? 자신이 봤던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오는 거라고요. 그곳이 병무청 사거리, 동문거리 같은 곳이에요. 전주시민들이 보기에는 절대 관광지가 될 수 없는 곳들이에요. 그런데 왜 이곳을 찾느냐? 바로 자신이 봤던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이기 때문이에요.
몇 년 전 <말죽거리잔혹사>가 개봉하고 일본에서도 소개되었을 때 일본의 권상우 팬들이 이곳에 찾아왔어요. 영화 속에서 권상우가 거닐던 곳을 가고 싶다고요. 근데 거기가 어디였냐면 정읍 칠보중학교 앞이었거든요. 근데 그 앞이 논 밖에 없는 거예요. 관광사측에서 난감해했죠. 한마디로 볼게 없는 곳이거든요. 그런데도 그분들 끝내 왔어요. 단지 영화에 등장하는 곳이라는 이유로요."
반짝 히트보단 끊임 없이 찾게 만들어야
안 : "어쩌면 전주시에서 기대하고 있는 관광객들의 성향도 그러한 부류겠군요."
이 : "그렇죠. 사실 유명관광지로 잘 알려져서 반짝 크게 히트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끊이지 않게 그곳을 찾는 관광객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멀리 내다봤을 때 이것이 더 큰 효과가 있어요."
안 : "사실 저 역시 전주에 살고 있지만 영화 속에서 전주가 등장하는 장면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너무 평범한 풍경이라 그럴 수도 있겠죠. 대표적인 영화로는 어떤 게 있나요? <날아라 허동구>는 너무 유명해서 말할 필요도 없지만요."
이 : "<날아라 허동구>는 전주를 홍보하기위한 목적이 뚜렷한 영화였어요. 원래 작가분이 배경을 전주로 해놓았으니까 학생들 운동복에 '진북(초등학교)'을 새겨 넣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죠.
작년에 이곳에서 영화 참 많이 찍었어요. 작품 색깔도 제각기 참 다양해서 재미있게 일했던 기억이 나네요. 음… 언뜻 떠오르는 작품으로는 <타짜>가 있네요. 전주 동문사거리 일대에서 촬영했어요. 왱이콩나물국집 있는 곳이요. 김혜수씨 사무실로 등장하는 곳은 전주 동문사거리의 한 집을 수리한 것이고요. 그 밖에도 <주홍글씨> <한반도> <오래된 정원> <화려한 휴가>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요. <오래된 정원>에서 지진희와 염정아씨가 사는 집은 실제로 전주시 색장동에 있는 한 집이예요.
<화려한 휴가>의 경우 대부분의 관객들이 전부 광주에서 촬영한 줄 알겠지만 대부분 전주에서 촬영했어요. 금남로 세트가 광주에 있어서 그런 영향도 있겠지만요. 극중에서 이요원과 이준기가 함께 다니는 성당이 노송동 성당이에요. 그리고 전주 동물원, 덕진공원 등 영화 속에 전주시의 곳곳이 등장해요."
안 : "와~ 저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어요. 전주에서 그렇게 많은 영화를 찍은 줄을요. 자 그럼, 본격적인 질문. 왜 전주에서 영화를 많이 찍는다고 생각하세요?"
이 : "우선 전주가 가지고 있는 전주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날아라 허동구>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에 기자들이 감독님에게 건넨 말 중에 '전주가 이렇게 따뜻하고 밝은 곳인 줄 몰랐다'는 거예요. 근데 실제로 이곳에서 촬영을 하고 난 뒤 감독님들이 한결같이 말해요. 카메라로 바라볼 때 풍기는 전주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고요. 색깔로 치자면 주황색 노랑색 그 정도 되죠.
그러다보니 좀 살벌한 영화들 있잖아요. 살인영화라든지, 호러, 추리, 액션, 조폭, 마약영화같은 것은 전주와는 좀 각이 안 맞는다고 그래요.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촬영한 뒤에 카메라로 필름을 보면 이상하게 그 느낌이 안 나요. 좀 야비하고 차갑고 스산한 그런 느낌 있잖아요. 전북에서는 군산이 대표적인 경우에요. 색깔로 치자면 무채색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그런 영화들은 대개 군산에서 찍죠. 어쨌든 이런 이유로 전주에서 찍은 영화들 보면 대개 성장영화, 가족영화 같이 따뜻하고 재미있는 그런 영화들이 대부분이죠."
전주시민, 영화의 도시 만든 일등공신
안 : "따뜻함, 밝음... 무조건 그것만으로 전주를 찾는 것은 아니겠죠. 영화인들이 전주를 자주 찾는 이유 중에 특별한 게 또 있을 것 같은데요."
이 : "아까 시작할 때 '원스톱 시스템'을 말씀하셨는데 그거예요. 영화하기 편하도록 관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거죠. 관공서나 공공단체나 시민·문화단체 같은 곳에서 영화촬영 하는 데 많이 힘이 돼줘요.
일례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경우, 작년만 해도 공연장면 씬을 몇 컷이나 찍었는지 몰라요. 아마 전국의 대규모 공연장치고 소리문화전당같이 영화촬영을 많이 한 곳도 드물 거예요. 이곳 직원들의 서비스 마인드 자체가 영화촬영에 굉장히 우호적이에요. 물론 이것은 제 얘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곳에서 영화를 찍은 감독들이랑 스텝들 이야기예요. 하지만 더 큰 이유가 하나 있죠? 그게 뭔 거 같아요?"
안 : "글쎄요. 먹거리?(웃음)"
이 : "물론 먹거리도 중요하죠. 이곳에서 영화를 찍고 가신 분들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전주에서 영화를 찍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전주시민들 때문이래요."
안 : "아! 그렇군요. 어떤 점에서요?"
이 : "영화촬영 하는데 전주시민들처럼 적극적이고 협조적인 분들이 없다는 거예요. 영화촬영 할 때 좀 불편을 끼치거나 방해를 해도 상황설명을 듣고 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신데요. 그리고 하는 말들이, 왜 전주가 양반의 도시인줄 알겠다고 그래요.(웃음) 사실 아무리 영화 이해한다고 해도 하루 이틀이죠. 작년에 전주에서 촬영한 영화가 62편이예요. 그것도 완성된 영화만 놓고 봤을 때요. 접수가 된 것까지 포함시키면 대략 200편이 넘어가는데 누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구한 날 와서 영화촬영 하는 것을 좋다하겠어요. 그런데도 정말 잘 이해하신다는 거예요."
안 : "아마 전주국제영화제라는 국제행사도 한몫했을 것 같아요. 처음에 국제영화제를 한다고 했을 때는 왜 이런 걸 하냐며 아니꼬운 시선을 보내는 분도 있었다고 해요. 물론 지금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가 갈수록 많이 완화되고 있어요. 영화를 좋아하게 되는 거죠."
이 : "네. 아마도 그런 분위기가 영화촬영현장에도 그대로 전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보이지 않게 마음에서 마음으로요."
(2부에서는 영화 속 명장면 한 컷을 잡기 위해 발이 마르고 닳도록 뛰어다녀야했던 이세리 팀장의 고군분투, 좌충우돌 로케이션 매니저 활약상이 펼쳐집니다.) 덧붙이는 글 | 선샤인뉴스(http://sunshinenews.co.kr)에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