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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이라는 드라마의 주연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범정부 차원의 '정상회담 추진기획단'이 꾸려져 회담에 대비해왔지만 준비의 대부분은 노 대통령 개인의 몫이다. 남북정상회담은 특히 더 그렇다.

 

실무진이 의제를 사전에 논의해 조율하고 정상끼리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타결을 짓는 것이 일반적인 정상회담 모델이다. 하지만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경우, 정상들끼리 공식 회담과 비공식 만남에서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야만 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 곧 법이 되는 북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모든 것이 정상들의 재량에 맡겨진 셈이다. 그러니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 무슨 말을, 어떤 표정과 제스처로 하느냐에 따라 정상회담 분위기와 성과가 좌우될 수밖에 없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스타일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이다.

 

광주 노씨와 전주 김씨로 본관은 '전라도'... 비상한 머리도 공통점

 

 노무현 대통령(자료사진)
노무현 대통령(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우선 노 대통령은 1946년생으로 환갑을 갓 넘긴 61세이며, 김 위원장은 65세로 노 대통령보다 4살이 더 많다.

 

노 대통령은 경남 김해 진영에서 태어났지만, 김 위원장의 출생지는 북한측 주장(백두산 밀영)과 구소련 자료(러시아 하바롭스크)가 서로 다르다. 백두산 밀영의 현 행정구역은 양강도 삼지연군 소백수골이다.

 

두 사람의 본관은 각각 광주(光州)와 전주(全州)로 전라도라는 공통점이 있다. 1차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거듭된 답방 요청에 김 위원장이 '전라도 분이어서 고집이 이렇게 세냐'고 말하자 김 대통령은 '위원장도 전주 김씨 아니냐'고 응수한 적이 있다.

 

혈액형은 노 대통령이 O형인데 비해 김 위원장은 A형이다. 신장은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각각 168㎝와 165㎝이지만 체중은 각각 62㎏과 85㎏(추정)으로 23㎏이나 차이가 난다.

 

머리 스타일도 대조적이다. 김 위원장은 퍼머 머리 스타일의 곱슬(고수) 머리인데 비해, 노 대통령은 '올백' 스타일과 '스포츠형'을 오가며 변화를 주고 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가질 때 그의 사자갈기 머리 스타일에 관심을 표시하면서 "한국에서 아주 인기가 좋은데 직접 뵈니 너무 반갑고 친숙하게 느껴진다"고 친근감을 표시한 바 있다.

 

자수성가형 대 세습체제...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공통점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모두 비상한 머리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뛰어난 기억력과 속독으로 정책 이해도가 높으며 김 위원장은 순발력과 예능적인 재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성장 배경과 대중성 통치 스타일 등에서 상당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노 대통령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해 상고 졸업장이 최종학력이다. 이에 반해 김 위원장은 북한 최고 지도자의 아들로 태어나 역시 최고의 대학인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했다.

 

또 노 대통령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75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자수성가형 신분 상승'을 이뤘다. 김 위원장은 74년에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지명되어 75년에는 '친애하는 지도자' 및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처음 정계에 입문해서는 순탄하게 금배지를 달았으나 90년 3당합당을 거부해 야당의 비주류가 되면서부터는 가시밭길이 시작되어 14대 총선 때부터는 낙선의 연속이었다. 이에 비해 김 위원장은 90년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92년 공화국 원수 칭호 등으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후 자연재해까지 겹친 90년 중반은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에게 '고난의 행군' 기간이었다. 노 대통령은 95년 제1대 지방선거(부산시장)와 96년 제15대 총선(서울 종로)에서 연거푸 낙선했으며, 95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고난의 행군'은 98년까지 계속되었다.
 
노 대통령은 네 번이나 선거에서 떨어지는 숱한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최고 정치지도자의 반열에 올랐다. 이에 비해 김 위원장은 세습체제에 따라 당 중앙군사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당비서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며 권좌를 물려받았지만 나름대로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권력을 거머쥐었다.

 

격식 안따지는 소탈한 성격에 직설적 화법... '올빼미족' 공통점

 

 김정일 국방위원장(자료사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자료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노 대통령은 격식을 따지지 않는 소탈한 성격으로 대화할 때는 직설적인 화법을 자주 사용하며 상대와의 논쟁을 즐기는 편이다.

 

김 위원장 역시 비교적 과감하고 솔직한 화법을 구사하며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편이다.

 

김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2000년 정상회담 당시 첫번째 만남에서 대화의 90% 이상 독점하며 상대에게 발언 기회를 주지 않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회담후 "남쪽이나 국제사회가 그를 수수께끼 인물로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그의 목소리도 잘 모를 정도다. 그렇다면 세계가 김 위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두 번째 만남에서는 자신이 너무 말을 많이 했다고 느낀 듯 "제가 너무 경거망동한 것 같습니다"라고 사과했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이른바 '올빼미족'으로 통하는 두 사람의 밤샘 업무 처리 스타일도 공통점이다. 노 대통령은 종종 밤 늦게까지 컴퓨터를 켜놓고 청와대 내부 전산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에 들어가 보고서를 읽거나 참모들에게 댓글로 지시를 내리곤 한다.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도 새벽 3~4시까지 밤을 새워가며 일하곤 한다.

 

또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공통적으로 승부사 기질이 다분하다. 두 사람 다 원칙과 신념에 따라 소신껏 자신의 입장을 설파하는 형이다. 노 대통령은 비록 실패했지만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구상했으며, 김 위원장은 '광폭정치'라는 '통 큰 정치'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래서 두 사람이 '끝장 토론'을 해서라도 '통 큰 합의'에 이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무현#김정일#스타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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