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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家 입구. 숲 속 작은 공원처럼 아늑하다.
 古家 입구. 숲 속 작은 공원처럼 아늑하다.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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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 고촌면 풍곡리 깊숙한 안쪽 마을이 배천 조씨 집성촌이다. 이 집성촌 한가운데 참 특이한 한정식 집  하나가 고즈넉한 자태를 뽐내며 자리하고 있다. 바로 '고가(古家)'다. 고가는 이래저래 참 독특한 곳이다.

고가가 자리한 터(攄)가 독특하고, 고가를 운영하는 주인이 독특하고, 고가의 음식이 독특하다. 고가가 위치한 터는 배천 조씨 종가가 4대째 살고 있는 바로 그 집터다. 고가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 김현숙(53) 대표는 배천 조씨 종가의 종부다. 고가에서 내놓는 음식들은 애초 배천 조씨 종가 집 상차림에서 유래됐다. 

결국, 고가는 배천 조씨 종가 집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다. 한정식집의 뿌리가 종가집인 사실만 놓고 보자면 그리 독특할 게 없다. 그러나 지금의 고가가 탄생하기까지의 역사를 들추어 볼라치면 '참 독특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댁은 전형적인 종가 댁, 종부의 직장생활은 반란

 '古家' 김현숙대표
 '古家' 김현숙대표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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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은 아주 전형적인 종가 댁입니다. 그렇다보니 종가 어른들 입장에서 보자면 아마도 대단한 반란이었을 겁니다. 얌전하고 다소곳하게 종가의 전통을 이어야할 종부가 직장 생활을 관둘 수 없다는 폭탄선언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종부이기 전에 저도 제 나름의 인생관이 있으니 끝까지 투쟁(?)할 수밖에요."

결국, 종갓집 종부는 결혼 후 20년 세월을 직장여성으로 살았다. 국내 굴지의 출판사 교육부에서 그녀는 말 그대로 승승장구했다. 그녀의 그런 거침없는 승승장구에 제동이 걸렸다. 남편 조민휘씨가 병이 났다. 위 파열에 늑막염까지….

따지고 들자면 남편의 발병 원인이 굳이 그녀 탓도 아니건만, 집안어른들의 불같은 노여움과 스스로의 자괴감에 그 당시는 숨 쉬는 것도 힘들만큼 괴로웠다고 한다.     

"인생 최대의 기로였어요. 남편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했어요. 종부로서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남편이 저렇게 병석에 드러눕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로 몇날 며칠 가슴을 쳤어요. 그러면서도 제가 하고자 하던 일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어요. 한 분야에서의 성공이 훤히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그걸 포기하겠어요."

 '古家' 전경. 여느 시골 기와집과 별반 다를 게 없다.
 '古家' 전경. 여느 시골 기와집과 별반 다를 게 없다.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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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공감이 가는 말이다. 7남매의 장녀이다 보니 어려서부터 집안일은 대부분 그녀 차지였다. 강한 생활력에 길들어졌음은 당연했다. 뿐만 아니라, 그 강한 생활력이 매사 지칠 줄 모르는 승리욕의 근원이었음은 두말 하면 잔소리. 그런 삶을 살아온 그녀이기에 오로지 종부로서의 삶에 그녀의 전부를 건다는 것 또한 당연히 껴안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종부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남편 곁을 지키고자 마흔 줄에 들어섰을 때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보자면 또 다른 반란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 얼마간 집안일에만 몰두하던 그녀는 다시 한 번 종가어른들을 기함시키는 일을 저질렀다.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경험이라곤 전혀 없는 일식집을. 20년 세월의 직장생활에 지칠 법도 하련만 대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토록 열정적인 삶을 살도록 부추긴 것일까.

직장 생활 관둘 수 없다는 종가 며느리

 4대째 살아온 종가집의 고풍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대청마루
 4대째 살아온 종가집의 고풍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대청마루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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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돈이 아쉬워 장사를 해야 할 상황도 아니었어요. 돈 걱정 없이 종부로서 충분히 집안어른들께 이쁨 받으며 편하게 살 수 있는 형편이었어요. 그런데 뭔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증에 견딜 수가 없었어요. 남들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저만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 같아 순간순간 숨이 목까지 차올랐어요."

이후, 6년간을 그녀는 사업가로서 다시금 승승장구한다. 그즈음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4대째 살아오던 지금의 고가 자리인 종가를 유산으로 물려받게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김대표는 다시 한 번 종가어른들께 반란을 고한다. 종가 자리에 한정식 집을 내고자 했던 것이다.

"어른들의 노여움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나 제겐 소신이 있었어요. 종가집이다보니 시도 때도 없이 제사를 지내야 해요. 제수준비가 만만치 않았어요. 그런데 그 제수준비에 저는 희열 아닌 희열을 느꼈지요. 어릴 적부터 음식 만드는 것이 참 좋았거든요.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만들까 이리저리 궁리하게 되고, 그렇게 만든 음식들을 어른들께 대접하면 여간 좋아하시는 게 아니었어요. 하여간 어른들께 음식 잘 한다는 칭찬은 노상 받고 살았지요."

