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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양복점', 이름부터 정겹다. 옛날 읍내 장터에서 한 번 봄직한 이름이다. 정겨운 이름만큼이나 그 이름이 지어진 사연 또한 정겹고 단순하다. 형제가 시작했으니 형제양복점이라고 붙여졌다고(물론 25년 전 동생 또한 독립하여 양복점을 해오고 있다). 김상규씨(형제양복점 대표)가 32년 전에 양복점을 처음 개업하면서 친동생과 함께 가게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간판 점포 한 쪽에 쳐박혀서 먼지가 뽀얀 32년짜리 간판이다. 개점 초기부터 함께 해온 간판을 자세히 보면 전화번호에 국번이 없다. 개점 당시 전화가 국번이 없어도 통화가 될 정도로 안성에서 전화가 없던 시절이었음을 드러내 준다.
간판점포 한 쪽에 쳐박혀서 먼지가 뽀얀 32년짜리 간판이다. 개점 초기부터 함께 해온 간판을 자세히 보면 전화번호에 국번이 없다. 개점 당시 전화가 국번이 없어도 통화가 될 정도로 안성에서 전화가 없던 시절이었음을 드러내 준다. ⓒ 송상호

"67년 도에 외삼촌으로부터 제가 맞춤 양복하는 일을 배웠죠. 벌써 40년이나 지났네요. 안성에서 '삼성양복점’하면 모르는 이가 없었던 시절 그 양복점 주인이 외삼촌이었기에 영향을 받아 이 일에 뛰어 들게 되었죠."

그렇게 말하는 김 대표는 감회에 젖는다. 정신없이 살다가 벌써 그렇게 지나버린 세월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95년도까지는 우리 양복쟁이들도 한참 잘 나갔죠. 그때까지만 해도 양복감을 상자떼기로 떼어 와서 양복 재단하고 맞추느라 신났죠. 그러더니 95년도 이후부터 슬슬 안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기성 양복이 판을 칠 때부터겠죠."

지금 김 대표가 말하는 아쉬움은 대한민국 수공 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것일 게다. 대량화와 대형화에 밀려난 시대의 아픔이 김 대표에게도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게다.

"그래도 저는 이 일을 예술이라고 자부하며 이때까지 해오고 있지요. 그러니까 장인정신을 가지고 한다고나 할까요. 양복을 맞춘 사람들이 기뻐하며 답례로 밥이라도 한 끼 사주면 그렇게 보람 있을 수가 없었죠."

김 대표가 자신의 일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32년 동안 만난 사람들은 지금도 형제양복점의 주요 단골들이다. 그들은 결혼식, 회갑연 등의 잔치와 계절이 바뀔 때에 양복을 맞추러 왔기에 김 대표는 고스란히 단골들의 애환과 함께 동고동락해온 셈이다.

스팀 다리미 세탁소에 가면 볼 수 있는 정겨운 스팀 다리미엔 닳고 닳은 세월의 향취가 묻어 난다.
스팀 다리미세탁소에 가면 볼 수 있는 정겨운 스팀 다리미엔 닳고 닳은 세월의 향취가 묻어 난다. ⓒ 송상호

"요즘 서울에서는 맞춤 양복이 부활하는 추세죠. 기성양복에 식상한 사람들이 슬슬 우리 맞춤 양복으로 눈을 돌리는 바람에 생긴 현상이죠. 그걸 두고 복고풍이라고 하던가요. 허허허허. 그렇다고 우리 맞춤 양복이 잘 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요."

이젠 양복 맞춤 기술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조차도 없다는 김 대표는 맞춤 양복점을 세탁소와 같이 운영해오고 있다. 그러니까 양복점과 세탁소는 점포가 동일한 셈이다. 양복만 해서는 경제 유지가 힘들기에 김 대표가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택한 길이다. 이 시대 서민들이 가지고 있는 잔디 뿌리 같은 생존 본능이 작용한 것이다.

덕분에 거기에는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세탁소에 손님이 늘 오는 것은 기본이고, 아직도 양복을 맞추거나 문의하러 사람들이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와의 인터뷰 내내 그는 바쁘다. 옷 다리랴 양복 손보랴 대화하랴 바쁘다. 손은 일하고 입으로는 대화를 나누는 일상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다. 점심시간으로는 조금 늦은 시간에 자장면을 시켜먹을 정도이니 두말해서 무엇 하랴.

"선진국일수록 양복을 맞춰 입는 곳이 많지요. 이웃 일본 만해도 양복 입는 사람 중 35%가 맞춰 입는다고 해요. 우리나라도 그럴 날이 오겠지요. 허허허허허"

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김 대표는 양복점 하는 사람처럼 스타일이 깔끔하다. 다리미질 하고 옷을 세탁하고 양복에 바느질을 하더라도 스타일만은 구기지 않으려는 그만의 생활철학이 묻어 있다. 그런 생활 철학이 양복을 맞춰 입는 그의 고객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세련된 스타일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다.

이런 그가 마지막으로 들려준 이야기는 경제적으로 살기 어려운 이 시대 서민들의 공통 심사이자 희망이 아닐까.

"맞춤 양복점 경기가 지금이 바닥이니 더 이상 내려갈 때가 없겠죠. 그러면 이제 앞으로 좋아질 일만 남지 않았을까요. 하여튼 이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을 거니까. 허허허허허"

양복 수선 중 지금 김상규 대표는 양복 단추를 수선하는 중이다. 요즘 시대가 자신에겐 바닥이니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다며 오히려 맘 놓고 자신의 일을 한다는 김상규 대표다.
양복 수선 중지금 김상규 대표는 양복 단추를 수선하는 중이다. 요즘 시대가 자신에겐 바닥이니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다며 오히려 맘 놓고 자신의 일을 한다는 김상규 대표다. ⓒ 송상호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4일 형제 양복점(안성 인지동 사거리)에서 한 것이다.



#맞춤 양복점#김상규#형제양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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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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