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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그 많던 사과가 다 어디 갔지?"
"이런 한발 늦었네, 또 따갔군, 또 따갔어!"


지난 17일 서울 양재 나들목을 지나던 기자는 놀라움과 허탈감에 빠졌다. 빨갛게 주렁주렁 열려 있었던 맛나 보이던 사과가 대부분 없어졌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몰염치한 시민들이 채 익기도 전에 사과를 서리해갔던 터라 올해도 또 그러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이 되던 터였다. 그러나 올해는 사과가 빨갛게 익을 때까지 그런 조짐이 없는 듯 했다.

 

그런데 아뿔싸 수확하기 직전 또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이번에 서리를 맞은 사과는 기자가 추정 해 본 결과 대략 4500여개 정도, 박스(15kg기준)로 치면 90~100여 박스 정도로 그 양은 생각 보다 매우 많다.

 

기자는 사과가 서리를 맞기 1주 전 서초구청 해당 관리부서인 가로수정비팀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곧 구청직원들이 사과를 따서 요양원 등에 보낼 예정이라는 계획을 알고 취재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면 사과 따는 날 취재를 하려고 하니 꼭 연락을 해 주세요"하고 부탁도 했다. 그런데 한발 늦은 것이다. 사과를 서리하려는 사람들의 성미가 아무래도 급했고 행동도 한발 빨랐다.

 

"사과를 따신 건가요? 아니면 서리 맞은 건가요?"
"그러게 말이에요, 요양원 등 불우한 시설에 보낼 예정이었는데 벌써 다 따 가버렸네요."
 

 

서초구청 담당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그녀 역시 허탈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로 사과는 누가, 그리고 언제 따 가는 건가요?"
"낮에 구청으로 신고 전화가 가끔 옵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차를 대놓고 사과를 막 따고 있어요, 빨리 와서 좀 못 따게 해주세요' 이렇게 시민들께서 다급하게  신고 전화를 가끔 하십니다. 그래서 바로 현장에 출동해서 가보면 이미 따가고 사라진 상태구요."

 

"대낮에 그렇게 따 간단 말인가요? 우와~ 낯 두꺼운 사람들 많네요!."

 

기자는 기가 찼다. 어떻게 백주 대낮에 차들이 줄줄이 다니며 차에 탄 그 많은 사람들이 빤히 쳐다 보고 있는데 사과를 따 갈까?

 

기자는 매일 같이 이곳 사과를 보며 출퇴근을 했던 터라 사과에 대한 애정은 남 달랐고 본격 취재가 시작되기 불과 며칠 전 이런 일이 벌어지니 더욱 더 허탈했다.

 

올 한여름 동안 사과는 비가 많이 왔음에도 간간히 비쳐지는 햇볕으로 서서히 빨갛게 익어가기 시작했었다. 어느새 무더위가 끝나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 둘째주에 접어들자 사과는 탐스럽게 잘 익었었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사과나무는 2005년 12월 서울 서초구청과 충남 예산군 농업기술센터가 자매결연을 맺고 예산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양재나들목 주변에 무료로 사과나무를 심은 것이다.

 

심은 사과나무는 조생종 갈라품종 150주와 후지품종 150주, 모두 300주 라고 한다. 서초구청은 이곳을 일명 '사과공원'이라고 명명하고 관리를 해오고 있었다.

 

2006년에 첫 사과열매를 맺었으나 조류 피해가 심해 대부분 사과를 수확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올해는 새가 사과 쪼아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물망을 쳐 놓았다.

그런데 올해는 걱정했던 조류피해는 망 덕분에 다행히 없었는데 빨갛게 잘 익은 사과가 탐스러웠던지 이 사람 저 사람이 하나 둘씩 따가서 결국에는 남은  것이 없을 정도로 사과나무가 휑해졌다. 결국 조류보다 사람들이 문제였다.

 

서초구청에서는 사과가 완전히 익을 때를 기다리며 날을 정해 수확해서 요양원이나 불우한 시설을 방문해 전달을 할 예정이었다

 

이제 이곳에는 아직 비교적 늦게 여무는 후지사과가 남아 있다. 지금 이 후지 사과도 이제 햇볕을 받으며 빨간 빛깔이 올라오며 익어가고 있다.
 

사과가 본격적으로 익는 10월쯤 또 한번의 '대서리'가 시작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번에는 구청에서 발 빠르게 움직여 이 후지사과만이라도 불우시설에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가로수 사과를 따갈 만큼 대담한 시민들은 누구인지 그 얼굴이 참 궁금하다.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를 보는 재미와 따서 불우한 곳에 나누는 재미를 실현할 날은 결국 오지 않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취재에 협조해 주신 서초구청 가로수정비팀 박고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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