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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 소장 이 소장은 '외국어고 폐지'를 뼈대로 한 교육부 정책보고서를 책임 집필했다.
▲ 이종태 소장 이 소장은 '외국어고 폐지'를 뼈대로 한 교육부 정책보고서를 책임 집필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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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외국어고, 과학고) 폐지론이 교육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런 논의에 불을 지핀 사람이 있다.

지난 5월 초, 한 권의 정책보고서를 손에 받아든 교육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제목은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중장기 운영 방향 및 발전방안 연구'. 다른 곳도 아닌 교육부가 의뢰한 정책연구보고서였다.

내용은 '외고와 국제중고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 교육시민단체들도 특목고 해체론을 대놓고 얘기하지 못할 상황에서 정부 공식보고서가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이다.

지난 6일 오후 2시. 서울 정부중앙청사에서는 교육부의 브리핑이 진행됐다. '특목고 신설을 전면 유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시간, 나는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있는 한 사무실을 찾았다. 이 정책보고서를 책임 집필한 이종태 한국교육연구소장(51·교육혁신위원회 위원)을 만나기 위해서다.

학자인 그가 강태중 중앙대 교수와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 이윤미 홍익대 교수 등과 함께 왜 돌을 맞을지도 모를 엄청난 일을 벌인 것일까. 그는 막힘없이 그 까닭을 설명했다.

"일부 대학의 내신 무력화, 외고생 더 뽑기 위한 것"

- 정책보고서 내용이 놀랄만한 것이었는데도 일반 언론들은 외면했다. 정책보고서 결론이 외고 폐지를 주장한 것이 맞나?
"정확히 봤다. 지금과 같은 외고와 국제중고 체제를 그대로 두면 결국 공교육은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제도는 하루라도 빨리 폐기해야 한다는 게 연구의 결론이었다."

- 어떤 폐단이 있었다는 것인가.
"외고는 사교육 유발의 주범이다. 학교교육으로는 절대 외고를 갈 수 없다. 외고 준비생은 반드시 학원으로 가든가, 조기유학을 하러 외국으로 가야 한다. 특정집단을 위한 대입명문고라는 학벌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나라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주요대학의 내신 무력화 이유도 결국 외고생들을 더 뽑기 위한 것 아니었나."

- 연구진으로 참여한 세 명의 교수와 이 소장도 학자인데, 점잖은 분들이 다소 과격한 방안을 제시한 것은 아닌가.
"막상 연구에 뛰어들어 외고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폐단은 예상보다 컸다. 교육학자라면 우리나라 특목고 체제에 대해 조금만 들여다봐도 문제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학자적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연구했고 그 결과를 교육부에 보냈을 뿐이다."

- 평준화 교육을 보완하기 위한 '수월성 교육'도 필요한 것 아닌가.
"지금의 외고 상황을 보면 '수월성 교육'이란 말이 아깝다. 초중고 시절 건전한 경쟁을 통해 수월성 교육을 추구해야지 지금 특목고 상황은 그게 아니다. 일부 부유층이 자녀를 학원에 보내 문제 푸는 연습을 시켜서 들여보내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무슨 수월성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이런 구조에서 공정한 게임은 사라졌다. 그들만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다."

- 그래도 요즘 신문을 펼쳐보면 외고생들의 외국 유명대학 진학 소식도 많이 나온다. 서울대도 많이 들어가고….
"외고가 미리 학원에서 연습을 많이 한 학생들을 뽑아놓거나 우수한 학생을 모은 것이니 당연한 결과다. 이런 학생들은 일반계에 있어도 결국 같은 결과를 나타낸다. 우수한 아이들을 전체 고교에 흩어놓는 것이 오히려 학업성취도가 더 높다는 선행연구 결과도 많다. 외고에 우수학생들을 모아놓는 것은 국가적 인적자원이란 측면에서 봐도 부정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 지금 이 시간 교육부가 '특목고 신설 유보'를 발표하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특목고는 평준화 보완이라는 이름으로 평준화를 부정하기 위해 만든 제도였다. 이는 평준화를 해체하려던 노태우 정권의 지시에 따라 92년부터 외고가 특목고에 포함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과학영재라는 말은 성립되지만 어학영재라는 게 말이 되지 않는 논리다. 여태껏 교육부의 정책은 참여정부의 정책이라고 할 수 없었다.

