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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 구룡연 코스에서 만난 조각상들이 '우리는 하나'를 연주하고 있다.
 금강산 구룡연 코스에서 만난 조각상들이 '우리는 하나'를 연주하고 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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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 대학의 한 부설 교육기관에서는 개강을 앞둔 강사 모임이 있었다. 여름방학을 끝내고 돌아온 동료들이 모두 모이게 되는 반가운 자리였다. 그 곳에 모인 강사들은 석 달 여 되는 긴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돌아왔는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꽃을 나누었다.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인 리사는 가족들과 함께 독일과 체코, 헝가리를 여행하면서 오래된 고성(古城)과 박물관을 구경했다고 했다. 젊은 친구 카이는 자신의 약혼녀가 살고 있는 에쿠아도르에서 방학 내내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왔노라고 자랑을 했다.

리나는 온 가족이 뉴욕을 다녀왔고 오드리는 버지니아 비치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선탠도 했다고 구릿빛 피부를 내보이기도 했다. 중국인인 헬렌은 부모가 있는 중국 충칭에서 석 달을 다 보내고 왔다고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저는 가족들이 있는 한국에 다녀 왔어요. 북한도 갔다 왔고요.”

우리 가족은 지난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2박3일 동안 금강산을 다녀왔다. 하지만 이들 외국인들은 금강산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일단 금강산이 있는 북한을 다녀왔다는 말로 말문을 꺼냈다. 그러자 ‘North Korea’라는 말에 거기 있던 강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고? 북한을 다녀왔다고?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그 무서운 나라? 미국의 적국인 북한을 겁 없이 다녀왔다고?’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에는 내가 마치 어디 못 갈 데를 다녀오기라도 한 것 같은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와 본 적이 있는 리사는 북한을 다녀왔다는 내 말에 이렇게 묻기도 했다.

“나영, 네가 같은 코리언이어서 북한에 갈 수 있었던 거냐? 아니면 나 같은 미국 사람도 아무런 제한 없이 북한에 갈 수 있는 거냐? 또, 평양에도 갔다 왔느냐?”

‘평양’이라는 지명까지 들먹이며 리사는 구체적으로 내게 물었다.

“북한에 갔다 왔다고 했지만 사실은 북한의 관광 특구인 ‘금강산’만 다녀온 것이다. 북한은 아직 개방된 나라가 아니다. 일부 지역만 제한적으로 개방되어 있다. 그리고 금강산은 남한 사람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얼마든지 갈 수 있다. 그러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코리아의 남과 북을 다 경험해볼 수 있는 아름다운 금강산을 한 번 가봐라.”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봉!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봉!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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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 다녀온 이야기를 꺼내면서 나는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좋았는지, 거기서 만난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다정했는지를 말하면서 북한은 결코 부시 대통령이 말하는 ‘악의 축’이거나 몹쓸 나라가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며칠 뒤 나는 복도에서 다시 카이를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전에 내가 말했던 '북한 방문'이 놀라웠는지 정색을 하며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언론이 제공하고 있는 정보만 들어서 북한은 위험한 나라, 나쁜 나라라고만 알고 있는데 정말 그렇지 않냐? 외국인도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나라냐?”

“그럼!”


"북한은 결코 부시가 말하는 '악의 축'이 아니다"

 구룡폭포 가는 길에.
 구룡폭포 가는 길에.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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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는 감동적인 순간을 지켜봤다.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여기 있는 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이라고 소회를 밝혔는데 나 역시 지난 여름에 군사분계선을 넘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내가 생각했던 ‘군사분계선’은 우리 민족을 남북으로 갈라 놓고 서로를 앙숙 되게 만든 뭔가 섬뜩한 느낌의 선이었다.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시베리아 벌판 같은 곳에 세워진 무서운 선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런 선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냥 순하게 생긴 하얀 말뚝만 무심하게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이런 느낌은 금강산에서 만난 남녀 북한 안내원들을 보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생각을 가진(서로가 가진 이념은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같은) 내 동포를 보면서 남과 북 사이에 놓여 있던 높은 장벽이 사실은 그리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요? 머리에 빨간 뿔 난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자주 만나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서로를 ‘리해’하게 되고 통일의 그 날이 가까워지는 거지요.”

북한의 여성 안내원이 밝게 웃으며 내게 건넨 말이다. 이번 노 대통령의 방북이 그의 평화메시지에서 밝힌 대로 "금단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고통을 해소하는, 고통을 넘어서서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는 계기"가 되면 정말 좋겠다.

노 대통령의 역사적인 방북을 보면서 구 동독 출신의 반체제 시인인 볼프 비어만이 한국을 방문한 뒤 했다는 감동적인 한 마디가 떠오른다.  

"통일은 미친 짓이지만 통일을 안 하는 것은 더 미친 짓이다."

노 대통령의 성공적인 방북을 기원한다.

 옥류담 가는 길에 만난 맑은 물.
 옥류담 가는 길에 만난 맑은 물.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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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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