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여인의 계절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이 사내의 계절이란 건 정말 맞습니다. 나른한 가을볕이 기어 다니는 오후, 달리는 차창으로 습격해온 가을바람이 나의 마음을 강탈해 달아납니다. 잡으려 하면 더 멀리 달아나 버려 손을 뻗기가 두렵지만 나를 간질이는 막연한 설렘 때문에 언짢지 않습니다. 다른 계절에 맞던 바람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봄바람이 살랑이고 지나면 여름바람은 흐느적거리고 겨울바람은 가난한 마음을 더 가난하게 만듭니다. 쓸쓸하지만 가을바람은 첫사랑 그 여인의 등을 떠밀어 금방이라도 나에게 안기게 하는 환상에 젖게 합니다. 가을바람이 이끄는 대로 몸뚱이를 내맡겼다간 제자리를 찾기까지 독한 홍역을 치를지도 모릅니다. 바람을 따라 발길을 뗀 곳에서 가을을 부여잡고 있는 착한 이슬을 만났습니다. 작은 바람에도 금방 떨어질 듯하지만 자신이 담고 있는 가을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이슬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예쁜 가을과 착한 이슬이 백년해로하길 소망합니다. 오랜 시간 가을바람에 노출되면 위험하겠지만 설렘을 충전할 정도까지 가을바람과 함께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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