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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과 상생이 있는 공간 - 아콘치 스튜디오
상상과 상생이 있는 공간 - 아콘치 스튜디오 ⓒ 오문수

10월 8일 월요일, 전남 여수 여도중학교 1학년 8반 36명 학생들과 함께 '인류를 비추고, 자연을 비추며 미래로 뻗어나가는 디자인의 빛'을 주제로 한, 2007광주디자인비엔날레전과 민주주의와 인권의 성지인 5·18민주묘지에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10월 5일부터 11월 3일까지 빛고을 광주를 상징하는 '빛'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디자인비엔날레는, 전 세계 45개국 927명의 디자이너와 103개 기업 및 기관이 참여해, 모두 2007점의 첨단 디자인 제품들을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선보였다. 비엔날레 전시회는 크게 본전시와 특별전시, 특별기념행사 및 이벤트로 나눌 수 있다.

 빛과 물을 활용한 조명 - 모리스 사토 스튜디오
빛과 물을 활용한 조명 - 모리스 사토 스튜디오 ⓒ 오문수

본전시는 디자인과 연결된 미래를 보여주는 '생활의 빛', 디자인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정체성의 빛', 디자인을 통한 자연과 인간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환경의 빛', 인간과 디자인의 행복한 만남을 의미하는 '감성의 빛', 사람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빛을 의미하는 '진화의 빛'으로 나누어진다.

특별전시로 추진되는 '명예의 전당-20세기 디자인 발자취'는 지난 20세기 각 시대별 디자인을 대표할 제품 132점을 소개했다.

 조명 조형물과 벽면을 연출한 조명 - 야코포 포기니
조명 조형물과 벽면을 연출한 조명 - 야코포 포기니 ⓒ 오문수

시대별 구분을 보면, 1910년대는 장식적 아름다움에서 기능중심으로, 1920년대는 수공예제품이 사라지고 공업디자인 용어가 등장한다. 1930~40년대는 대량생산을 통한 디자인의 근대화가, 1950~1960년대는 사용자 중심의 기술과 디자인이 이뤄진 시기다. 한편, 1970년대는 국가 차원에서 디자인이 강조된 시기다.

기념초대전시관에는 '빛의 마술사' 또는 '빛의 서정시인'이라 불리는 세계적 독일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가 제공한 작품 40여점과, 전 세계에서 활동 중인 60여명의 작품을 소개한 '디자이너의 빛' 코너 및 '모바일폰 디자인 역사전'을 볼 수 있다.

 잉고마우러의 전시물
잉고마우러의 전시물 ⓒ 오문수

전시관을 둘러본 소감을 묻자 김성미양은 "디자인에는 옷 디자인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소재가 다양한 것에 놀랐다"고 한다. 또한 김제환군도 "여러 가지 신기한 옷과, 재활용품으로 만든 것들이 놀랍다"라고 말했다.

 유혹의 투영 - 유리공예품
유혹의 투영 - 유리공예품 ⓒ 오문수

한편 전시회가 원활히 운영되도록 돕는 49명 자원 봉사자 중에는 행사장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영어통역을 담당하는 칠순 노인이 있다. 40명의 응시자 중 최종 7명에 뽑힌 김정환씨는 "선발된 6명 모두가 젊은 학생들인데 뽑힌 것은 아마도 민속박물관에서 외국인 문화해설사로 근무한 경력을 인정한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김씨는 전직 영어 교사로 18년을 근무했고, 23년간을 전문직에 근무했으며 전라남도 학생 교육원장으로 정년을 마쳤다. "미국, 영국, 브라질, 터키 등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본국에 돌아가 고맙다고 보낸 이메일을 볼 때가 가장 보람있다"고 한다.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나주 종합복지관에서 불우아동 돕기를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비엔날레전시관에서 봉사하느라 잡념에 빠져들 시간이 없다. 2남 1녀 중 두 아들 부부가 치과의사이고 딸은 교사이다.

 외국인 통역 자원봉사를 하는 김정환씨
외국인 통역 자원봉사를 하는 김정환씨 ⓒ 오문수

"41년간이나 국가에서 혜택을 받고 자식들도 다 잘살고 있으니 이제 국가에 갚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웃는 김씨에게서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해 본다.

