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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중요" 문정우 <시사IN> 편집국장이 19일 지역 언론학교에서 열띤 강의를 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중요"문정우 <시사IN> 편집국장이 19일 지역 언론학교에서 열띤 강의를 하고 있다. ⓒ 박주현

"신문을 보면서 욕을 해대는 고질병까지 도지고 말았다. 신문기사에 나오는 사람을 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신문 그 자체에 육두문자를 퍼붓는 버릇이 생겼다."

얼마나 신문에 파묻혀 살기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침 밥상에서까지 육두문자를 퍼붓는 것일까. 그것도 소리 없는 종이와 활자에 대고 욕을 해대다니. 어쨌든 그 열정이 대단하다. 새 매체 창간을 위해 밤잠을 놓친 탓이라고 말하지만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사주로부터 독립하라', '편집권 침해 용서 못 한다'. '머독의 돈 언론엔 독?', '신정아 22시간 인터뷰' 등 제목만 봐도 굵직한 이슈의 내용을 가득 담은 <시사IN> 창간호를 불과 2개월 반 만에 만들어 낸 주역이다. 누구일까.

"신정아 단독 인터뷰기사로 1500부 더 팔렸다"

문정우 <시사IN> 편집국장이 모처럼 지방 나들이를 했다. 19일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한 지역 언론학교 강의를 위해 전주를 찾았다. 원고나 특별한 자료 없이도 그는 2시간 동안 열띤 강의를 했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된 그의 강의는 9시까지 쉼없이 이어졌다. 2006년 6월 16일 심야에 삼성 이학수 부회장 관련 경제면 2쪽 기사를 경영주가 인쇄소에서 삭제하면서 촉발된 <시사저널> 사태에서부터 지난 15일 새로운 시사 주간지 <시사IN>의 창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그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는 1년 3개월의 험난한 투쟁 일정을 하루도 빠짐없이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신정아씨가 장장 22시간 동안 <시사IN>과 인터뷰를 해준 덕분에 자발구독이 1500부 이상 올랐다고 자랑하는 그는 "아마 잡지사상 창간호가 이처럼 호응을 얻은 것은 처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후원한 성금 및 소액주주들이 낸 20억 원과 정기독자 6000명의 자산으로 출발한 <시사IN>이지만 "싸워서 만든 언론이기에 더 잘한다는 소릴 듣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올 1월 <시사저널> 전 기자들이 파업투쟁을 하면서 펜을 놓은 이후, 7개월 만에 취재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21세기 한국 언론 현장에서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다"며 그는 본론을 끄집어냈다.

"특정 기업에 대한 감정과 갈등이 폭발한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고 문 국장은 말한다. "언제부턴가 사내 기자들의 광고요원화, 또는 기사와 광고 바꿔치기 등이 자연스럽게 오르내리면서 경영진과 편집국 사이에 갈등이 잦아지더니 결국 폭발한 게 <시사저널> 사태"라고 그는 정의했다.

"언론과 자본권력 간의 투쟁이 가장 격렬하게 터져 나올 곳에서 가장 극력하게 터졌을 뿐"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짧은 투쟁기간이었지만 두 가지 절실하게 느낀 점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자본권력이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고, 다른 하나는 언론이 더 이상 이러한 자본의 힘에 눌려서는 안 되겠다는 두 생각이 늘 교차했다고 말한다. 

향후 편집국 운영방안에 대해서도 그는 "독립언론, 민주언론의 기본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부끄럽고 아직 갈 길이 많다"는 문 국장은 "항상 기본에 충실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연내 정기독자 2만 명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뉴스가치를 높이는데 더욱 충실하겠다"고 솔직히 말하기도 했다.

국내 언론의 유형은 운동하는 언론, 정치하는 언론이 있지만 끝까지 언론하는 언론이 될 것이라는 문 국장은 '깊이'와 '진실'로 승부를 걸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래서 편집국을 뉴스팀과 탐사팀 둘로 나눴다고 그는 말한다.

