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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혁신도시 사업단과 시행사인 대한주택공사가 있는 건물 앞으로 이 지역 주민들이 꽂아 놓은 깃발이 만장처럼 서 있다.
 충북 혁신도시 사업단과 시행사인 대한주택공사가 있는 건물 앞으로 이 지역 주민들이 꽂아 놓은 깃발이 만장처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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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대한주택공사는 충북 혁신도시가 들어설 지역의 토지 보상가격을 확정해 해당 주민들에게 통보했다. 보상가격은 도로에 인접해 있는지 등을 고려해 가격차가 나고 3.3㎡(1평) 기준 평균 15만원 정도다.

주민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 혁신도시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가 있는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를 17일 방문했다. 가을 추수로 분주해야할 농민들이 대책위 사무실이 있는 마을회관에 걱정을 입에 물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있었다.

'영원한 충북도민이며 두성리 주민이길 원한다. 조상의 뼈와 피, 정기가 서린 곳으로 어떠한 시련에도 떠나지 않을 것이며 유신시절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은 각성하라! 악법으로 생존권을 박탈하려 한다면 죽음으로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

먼저 마을회관 거실에 붙어 있는 '우리의 결의'란 제목의 벽보가 눈길을 잡아끈다. 주민들의 분노어린 눈빛 뒤로 고향을 등져야 하는 근심을 벽보에서 읽을 수 있었다.

거실에 앉아 있는 한 주민에게 신분을 밝히고 질문을 하자 "됐다"고 잘라 말하고 "아무리 지껄여도 수박 겉핥기로 나오는데 그까짓 거 만날 해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말로 언론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손사래를 쳤다.

대책위 관계자는 "그동안 언론 보도가 주민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외면했기 때문"이라면서 "토지보상가를 접한 주민들의 감정이 복 받칠 대로 받친 것도 불만을 드러내는데 한몫했을 것"이라며 사무실로 손을 잡아끈다.

전국과 충북 혁신도시대책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임윤빈(55) 위원장을 통해 주민들의 걱정을 들을 수 있었다. 임 위원장은 반나절의 인터뷰 시간동안 차분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주민들의 입장과 향후 대책에 대해 설명했다.    

"2평 팔아서 인근 땅 1평도 못 살 지경"

 걸려온 전화를 받아 든 임윤빈 위원장이 보상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걸려온 전화를 받아 든 임윤빈 위원장이 보상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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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보상가를 접한 주민들의 반응을 묻자 임 위원장은 "모두가 어처구니없어 한다"며 "시행사인 대한주택공사에서 통보한 대로라면 2평을 팔아서 인근에 있는 땅을 1평도 제대로 못살 형편이다 보니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혁신도시 편입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토지거래내역을 제시했다. 3.3㎡당 30여만원에 거래된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자료대로라면 토지보상을 받아서 양도소득세를 내고나면 인근에서 같은 면적은 고사하고 반절의 땅도 구입하지 못하는 형편에 놓이게 됐다.  

현재 주민들은 실거래가격을 기준으로 토지 보상가가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행사인 대한주택공사(아래 주공) 측은 혁신도시 건설로 인해 부풀려진 땅값이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밝혀 양측이 큰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주공 측의 입장에 대해 임 위원장은 "이주 했을 때 나아지진 않더라도 현재 생활은 유지해야 적정한 보상이 아니냐"며 "현재의 보상가로는 현상유지는 고사하고 도시빈민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노를 토해냈다. 

이어 임 위원장은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내 고향 버리고 누가 타향살이 하고 싶겠냐"며 "토지평가 과정에 주민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임 위원장과 인터뷰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휴대전화가 자주 울렸다. 기자를 의식한 때문인지 짧은 대답만하고 끊었지만 토지 보상가격과 관련해 걸려온 전화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대책위 관계자들은 "주공 측에 항의하면 평가사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국회의원이 돼서 법을 고쳐오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건설교통부 측은 현재 거래되고 있는 땅값과 시행사가 주민들에게 통보한 땅값이 비슷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며 한숨을 쏟아냈다.

"외부인들, 개발되면 로또 당첨된 줄 아는데..."

대책위 관계자들은 "주변에서 '개발돼서 좋겠다', '로또 맞은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제일 듣기 싫다"고 말했다. 또 '땅값 많이 받으려고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편견에 "침을 뱉고 싶은 심정"이라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우리고향이 이렇게 살기 좋은지 이제야 알았다"고 말하는 임득순(49)씨
 "우리고향이 이렇게 살기 좋은지 이제야 알았다"고 말하는 임득순(49)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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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에 대해 대책위 임득순(49)씨는 "내 고향이 농사짓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고 농사지어먹기 좋은지 이번에야 알았다."며 "토질도 좋거니와 수박농사 지으려면 물이 많이 필요한데 어디든 파면 물이 나오고 암반도 거의 없이 파기도 좋다"고 자랑했다.

