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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근을 캐고 있는 사람들.
 연근을 캐고 있는 사람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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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지시제’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생태호수가 하나 있다. 이 지시제는 본래 작은 방죽이었다. 주변의 논에 물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했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주변에 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면서 농수를 대는 방죽의 의미를 상실했다. 대신 한 아파트 건설업체가 방죽을 작은 휴식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운동시설도 꾸며놓았고 산책로도 만들어 놓았다. 주변엔 여러 식물들을 심어 놓아 봄부터 여름까지 다양한 꽃들이 피었다. 사람들은 그 꽃들을 감상하며 아침저녁으로 걷기나 달리기를 한다. 주민들의 산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방죽 같은 호수에 연밥들이 꽃처럼 피어 있다
 작은 방죽 같은 호수에 연밥들이 꽃처럼 피어 있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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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밥. 연밥이 벌집에 들어있는 것 같다. 너무 단단하여 깨지지 않지만 열매를 까먹으면 맛이 고소하다.
 연밥. 연밥이 벌집에 들어있는 것 같다. 너무 단단하여 깨지지 않지만 열매를 까먹으면 맛이 고소하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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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지시제에 4년 전부터 연꽃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온 호수를 뒤덮어버렸다. 지금은 도심 아파트 숲속에서 향기를 주는 꽃이 되어 오고가는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냄새가 많이 난다는 것이다. 물이 썩어 나는 시궁창 냄새가 종종 역겹게 올라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주민들의 축제의 장을 열기 위해 연근 캐기와 물고기 잡기 행사가 지난 3일에 열렸다. 행사를 위해 물을 빼자 사람들은 연밥을 따기도 장식용으로 쓴다며 연대를 끊는다.

 많이 캤다우. 재미도 있구요.
 많이 캤다우. 재미도 있구요.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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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땄네요. 근데 이걸 어떻게 먹어요?”
“더 따고 싶은데 일 때문에 요것밖에 못 땄네요. 이거 잣처럼 먹으면 돼요. 고소하니 맛있어요. 이거 까 먹어보세요.”


 큰 게 걸려야 할텐데....
 큰 게 걸려야 할텐데....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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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즐겁고 좋아요.
 그저 즐겁고 좋아요.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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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밥을 커다란 가방 가득 땄던 아저씨는 연밥 하나를 주며 후후 웃으며 간다. 그런데 이건 피마자처럼 생긴 연밥을 까먹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아들 녀석은 돌멩이로 내리친다. 그래도 이리저리 튀어나갈 뿐 깨지지 않는다. 겨우 이빨로 하나 깨어 무니 고소한 냄새가 날뿐 특별한 맛은 없다.

행사가 시작되자 포크레인이 앞장을 서고 사람들이 그 뒤를 우르르 따라나선다. 연근이 깊이 박혀 캐기 힘들어 포크레인이 깊게 땅을 파 놓으면 사람들이 달려들어 흙을 뒤집어 뿌리를 줍는다. 일부는 아예 괭이와 삽으로 손수 연근을 캔다. 포크레인으로 캔 연근은 삽날에 잘려나가 크지가 않기 때문이다.

 난 얼마 못 캤는뎅....
 난 얼마 못 캤는뎅....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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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근 캐기 행사에서 주는 상은 연근 제일 긴 것 캔 사람과 가장 큰 물고기 잡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상 욕심보다 모처럼 가족끼리 와서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데 있었다.

“큰 것 캐셨네. 재미있으세요?”
“호호,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애요. 시골에서 자랐는데 우리 동네에도 방죽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조개도 잡고 물고기도 잡고 놀았거든요. 그때 생각이 나기도 하고 재밌어요.”


“에구, 아저씨도 사진만 찍지 말고 들어가서 캐보세요. 재밌어요.”
“하하, 전 됐어요. 많이 캐세요.”


 누구 것이 제일 크나? 시상식 앞에서...
 누구 것이 제일 크나? 시상식 앞에서...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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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 캐기엔 남녀노소가 없다. 엄마 아빠 따라 아이들도 한몫 한다. 얼굴에 흙이 묻어도 즐거운 표정들이다. 연근을 캐거나 물고기를 잡지 않은 사람들은 구경하기에 바쁘다.

이날의 인기 포토는 자칭 모델이 된 ‘연근아줌마’들이다. 긴 연뿌리를 무슨 관악대의 지휘봉처럼 들고 연잎 모자를 쓴 두 아줌마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활짝 웃는 표정으로 모델이 되어주었다.

 우리가 연근아줌마라우. 오늘 연근 모델이 되었어요.
 우리가 연근아줌마라우. 오늘 연근 모델이 되었어요.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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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여의 물고기 잡기와 연근 캐기가 끝나고 시상식을 하는 시간. 연근은 많은 사람들이 캤는데 물고기는 단 두 사람이다. 그 두 사람 중 가물치를 잡은 아저씨가 ‘물고기상’을 거머쥐었다. 그 가물치 아저씨가 시상대로 오자 주변의 사람들이 부러운 듯 한 마디씩 한다.

“와! 이거 가물치 아냐! 여기에 가물치도 사네.”

 나 이래뵈도 이 가물치로 상 받았다우.
 나 이래뵈도 이 가물치로 상 받았다우.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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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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