수많은 무덤 보고 놀란 학생들

오후에는 5·18묘지를 방문했다. 안내원과 함께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민주영령들을 위해 묵념을 한 학생들은 숙연한 모습으로 설명에 귀 기울인다. 말로는 들었지만 수많은 무덤을 직접 보고 놀란 표정이다.

학생들과 함께 무덤을 둘러보는데 묘역 맨 상단에 웬 아주머니가 흐느끼며 비석을 쓰다듬는다. "무덤에 계신 분하고는 어떻게 되세요?"하고 묻자 동생이란다. 노동철의 묘. 잘 생긴 사진을 보며 누나한테 들은 얘기다.

1980년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에 살던 노동철(당시 23세)씨는 광주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 대인 시장에서 계엄군이 아주머니를 밀치자 "왜 아주머니를 그러세요?"하고 말렸다. 그러자 계엄군은 "너는 뭐야?"하면서 곤봉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동생 노동철씨의 묘지앞에서 통곡하는 누나
동생 노동철씨의 묘지앞에서 통곡하는 누나 ⓒ 오문수

머리를 14바늘이나 꿰맨 노씨는 그길로 시민군 차를 타고 저항하다 총을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광주사태 주동자로 함평경찰서에 끌려간 후 행방불명이 됐다. 온 식구가 나서 수소문해보니 광주 상무대에 끌려가 모진 고문과 구타를 당했고, 소재를 확인했을 때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강원도 진부령 인근 부대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

노씨가 행방불명이 되자 혼인신고도 안하고 동거 중이던 처는 낳은 지 1달된 딸만 남겨두고 집을 나가 버렸다. 당시 서울에 살던 누나(노영애씨)는 울고 보채는 아이를 동네 아줌마들에게서 동냥젖을 먹이고 미음을 쑤어 먹였으나 여의치 않자 마음씨 좋은 부부에게 입양을 시켰다.

심한 구타 후유증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없던 노씨는 결혼하여 아이 하나를 두었지만 부인이 버는 돈으로는 생계가 막막했고, 5·18 민주유공자 보훈혜택을 받으려고 몇 번이나 신청했지만 심의에서 떨어지자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식구들은 5월만 되면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노씨를 조선대학교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도 했다. 2005년 1월쯤 입양되어 얼굴도 모르는 딸이 훌륭히 자라 아버지를 찾는다는 소식이 왔다.

딸을 거두지 못한 죄책감과 그래도 국가에서 인정을 받고 딸 앞에 부끄럽지 않게 서기를 바란 노씨는 재심을 요청했지만, 또다시 보훈대상 심사에서 떨어지자 광주사건 추모기간인 5월 23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누나는 동생이 죽자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억울한 사정을 얘기해 이제나마 망월동에 묻히게 됐고, "보훈대상이 됐지만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대성통곡이다.

마음이 우울할 때 망월동 동생 묘를 찾아와 울고 가면 답답했던 가슴이 약간 풀린다는 노씨는 "나쁜 놈! 엄마보다 먼저 죽은 놈은 불효자야"하며 또 다시 통곡한다. 노씨의 어머니는 중풍으로 올 1월에 돌아가셨다.

도통 보이지 않던 동생이 추석 때 꿈속에 나타나길래 "그래 살아생전 못 다한 효도 죽어서나 해라"고 했다는 노씨는 울며 비석만 쓰다듬는다.

 5.18 희생자 추모 기념탑 앞에서 기념촬영
5.18 희생자 추모 기념탑 앞에서 기념촬영 ⓒ 오문수

5·18민주화운동 다큐멘터리를 관람하고 나온 최문수군은 "화려한 휴가를 봤을 때는 각본에 짜인 것으로만 알았는데 실감이 나고 무서웠다"고 했다. 쪽지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당신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이라고 기원문을 써 붙인 김다영양은 소감을 묻자 "권력의 탐욕이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심각해졌다.

사물의 색채는 빛의 조건과 광선의 종류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고,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아이들에게서 견학을 통한 창의력과 평화의 빛을 본다.

덧붙이는 글 | SBS와 남해안신문 및 뉴스365에도 송고합니다



#가을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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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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