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통합민주신당 이해찬, 유시민 대선예비후보가 이해찬 후보로 단일화 기자회견을 한 뒤 손을 맞잡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이해찬, 유시민 대선예비후보가 이해찬 후보로 단일화 기자회견을 한 뒤 손을 맞잡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백승렬

지난달 18일 저녁 여의도의 한 호프집. 이날 대선 예비후보 캠프 해단식을 마친 유시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기자들과 번개모임을 열었다. 유 의원은 "유시민이 확실하게 망가져 주겠다, 방금 동영상 촬영을 끝내고 왔다"고 말했다.

이틀 뒤, 판도라TV에서 공개된 유 의원의 동영상 UCC 제목은 '캠프가 망했어요. 폰투유를 부탁해'. 헝크러진 머리에 불쌍한 표정, 우스꽝스러운 손동작, 넥타이를 풀어헤친 '망가진' 모습으로 유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결국 캠프가 망했어요. 그래서 다른 캠프로 인수합병 되었어요."

대선후보 사퇴 이후 이해찬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이 된 유 의원은 누리꾼들의 모바일 투표 참여를 독려하며 "박스떼기·리어카떼기… 폰떼기로 본때를 보여줘요, 이해찬을 부탁해요, 휴대폰으로 부탁해요"라고 호소한다. 배경 음악으로는 자신의 애창곡인 '무조건'이 흘렀다. 이 동영상은 업로드 이후 조회수 20만을 넘기며 인기를 끌었다.

유시민 "캠프가 망했어요. 이해찬을 부탁해요"... 모바일에 올인

'폰투유'란 '(휴대)폰 투표 유시민군단' 이라는 뜻이다. 자신을 지지했던 젊은 유권자들에게 신당의 모바일 투표에 참여, 이해찬 후보를 지지할 것을 호소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 의원은 "나는 20~30대 젊은 유권자를 끌어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유 의원은 후보시절 함께 했던 사이버 홍보팀 20여명을 전원 재가동해 '휴대폰 특별위원회'도 만들었다.

특히 유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고양시 덕양 갑)을 버리고 내년 총선에서 대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해찬 후보의 득표를 위한 배수진이다. 유 의원으로서는 모든 것을 내걸고 '올인'한 셈이다.

때문에 이 후보측은 유 의원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에 총력을 기울이며 큰 기대를 걸었다. 심지어 유 의원의 대선 출마를 반대했던 이광재 의원조차 "젊은 층은 이해찬 후보가 앞선다, 유시민 효과가 있다면 모바일에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록 지역순회 경선에서는 큰 표 차이로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인터넷 활용 능력이 뛰어난 '유티즌(유시민 지지 네티즌)' 등이 적극적으로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에 나서면 2002년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가 연출했던 드라마가 재현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해찬 후보측 윤호중 전략기획본부장은 "휴대전화 투표에서 '반칙 후보'인 정 후보에 대한 국민의 책임추궁이 시작됐다"며 "손 후보도 휴대전화 투표 홍보를 열심히 하지만 온라인 선거를 오프라인 방식으로 홍보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정동영 후보측은 공공연히 "우리는 모바일 선거에서 2등"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유 의원이 뛰고 있는 이해찬 후보는 이길 수 없지만 적어도 손학규 후보는 이길 수도 있고, 이겨야 한다는 절박감이었다. 정 후보측으로서도 모바일 선거에 있어서는 이해찬 후보가 아니라 유시민 의원과의 싸움으로 규정했다. 정 후보측 민병두 의원은 "현재 모바일 투표는 대개 이해찬·유시민 캠프의 조직선거라고 본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블랙박스' 뚜껑 열어봤더니... 참패

 휴대전화 국민경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예비후보가 10일 서울시청앞에서 출근하는 시민들을 향해 춤을 추며 휴대전화 투표 참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휴대전화 국민경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예비후보가 10일 서울시청앞에서 출근하는 시민들을 향해 춤을 추며 휴대전화 투표 참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이종호


그러나 모바일 투표 첫 개표를 하루 앞둔 지난 7일 유 의원은 "모바일 선거인단은 일종의 '블랙박스' 같아서, 뚜껑을 열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며 주춤거렸다. "불법 콜센터를 차려서 '콜떼기'했던 사람들은 (결과를) 알 것"이라고 말해, 정동영 후보측 의 불법·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했지만, 불안감은 깊어 보였다.

이날 이해찬 후보도 "불법하고 무도한 불법 세력에게 이 경선을 내주고 만다면, 더러워서 피하고 외면한다면, 진실이 없는 곳에 요괴가 판을 치게 만든다면 우리는 비겁한 사람"이라며 여느 때보다 전의의 강도를 높였다.

불안감은 현실로 드러났다. 8일 1차 휴대전화 투표의 뚜껑을 연 결과 이해찬 후보의 '참패'였다. 손학규 후보가 유효투표 2만175명 중 7649표(36.5%)를 얻어 1위를 차지했고, 2위 정동영 후보는 7004표(33.5%)를 기록했다. 반면 이해찬 후보는 6285표(30.0%)에 그쳤다.

