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은 자신이 언제 죽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도 계절이 바뀌는 걸 여든 번까지는 세었고 나무를 하러 다니던 꼬마가 백발성성한 늙은이로 된 모습까지 보았다고 하니 백년은 족히 넘었을 것으로 짐작할 따름이었다. “사람도 그렇고 귀신도 백년이나 묵기는 쉽지 않아. 내가 귀신일 때만 해도 죽은 지 몇십년은 되었다는 귀신을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온데간데없지.” 여인은 어느 집성촌 시골 농부의 막내딸이었다. 열다섯에 시집을 가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그에게 시련이 닥쳐온 것은 대규모 민란이 일어나면서부터였다.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제 자식까지 잡아먹을 지경이 되어도 수령이라는 자는 전에 꿔다 먹은 환곡을 갚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외면했고 참다못한 사람들이 민란을 일으킨 것이지.” 귀신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김학령은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래서 민란을 진압하러 온 관군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뭐 그런 얘기구려.” 귀신의 눈이 괴이하게 번쩍였다. “너 그렇게 말하지 마라. 그리고 단지 그런 일로 내가 백년이 넘도록 혼백이 흩어지지 않고 귀신으로 남아 있겠나? 내 죽은 후에 이런 얘기는 처음 하는 거라. 감정을 추스르느라 그러니 도중에 끼어들지 마!” 귀신의 무서운 기세에 김학령은 움츠려 들어 등을 벽에 붙인 채 무릎을 접고 팔로 깍지를 낀 자세로 조용히 귀신의 말을 기다렸다. “민란으로 인해 고을 수령은 자리를 내어 놓아야 했지만 나라에서는 민란의 주동자들도 역시 용서할 수 없다고 하여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어.” 여인에게 시련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흉작은 다음 해에도 계속되었고 더 이상 환곡을 꿔다 먹을 수 없던 여인의 남편은 주린 배를 이끌고 이곳저곳에서 노역을 하다가 그 해 갑자기 불어 닥친 태풍으로 인해 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여인이 살던 집도 떠내려갔고 여인의 자식 셋도 모조리 목숨을 잃었다. “미쳐 버릴 일이었어. 정말 하늘을 원망했지. 목적지도 없이 허위허위 가는 산길에서 난 정신이 나가 엉뚱한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고 인적 없는 골짜기까지 와서는 하염없이 통곡하기 시작했어.” 여인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사흘 밤낮으로 통곡했다. 결국 울다 지쳐 쓰러진 여인은 쓰러져 죽었고 어느 누구 하나 거두지 않은 여인의 말라 비틀어진 시체는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내 분노를 대체 어디에 풀어야 할지 알 수 없었어. 내 한을 풀어야 할 대상조차 찾지 못하고 내 혼백은 이 주위를 떠돌았지. 골짜기에서 조금 더 나가면 사람이 다니는 길이 있었지만 난 그들과 마주 대하기조차 싫었어. 그냥 이대로 귀신으로 살아가다가 혼백이 흩어지면 그만이라고 여겼지. 그동안 다른 귀신들도 만나고 우연히 길을 잃은 사람을 보기도 했지만 별 의미는 없었어.” 귀신은 갑자기 입가에 으스스한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근래 이 주위가 소란해져 나가보니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더구먼! 그것도 한을 가지고 이 땅에서 몰아내고자 한 놈들에게 말이야.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말이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저승 가는 길이 외롭지 않을 거란 말이야. 흐흐흐.” 김학령은 그 말에 조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의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귀신은 더욱 흉한 목소리로 웃어대었다. “넌 미리 도망칠 궁리나 한 주제에 뻔뻔스럽게 그런 소리를 잘도 하는구나!” 김학령은 그 말에 슬쩍 부끄러워졌지만 이대로 인정하고 굽힐 수는 없다고 여기고선 소리쳤다. “뭐,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게냐! 나도 거기서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어!” 또 다시 괴괴한 웃음을 터트린 귀신은 김학령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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