 있는 그대로의 옛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古家' 안, 밖의 모습
 있는 그대로의 옛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古家' 안, 밖의 모습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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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식집 고가를 낼 당시. 김대표는 또 다른 야심에 불같은 열정이 타올랐다. 두루두루 인정받는 종가 댁 종부의 음식 솜씨로 김포에 새로운 음식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것, 나아가 종가 요리에서 약선 요리, 궁중 요리까지 음식문화에 새바람을 한번 일으켜 보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의 그런 자신감이 종가 어른들을 설득하기에 이르렀고 고가는 그렇게 탄생했다.

고가가 문을 연 지 어느덧 8년. 지금은 고급 한정식 집으로 김포에선 꽤나 유명한 곳이 되었다. 음식 값이 다소 비싸다는 투정 아닌 투정에도 손님들의 발길은 여전하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기막힌 음식 맛 때문이다. 생전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아주 맛있는 음식을 고가에 가면 맛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기막힌 음식 맛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돈 욕심보다는 음식욕심이 늘 앞서지요.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까 노상 궁리하고, 더 새롭고 더 특별한 요리를 손님들께 대접하고 싶어 안달을 내죠. 그러다보니 요리 하나에도 늘 마음을 다하게 되더군요. 마음이 스민 요리, 그게 결국 음식맛을 좌우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은 손님들이 더 도사예요. 정성껏 만든 요리, 정성 없이 서둘러 만든 요리를 손님들이 먼저 아신다니까요."

 '古家'요리는 눈요기의 재미도 만만치 않다.
 '古家'요리는 눈요기의 재미도 만만치 않다.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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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음식이야기를 들어보자니 김대표의 겸손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고가가 문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아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이 식물인간 지경까지 갔다고 한다. 그런 남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그녀가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였던 게 바로 음식이었다.

그렇다보니 음식 하나하나에도 어떤 것은 보약이 되고, 어떤 것은 해가 되는지, 또 어떤 음식끼리 찰떡궁합인지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이 고가 요리의 기초가 되었고 더불어 고가를 찾는 손님들에게 한 끼 식사라도 이왕이면 몸에 좋은 음식을 대접하자는 게 그녀의 철학이 되어 버렸다. 

 김대표의 보물1호인 장독대
 김대표의 보물1호인 장독대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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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어서 나았으면...

그녀의 요리철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김대표의 보물1호가 장독대라니 같은 여자로서 겸허해지기까지 한다. 발효시킨 조미료들이 이 항아리 저 항아리 가득하다. 산야초들을 발효시킨 온갖 조미료들이 항아리에 그득하다. 오래 묵어 온통 검은 색 일색인 고추장이며 된장들이 단지마다 그득하다. 그런 항아리들로 장독대가 빼곡하다. 장독대만 들어서면 체면에 걸린 듯 그리 황홀해진다니 천생 종부로 태어난 듯싶다. 

그런 바지런한 세월에 손가락인들 남아났을까. 김대표의 열손가락은 성한 데가 거의 없다. 마디마디 굳은살은 예사고 어느 손톱은 아예 문드러져 형체조차 없다. 그러나 김대표는 자신의 그런 열손가락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단다. 그 손이 고가를 이만큼 키웠기 때문이란다.

당당한 직업여성에 비해 한정식집 주인으로 늘 물에 손 담그고 사는 요즘이 어쩌면 그녀에겐 맥 빠지는 일상일 듯도 한데 그녀는 오히려 도리질을 쳐댄다.

"한때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어요. 종부로서의 삶을 살고자했던 내 선택이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그러나 내가 택한 건 종부로서의 삶이 아니라 시댁이 그렇기에 종부로서의 삶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 제 일상에 아주 만족해요. 종갓집 음식들을 정성껏 만들어 더 많은 손님들께 대접하는 것도 종부로서의 또 다른 사명 아니겠어요? 다만, 누워있는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싸해지면서 명치가 따끔거려요. 그래서 음식을 만들면서 더 절절히 기도한답니다. 어서 쾌유하기를…."
 '古家' 요리의 기본은 천연양념과 산야초 소스이다.
 '古家' 요리의 기본은 천연양념과 산야초 소스이다.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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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어진 눈시울을 훔치는 그녀의 마디 굵은 열손가락이 이 세상 어떤 여인의 섬섬옥수보다 고와 보인다.

김대표의 마지막 바람은 요리박물관을 여는 것이라고. 우리 음식의 우수성은 발효음식과 절임음식에 있는데 그런 훌륭한 것들이 점점 잊혀가는 요즘의 식생활이 안타깝다고 한다.

하여 신출내기 주부들도 쉽게 요리할 수 있는 그러한 우리의 전통음식문화를 두루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강의 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으면서도 가슴에 품은 바람을 야금야금 키워 가는 그녀의 뜨거운 삶 속에 또 어떤 반란이 똬리를 틀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김포#古家#김현숙#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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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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