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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버마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 버마 민중들의 민주화시위를 강경진압하고 있는 군사정권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버마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 버마 민중들의 민주화시위를 강경진압하고 있는 군사정권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최윤석

도대체 언제까지 침묵할까 싶었다. 그러나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제는 무슨 말을 한들 너무 뒤늦을 공산이 크기 때문에. 버마(미얀마) 시위 사태에 대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침묵'에 대해서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지금까지 버마 시위 사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사설로 밝히지 않았다. 나름대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분명한 입장'들을 밝힌 다른 신문들과는 대조적이다. 이들 두 신문은 왜 버마 시위사태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걸까?

 

보수사회 가치관 대변하는 두 신문의 '침묵'

 

버마 시위 사태는 지구촌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반세기 가까운 군사독재정권의 인권탄압 때문이기도 하지만, 군과 경찰을 동원한 버마 정부 당국의 유혈진압으로 지난 88년 민주화시위 때 발생한 대량 유혈사태가 또다시 재연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 때문이기도 했다.

 

30년 가까운 군부 독재와 1980년 '광주사태(광주민주화운동)'를 겪은 우리로서는 당연히 더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굳이 우리의 암울했던 현대사의 족적을 들추지 않더라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국민들의 당연한 요구를 총칼로 짓밟고 있는 버마 군사정권의 유혈진압에 대해서는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분노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두 신문의 '침묵'에 주목하는 것은 이 두 신문이 표방하고 있는 한국 보수사회의 '가치관'이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 세력에게 있어서 버마 시위 사태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보수 세력을 대변하는 신문들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보수 세력을 이 두 신문만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굳이 이 두 신문에 주목하는 것은 이 두 신문이 한국의 보수 세력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신문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보수 세력의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도 포함돼야 마땅하겠지만, <동아일보>는 이 사안에 관한 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조선>과 <중앙>이 버마 사태에 침묵한 이유는 무엇일까. 버마 사태가 굳이 사설로 쓸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혹은 우리와는 관계없는 '먼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해서? 아니면 그 어떤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도 아니라면, 버마 군부정권을 비호해서?

 

문제는 독재가 아니라 '지도자의 안목'?

 

그 속내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조선일보>에 실린 기명칼럼 만물상 '네윈과 버마'(이선민 논설위원)는 두 신문의 '침묵'을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를 던져준다.

 

이선민 논설위원은 이 칼럼에서 버마 철권통치의 주역 '네윈'과 한국의 '박정희'를 비교했다.

 

"네윈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한 해 전 한국에서도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 때 버마는 한국과 달리 굶을 걱정은 안 해도 되는 나라였다. 1960년대 네윈은 인도 네루, 인도네시아 수카르노와 함께 제3세계 리더로 꼽혔다. 이제 한국은 세계 11위 경제 강국이고 버마의 독재체제는 국제적 골칫거리다. 두 나라의 오늘을 가른 것은 네윈의 폐쇄적 사회주의와 박정희의 개방적 경제개발의 차이였다. 지도자의 안목이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여기에서 쿠데타는 문제가 안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지도자의 안목'일 뿐이다. '폐쇄적 사회주의'를 택했느냐, 아니면 '개방적 경제개발'을 택했느냐가 중요하지, 쿠데타를 했다거나 독재를 했다거나 하는 것은 주된 변수가 아니라는 문맥으로 읽힌다. 지나친 오독일까? 이들 두 신문이 버마 사태에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바로 이런 '판단' 때문일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들 두 신문이 버마의 군부독재정권까지 비호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버마 군사정권의 유혈진압 사태에도, 끝내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결과적으로 버마 군부독재 정권을 용인, 혹은 비호했다는 의심을 살만한 대목이다.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 때나 혹은 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혹은 민주화운동, 혹은 민중 봉기에 대한 두 신문의 '생래적인 거부감' 때문이었을까.

 

<동아일보>는 <조선>이나 <중앙>과는 달리 9월 29일자에 사설 '버마 민주화를 촉구한다'를 싣고 "군인들이 제 나라 국민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행위는 '내정불간섭 원칙'의 대상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공적"이라면서 한국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촉구했다. 버마의 자원 등을 염두에 둔, 이른바 '국익' 때문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를 질책한 것은 <한겨레>와 <동아일보> 두 신문 정도였다.


#버마시위#보수언론#침묵#조선일보#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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