이해찬 후보측 김형주 대변인은 "문제가 있는 선거인단에 대해 전수조사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휴대전화 선거인단의) 정당성에 대한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불씨를 남겼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2차 휴대전화 투표 결과는 더 처참했다. 11일 실시된 투표에서 손학규 후보가 유효투표 5만2211명 중 2만1359표(38.4%)를 얻어 1위를 차지하고, 정동영 후보가 1만9288표(34.6%)로 2위를 기록한 반면, 이해찬 후보는 1만5035표(27.0%)로 3위에 그쳤다.

김형주 대변인은 "아직 진실의 해가 뜨지 않았다"며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이미 팽배했다. 유시민 의원은 1·2차 휴대전화 투표 결과 발표장에 모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비호감' 이해찬이 넘지 못한 '조직'의 벽

이번 모바일 투표 선거인단 연령별 비중은 19~29세가 약 25%, 30~39세가 약 32%였다. 예상대로 핸드폰를 다루는 데 익숙한 젊은층이 다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가 모바일 투표에서 전패한 것은 과거 '노사모 드라마'를 연출했던 20~30대의 정치적 성향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해찬 후보측 한 관계자는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내용적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젊은층이 과거처럼 정당성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 등 실용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다"면서 "또한 감성적이고 감각적이다, 강력한 임벡트를 주는 지도자를 원하기 때문에 외모를 보고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이해찬 후보가 상대 후보에 비해 '비호감'이라는 말이다.

김형주 대변인도 "이해찬 후보의 이미지상 20~30대에서 불리한 측면이 있었다"며 "현재의 정치적 사안을 잘 알기보다는 무관심 속에서 외형적인 것을 보고 투표하는 성향이 강한 젊은층이 보기에는 아무래도 손학규·정동영 후보가 더 젊어보이고 역동성이 있어 보였다"고 지적했다. 유시민 의원이 이해찬 후보의 이미지까지 대신할 수는 없었다는 말이다. 가장 믿었던 곳에서 '허점'을 찔린 셈이다. 

선거는 결국 '조직'이다. 모바일 투표가 아무리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했고, 지역 순회 경선보다 3~4배 높은 70% 이상의 투표율을 보였다 하더라도, 조직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쉽게 말해 '아는 사람 소개로 모바일 투표에 가입한 사람은 아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이미 지역 순회 경선을 통해 조직력의 열세를 여실히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이해찬 캠프 측 한 인사는 "모바일 투표는 다른 오프라인 투표에 비해 신청받은 사람이 강제하기 어렵다"며 "객관적으로 우리 후보가 대중들에게 덜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라고 자인했다.

'반노의 벽' 못 넘은 친노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예비후보가 10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자 서울 경기지역 합동연설회에서 연설을 마친 후 정동영 이해찬 후보와 악수하고 있다.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예비후보가 10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자 서울 경기지역 합동연설회에서 연설을 마친 후 정동영 이해찬 후보와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가장 큰 패인으로 '반노(무현)'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김형주 대변인은 "이번 선거는 호남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호남 출신 사람들이 적극 투표층이었는데, 아무래도 그들은 반노 감정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40%대까지 올라갔지만, 그것은 '현재 노무현'의 지지율일 뿐이다. 이해찬 후보를 대표로 한 '친노 그룹'에게는 여전히 '과거 노무현'과 '참여정부의 실패, 열린우리당의 패착' 이미지가 더 강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통합신당 자체가 현재 대중적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고, 조직동원 선거가 극대화돼, 이것만으로는 민심의 향배를 알기 어렵다"면서도 "노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할 지라도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지난 기간 보여줬던 것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외면한 것은 사실이다, 친노가 대중적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해찬 후보가 정동영 후보보다 결코 경쟁력에서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기대감을 끌어내지 못했고, 결국 조직력에서 졌다는 것이다. 이른바 '친노 후보의 역할론'에서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친노 그룹은?

일단 정동영 후보가 신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다고 해서 당이 급속도로 '정동영당'으로 전환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큰 차이기는 했지만 2위를 한 손학규 후보 중심의 386계, 중도중진계, 중립 386계, 그리고 친노계로 나뉠 수 있다.

그러나 성향상 정동영계와 가장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울수 있는 그룹은 역시 '친노계'다. 그렇다고 당장 당내 균열을 낼 수도 없다. 곧바로 경선 불복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견제 세력'으로서 자리매김을 한 뒤, 향후 대립이 극대화 되면 '이탈'까지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후보가 안됐으면 당권이라도 먹어야 한다"며 내년 총선을 겨냥한 '한명숙 대표설'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일정부분 친노그룹이 당내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은 져야 한다"며 "지금 상황에서 당장 문국현 후보나 제3의 대안을 찾아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이해찬 후보를 중심으로 한 친노 그룹에서의 좌절감과 패배감은 예상보다 깊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정동영측 관계자)는 말대로 그들의 향후 행보는 극히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해찬#유시민#친노 반노#대통합민주신당 경선#모바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