"가장 고맙지만 무서운 건 독자" 백승기 <시사IN> 발행인 겸 사진팀장은 독자들이 가장 고마운 존재이면서도 가장 무서운 존재라며 독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장 고맙지만 무서운 건 독자"백승기 <시사IN> 발행인 겸 사진팀장은 독자들이 가장 고마운 존재이면서도 가장 무서운 존재라며 독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박주현

"가장 고맙고 무서운 건 독자라는 사실"

"전 세계의 독립언론들과 나란히 경쟁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시사IN>이 창간한다고 하자 주변에서 '이제 삼성은 죽었다'라는 말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복수혈전'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게 낫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고 한다.

뉴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었을 때는 관련 기사를 과감히 내보낼 수 있지만 손봐주기 식, 또는 물어뜯기 식 보도는 절대 지양한다는 것이다. "삼성광고도 특별히 하자가 없는 한 못 받을 이유가 없다"고 그는 말했다.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경영과 편집의 분리 원칙은 반드시 지켜나가되 뉴스가치의 잣대는 항상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지역 언론들도 기본에 충실하고 뉴스의 가치를 좀 더 향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충고 또한 빠뜨리지 않았다.

한편 이날 전주를 함께 방문한 <사시IN> 백승기 발행인 겸 사진팀장은 "거대자본이 만드는 언론이 일정부분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성공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우리는 좀 더 확실하게 그들과 다르게 더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많은 독자들이 초심을 잃지 말고 변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을 뿐 아니라 우리들에게 믿음과 기대를 갖고 성원을 보내준 독자들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라며 "좋은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야 하기 때문에 과연 독자들이 기대한 만큼 좋은 책을 만들며 독자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그럴수록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솔직히 나도..." 질문에 답하고 있는 문정우 편집국장.
"솔직히 나도..."질문에 답하고 있는 문정우 편집국장. ⓒ 박주현
-<시사저널> 경영주와의 투쟁과정에서 많은 기자들에게 취재를 당했을 텐데 그때 기분은 어땠는가?
"솔직히 힘들게 하는 기자들을 보면서 나도 옛날에 저랬구나 하는 생각이 든 때가 많았다. 취재할 때 더욱 조심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시사IN>의 창간호 표지모델에 자본언론의 상징인 루퍼트 머독을 내세운 이유는?
"인터뷰를 하고 나서 사진을 보니 욕심이 더 많이 붙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본권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의 돈이 언론엔 곧 독이란 걸 심어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신정아씨와 22시간 동안 미국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내막이 궁금하다. 경쟁이 치열했을 텐데.
"거의 대부분 국내 언론인들이 신정아 사냥을 위해 미국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심지어 신씨와 잘 아는 사람에게 거액의 돈을 주겠다며 인터뷰를 성사시켜 달라고 조르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이러한 추격전을 따돌리고 <시사IN>이 전격 단독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사IN>을 사랑하는 모임, 즉 '시사모' 회원의 힘이 컸다. 덕분에 광고효과도 컸다."

-대선 후보들 가운데 특별히 선호하거나 지지하는 후보가 있다면.
 "건전한 후보들이 더러 있지만 내놓고 지지할만한 입장은 못 된다."

-기자들의 대선캠프 합류를 어떻게 보는가.
"언론인 개인의 도덕성 문제다. 정치부 기자가 정계에 입문하려면 다른 부서에서 최소한 6개월 이상은 근무한 뒤에 회사를 떠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최근의 기자실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기자실의 폐쇄성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돼 왔고 기자단 내부에서도 거론돼 왔다. 개방형 브리핑 룸 전환 또는 기자실 제도 개선에 대해 기자들 사이에도 일정부문 합의돼 왔던 대목이다. 그런데 관에 뒤통수를 맞다 보니 계속해서 끌려가는 양상이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바보였노라'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꼴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시사인#시사저널사태#삼성#심훈#문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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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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