뒤늦게라도 교육부가 추가 설립에 제동을 건 것은 당연한 조치다. 다만 1년 전에 발표해야 가닥이 잡히는 것인데 외고 폐지로까지 실행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선거용이라는 비판도 있겠지만 공교육 정상화란 교육적 차원에서 외고 문제를 진지하게 재검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일부 보수신문, 양심 의심케 하는 잘못된 보도"

- 특목고와 같은 선택확대, 수월성 교육이 세계적 추세라는 게 보수신문의 교육논조다.
"기자적 양심을 의심케 하는 잘못된 보도다. 연구를 하면서 외국 사례를 살펴본 결과 영재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례들에서도 우리의 '특목고'와 같은 양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영재교육의 천국인 미국과 싱가포르도 우리나라의 특목고 형태 대신 일반 학교 안에서 특별한 서비스를 받고 있다. 특별한 대상이 되는 학생들이라도 학교 종류를 달리하기보다는 보통의 학교에서 교육과정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일부 보수신문들이 특목고 학원과 손을 잡고 돈벌이에 나선 지는 벌써 꽤 됐다. 이들은 이번 특목고 대책에 대해서도 거센 반발을 할 것으로 보이는데.

"외고학원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일부 신문을 보면 신문이 망하더라도 (이런 돈벌이를 통해)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웃음) 언론사가 사교육기관과 함께 직접 외고 대비 모의고사를 치르는 등 돈벌이를 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 일부 보수신문의 반발은 특정 세력의 교육특혜를 보장받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그들의 이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교육 없는 특목고 입시, 상상할 수도 없어"
교육부 정책연구보고서 어떤 내용 담았나
특목고 보고서 표지 교육부가 발행인으로 되어 있다.
▲ 특목고 보고서 표지 교육부가 발행인으로 되어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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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개의 외국어고와 2개의 국제중, 2개의 국제고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교육부가 위탁한 정책연구보고서에서 이들 학교제도를 사실상 폐지하는 방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특수목적고의 중장기 운영 방향 및 발전방안 연구'란 제목의 보고서는 올해 2월에 제작되어, 3월 말쯤 교육부에 공식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책자에 적힌 이 보고서의 발행인은 교육부였다.

이 보고서에서 연구진(연구책임자 이종태)은 "외국어고는 특목고로서 유지될 하등의 근거가 없으며 따라서 제도 자체의 폐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연구를 맡긴 곳은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과다. 연구책임자는 이종태 한국교육연구소 소장이고 강태중(중앙대)·성기선(가톨릭대)·이윤미(홍익대) 교수가 공동연구자로 참여했다. 교육부 구영실 사무관도 연구협력관으로 연구에 함께 했다.

보고서가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이들 학교가 사회에 끼친 악영향은 심각했다.

첫 번째로 꼽은 것이 사교육 창궐이다. 보고서는 "특목고 대비 사교육기관은 입시정책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불패신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와 같은 특목고 선발 방식에서는 사교육 없는 특목고 입시준비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심국제중은 2005년 특정 학원과 전국을 돌며 입시설명회를 열었고, 대일외국어고는 학원장을 초청해 입시 설명회를 열었다가 기관경고를 받기도 했다.

다음으로 보고서가 꼽은 악영향은 고교 평준화 제도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특목고가 확대된다는 것은 바로 평준화 무력화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학벌과 폐쇄적 특권 집단이 형성되어 '그들만의 리그'를 하고 있다는 진단도 내놨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사실상 외국어고와 국제중 제도를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이들 학교를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일체의 증설이나 증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대국민 선언"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일부 유력 계층의 목소리에 경도된 언론의 여론 몰이를 막지 못할 경우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주간<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종태#외국어고#외고#특목고#과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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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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