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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06년 전교조 강원지부 초등위원장으로 전교조 초등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올 해도 계속 주장하고 있는 전교조 '소규모학교 살리기 운동'에서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핵심적인 과제는 복식 학급(한 학급에서 여러 학년이 함께 수업하는 것) 철폐이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제시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방안은 이런 활동 경험이 없는 관계로 지리하게 미루어지게 되었다. 지난해 나는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했다.

 

들어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은 너무도 적막했다. 인기척을 내고 한참이 있어서야 한 분이 나와 접대를 해주셨다. 진정서를 접수하고자 한다고 하니, 그는 오늘은 종무식을 하는 날이라 업무를 처리할 수 없다고 한다. 강원도 산골 분교에 근무한다고 나의 신상에 대해 밝히고, 돌아가기 위해 예약한 기차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고 하면서 일단 의자에 앉았다. 그분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일단 가지고 온 진정서를 한 번 읽어보겠다고 하셨다.

 

그는 다음에 오셔도 진정 처리가 안 된다고 단호하게 일침을 놓았다. 그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0조 1항에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내용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쉽게 설명하면,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 중에서 자유권적 기본권은 취급하는 업무지만 사회권적 기본권은 취급하지 못하도록 명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복식학급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가 침해되었다는 나의 진정(관련 내용은 전교조 강원지부 홈페이지  참고)은 법률에 의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연속되는 허탈함에 주저 않고 싶었지만, 다른 방법은 없냐고 전문가의 고견을 독촉했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가 1년에 한 번씩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데 참고하도록 정책 제안 형식으로 의견을 제출하는 것이 최선의 방편이지 않겠냐고 방향을 제시하셨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교육권과 노동권 침해를 가지고 사회적으로 인권을 이야기할 수 없도록 드리워진 높은 장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법안 제정 당시 국회 과반수 의석을 가지고 있었던 한나라당의 인권의식과 지난 총선에서 과반수를 장악했던 열린우리당의 인권 의식이 얼마나 저급한지를 국가인권위원회법를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정책 건의가 진정 사건으로 접수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시정 요청서 농산어촌 소규모 초등학교와 분교장의 복식학급 아동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차별행위에 대한 시정 요청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시정 요청서농산어촌 소규모 초등학교와 분교장의 복식학급 아동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차별행위에 대한 시정 요청서 ⓒ 배희철

 

겨울 경춘선 마지막 기차를 타고 내려오며, 창밖을 내다보며 떠올렸던 기억의 파편은 지금 돌아봐도 참으로 차갑기만 했다. 연말연시에 관련법을 찾아보고 다양한 해석을 해보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인터넷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복식학급 아동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차별행위에 대한 시정 요청서”라는 정체가 애매한 글을 올리는 것으로 스스로 마무리를 지었다.

 

시정 요청서 3매, 관계 법령 정리 12매, 관련 기사 정리 25매 총 40매로 정리된 나의 주장을 맥없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온라인으로 제출하였다. 예상보다도 빨리 답변이 왔다. 간단하지만 명료한 답변이었다. 진정 사건으로 접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접수 번호는 07-0000029이었다. 장문의 문건을 작성한 노력이 결과를 본 순간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답변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 화면으로 본 접수한 내용과 답변 내용
국가인권위원회의 답변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 화면으로 본 접수한 내용과 답변 내용 ⓒ 배희철


국가인권위원회에 요청한 주문 사항

 

첨부 문건에 주문 사항을 구체적으로 7개나 나열하였다. 주문 내용을 요약하면, 정부는 법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조선총독부처럼 행정을 하지 말고 독립국가의 최고 행정기관답게 업무를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최근 복식 학급과 관련된 정부 정책이 다시 후퇴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내년도 초등교원 신규 임용대상자의 규모를 확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필자는 연재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시정 요청서에 차마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정부에 대한 혹독한 비난을 적는 것으로 이번 글을 마치고 다음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어떻게 진정 사건을 처리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제46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46조(학급편성) 법 제24조 제3항의 규정에 의한 학교의 학급편성은 같은 학년, 같은 학과로 하여야 한다. 다만, 학교의 장은 교육과정의 운영상 특히 필요한 경우에는 2개 학년 이상의 학생을 1학급으로 편성할 수 있다.”

 

문자로 기록된 대한민국 대통령의 업무 명령은 명료하다. 대한민국의 학급은 단식학급으로 편성해야만 한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는 복식학급을 편성할 수 있다. 그 특별한 경우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없도록 구체적으로 제약했다.

 

복식학급을 편성하는 것은 일선 교육 현장에서 단위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교장만이 할 수 있다. 또한 교장은 오직 학생들을 위해 교육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복식학급을 편성할 수 있다고 적시함으로서 가급적 복식학급 편성을 자제하도록 명령하고 있다.

 

위 조항을 통해 교육 행정 기관이 복식학급 편성기준을 정하는 행정 행위는 형법 123조에 적시된 직권남용죄(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죄)에 해당하는 범법 행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 노무현도 다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교장 그리고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를 배제시키고, 법령으로 적시된 대통령의 명령을 어기면서 교육 행정 기관이 일방적으로 복식학급을 편성시키는 조선총독부 이래의 식민지 교육 행정 관행을 되풀이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는 이러한 식민지 행정 교육 관행을 독려하는 정책(교원 총 정원제, 중장기교원수급정책,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 기안지 위에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사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복식학급#소규모학교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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