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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약속만 지킨다면 태감어른의 뜻대로 하시는 것이 무에 상관이겠습니까?”

서로 한 약속. 이 운중보 안에서만큼은 조건 없이 서로 협력하자는 약속이다. 위충현 태부의 이신(二臣)마저 운중보로 불러들일 것이라곤 용추마저도 예상하지 못했다. 삼재와 팔번의 절반을 희생당했는데도 위축되지 않고 있었음은 바로 이신을 믿고 그러했을 것이다.

신발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주위에서 떨쳐버린 적이 없는 이신마저 추태감에게 보내주었다는 것은 위충현 태부마저도 이 일에 대해 그 심각함과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일이 생각보다 커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파악하고 있던 것처럼 단지 추태감과 중의가 역모를 꾀하는 것이었다면 그 대책은 이미 세워놓았다. 허나 위태부마저 이 일에 간여하고 있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이신까지 보낸 이상 이 안의 상황도 보고받고 있을 터.

상만천과 자신이 의도한 대로 일이 풀리더라도 운중보를 나서는 순간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상대는 황제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위충현 태부요, 그 직속의 추태감이다. 용추는 가슴이 답답해 옴을 느꼈다. 왜 추태감이 자신들과의 협력에 선뜻 응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본관은 자네에게 이제부터 어떻게 술래잡기를 성공적으로 끝마칠 것인지 묻고 있네.”

추태감 역시 상만천과 마찬가지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동상이몽이지만 나름대로 마지막 안배까지 펼쳐 보인 다음에도 위축될 필요는 없을 것이고, 또 다른 안배까지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용추는 풍철한과 그들 일행이 사라진 숲을 쭉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함곡의 얼굴에 시선이 멈췄다.

“어쩌면 함곡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나와 같은 존재는 할 일이 없는 것이죠. 술래잡기에서 필요한 것은 두뇌가 아니라 감각과 무공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과도 같은 것이다. 전략이나 병법도 사실 이런 경우에는 무의미하다. 용추의 말대로 감각과 무공의 우열만이 승부에 직결될 터.

“다만 술래잡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술래가 되기만을 바란다면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추태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또한 자신의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면 똑같은 결과가 나오겠지.”

용추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추태감의 두뇌는 정말 뛰어나다. 자신의 말을 알아듣고 이 싸움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자세까지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동료들과의 협력체계다.

아마 추태감이 용추에게 바란 것은 이것일 것이다. 유기적인 조직체계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해 주는 일. 허나 용추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것은 자신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추태감과 상만천이 타협을 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다른 마음이 있다면 이 생사림 밖으로 나가는 것이 유일하게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용추의 시선은 추태감과 상만천의 얼굴을 거쳐 한쪽에서 방관하고 있는 듯한, 그러나 그들로서는 나설 처지가 되지 않아 방관하고 있는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육파일방의 인물들에게로 향했다.

숫자만 많다고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들이 오히려 잘못 움직이면 유기적인 조직에 혼란만 가중된다. 추태감과 상만천의 고민도 이것이었다. 이미 싸움은 시작되었고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 허나 저들이 변수였다.

저들은 회의 전력이었지만 지금처럼 회 내부에서 틈이 벌어지면 저들의 태도여하에 따라 다된 밥에 재를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터였다. 쉽게 저들이 추태감 쪽으로 붙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상만천 쪽으로 붙는다면 그 반대쪽은 내일 해가 뜨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될 터였다. 이러한 어둠 속에서는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이 더 무서웠다.

“지금이라도...”

추태감이 무당의 청송자와 점창의 사공도장을 바라보자 청송자가 헛기침을 터트렸다. 언제나 타협하면서 둥글둥글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인물이 청송자다.

“허헛. 동창과 무당은 한솥밥을 먹는 사이가 아니오? 그 관계가 그저 수년 된 것도 아닌데 무엇을 걱정하고 계시오?”

청송자 뒤에 서있던 무당오검 역시 검을 앞으로 치켜들며 무언의 동조를 보였다. 점창의 사공도장 역시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점창 역시 더 이상 무슨 말씀을 드리리까?”

두 군데 모두 대답은 추태감이 원하는 쪽이었다. 이제 저들의 태도는 확정되었다. 추태감이 상만천과 용추를 보았다.

“모습을 보이지 않는 철기문은 자네가 다독거려놔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자신과의 관계가 껄끄러워 여기에 같이 자리하지 않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터였다. 그리고 추태감이 말을 꺼낸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철기문의 두 형제는 자신의 사주로 혈간이 죽은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든 어둠 속에서 자신을 노릴 것은 뻔한 일. 일단 운중보 내에서만큼은, 아니 최소한 이 생사림 안에서만큼은 그런 위험을 안고 싸움에 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이오. 그 점은 염려 놓으시오.”

상만천이 흔쾌히 대답했다. 사실 자신이 약속했다고 해서 철기문에서 추태감을 노리지 않을 것도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 안 어딘가에서 이곳을 지켜보고 있을 그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보여줌으로 해서 추태감에게 약속을 하고 그들에게도 역시 추태감을 이 안에서 노리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셈이다.

나중에 그들이 자신의 경고를 무시했다고 해서 추궁할 것도 아니었다. 물론 드러내놓고 그럴 수는 없지만 오히려 상을 주어야 할 일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손해 볼 일이 없었다.

“어떻게 움직일 생각인가?”

“술래잡기 말이오?”

상만천은 뭔가 복안이 있는 듯 자신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장 간단한 전략이 최선의 방책이오. 손발이 맞는 사람들끼리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상대를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것.”

용추가 고개를 끄떡였다. 역시 상만천은 자신의 주군이 될 자격이 있는 인물이다. 생각은 매우 신중하고 오래하면서도 상황이 닥치면 명쾌하고 간단하게 결정하는 담량을 가지고 있다. 그릇이 크다.

“그럼 결정되었군. 술래잡기에서 모두 뭉쳐있는 것은 안전하기는 하지만 별 득이 되지 못하지. 상대의 목표가 하나가 되니 말이야. 일행을 셋으로 나누기로 하세.”

천과와 팔번 중 셋을 포함한 자신의 일행. 상만천 일행, 그리고 육파일방의 인물들 일행으로 나누자는 말이다.


#천지#추리무협#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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