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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디로 가는거매?”

 

김억만은 나무에 기대어 잠시 쉬어가며 청안에게 말했지만 말을 할 수 없는 그에게서 아무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먹을 것도 노잣돈도 없이 낯선 땅에서 여자를 따라 알 수 없는 길을 간다는 건 김억만이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김억만에게는 어쩐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호수.”

“뭐?”

 

김억만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던 청안이 말을 하자 깜짝 놀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더구나 청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분명 ‘호수’라는 말이었다.

 

“호수로 간다.”

“너 내 말 알아 듣는거네?”

 

청안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김억만도 말을 않고 다시 일어서 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이대로 가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하지?”

 

청안은 불숙 한마디를 내뱉었다.

 

“갚는 거야.”

“뭘 갚아?”

 

청안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하루 종일 걸은 김억만은 배가 고파지고 지쳐갔지만 청안의 걸음은 늦추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그들은 이름모를 마을에 도착했지만 그들을 맞이하는 이들은 한인도 만주족도 아닌 생경한 옷차림을 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김억만과 청안을 둘러싸고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는 양 모여들었다. 청안은 그들에게 알 수 없는 말을 몇 마디 중얼거린 후 노래를 불렀다.

 

-바다 같은 호수를 건너 북쪽에서 오실 재 휘휘휘….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어린 아이 있었네. 아이는 자라 먼 길을 떠났네. 기나긴 업을 남겨두고 자꾸자꾸 떠나갔다네. 허이 허이 허허이….

 

대략 이런 내용의 반복이었지만 김억만은 알 수 없는 언어로 부르는 노래의 뜻을 알지는 못했다. 다만 그 선율이 아름답고 노래를 부르는 청안의 목소리가 애절하여 뭇 사람들의 심금을 쥐어짜는 건 김억만을 비롯한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그렇게 흘러갔지 내 아들아 내 딸아.

 

노래를 마치자 마을사람들은 김억만과 청안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들은 김억만과 청안을 부부로 여겼는지 같은 방을 사용하게끔 배려했다. 그렇다고 김억만이 말이 안 통하는 이들을 잡고 사정을 설명할 수도 없는 터였고 청안은 여전히 김억만의 곁에만 있고 싶어 했다. 김억만은 결단을 내려야만했다.

 

“이봐 청안. 아무래도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어두운 방안에서도 청안의 눈은 신비롭게도 파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김억만은 마른침을 삼키며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이대로 널 따라 마냥 갈수는 없어. 내 비록 고향으로 가봐야 반겨줄 가족이 없는 신세지만 이대로 기약도 없이 어디론가 갈수는 없다는 거야. 그게 내 삶이야. 내 말 알겠지?”

 

“아니.”

 

그 다음부터 이어지는 청안의 말은 놀랍도록 또렷하게 김억만의 가슴을 후려 팠다.

 

“넌 꼭 짐승을 잡아 생계를 연명했어야 했니? 넌 꼭 여기까지 와서 이름모를 사람을 쏘아 죽여야 했니? 그게 네 삶이야? 반드시 그런 건 없어. 그런데 넌 이제 와서 너의 삶을 찾는 거니?”

 

김억만은 그 말에 너무나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청안을 내려 보았다. 그러나 청안은 언제 그런 얘기를 했냐는 듯 태연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너 뭐라고 한거매? 그렇게 말을 잘하면서 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매?”

 

김억만은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지만 청안은 아무런 대답 없이 새근새근 잠이 든 양 숨을 내쉬고 있었다. 결국 김억만은 제풀에 무너져 다시 자리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나선정벌#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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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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