또한 임씨는 "이주를 염두에 두고 인근의 시군 지역을 가봤다"며 "일단 물이 있어야 농사를 짓는데 물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았고 암반 때문에 지하수를 뚫는 것도 문제가 많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임씨는 "작은 마을이지만 한 농가당 적게는 5천만원에서 많게는 2억원 정도의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며 "우리가 어디 가서 이런 수익을 올릴 수 있으며, 뿔뿔이 흩어져 다른 지역에서 농사를 지을 경우 음성군과 같은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이 지역은 '음성 다올찬 친환경 수박특구'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12억5천만원이 투자돼 육묘장이 지어지고 있으며, 완공됐을 경우 농민들은 운송비 절감과 모종을 싸게 공급받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음성군에서 해마다 19~20억원이 이 지역 수박 농가에 지원돼 생산시설 자재구입 등에 쓰여 지고 있다.

더이상 못짓게 된 수박농사, 농업손실 보상도 문제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것을 보상받는 '농업손실보상'도 문제라고 임 위원장은 지적한다.

수박을 백화점, 전문도매상가, 농협 등을 통한 계통출하를 한 경우에는 3.3㎡당 3만원 정도를 보상받지만 개인 간의 거래(포전매매)는 소득으로 인정받지 못해 평당 6670원을 보상 받는 것이 고작이다.

임 위원장은 "이 지역 농가 중 계통출하를 통해 근거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은 2~3%에 불과하다"며 "대다수의 농가는 계통출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지역 농민들은 포전 매매를 한 경우도 해마다 같은 시기에 수천만원이 거래된 사실이 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계통 출하와 같이 보상을 해줘야 한다"며 "농사짓는 사람이 어디서 돈이 생겨 그런 거래를 하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누가 혁신도시가 들어올 줄 미리 알고 수년전부터 정기적으로 큰 돈거래를 했겠느냐"고 억울해 했다.

 '이 터전 수호하여 고향에 살리라!'는 문구한 한 창고벽에 쓰여 있다.
 '이 터전 수호하여 고향에 살리라!'는 문구한 한 창고벽에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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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지만 합리적으로 대처할 것"

이곳 주민들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정하지만 양도소득세에 대한 얼울함을 호소한다. 부동산 투기를 해서 얻은 소득도 아니고 더욱이 공적인 사업을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하며 땅을 내놨는데 세금을 물리는 건 너무하다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묻자 난감한 표정을 내보인 임 위원장은 "주민들은 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하지만 재산권을 빼앗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할 경우 자칫 큰 불상사로 이어질 수도 있어 설득하고 있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한 임 위원장은 "최대한 합리적인 방법을 동원해 저지할 계획"이라며 "지장물 조사를 거부하고 현지인은 물론 외지인들과도 힘을 합쳐 보상금을 수령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밝혔다.

임 위원장은 "박수광 음성군수를 비롯해 음성군청 관계공무원들이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사업을 추진하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어 잘 되리라고 본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토지보상가에 대한 협의기간은 이달 17일부터 12월 5일까지다. 지역주민들과 기업체, 시행사인 주공과 주무부처인 건교부가 열린 마음으로 앞으로 남아있는 50일의 협의 기간 동안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대안을 끌어내길 기대한다.  

대책위 사무실을 나설 때 한 농민이 던진 말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농사는 생명과도 같은 뿌리산업이유. 농민들에게 지원은 못할 망정 빼앗아 가면 안되잖어유?"
 전국혁신도시 주민대책위 연합회 본부가 있는 충북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 마을회관
 전국혁신도시 주민대책위 연합회 본부가 있는 충북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 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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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회관 거실에 붙어 있는 벽보 '죽음으로 지키겠다'는 글이 슬픔으로 다가온다.
 마을회관 거실에 붙어 있는 벽보 '죽음으로 지키겠다'는 글이 슬픔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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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책위의 동의없이 협의 보상금을 수령하지 않겠다고 주민들간 약속한 확약서
 대책위의 동의없이 협의 보상금을 수령하지 않겠다고 주민들간 약속한 확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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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행사인 대한주택공사 건물 앞에 '혁신도시 세금폭탄 왠말이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행사인 대한주택공사 건물 앞에 '혁신도시 세금폭탄 왠말이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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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행사 건물앞에 꽂혀 있는 '필승'이라 쓰인 낡은 깃발이 맑은 가을 하늘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시행사 건물앞에 꽂혀 있는 '필승'이라 쓰인 낡은 깃발이 맑은 가을 하늘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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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은 "보상비 필요 없으니 우리가 살던 내로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주민들은 "보상비 필요 없으니 우리가 살던 내로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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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의 없는 혁신도시 결사 반대'란 문구가 주민들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다.
 '동의 없는 혁신도시 결사 반대'란 문구가 주민들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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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주민들은 "채권장사와 보상비 유치를 위해 와 있는 금융기관을 보면 부화가 치민다"고 말한다. 시행사 건물 앞에서 자사의 영업을 알리고 있는 홍보물들
 이곳 주민들은 "채권장사와 보상비 유치를 위해 와 있는 금융기관을 보면 부화가 치민다"고 말한다. 시행사 건물 앞에서 자사의 영업을 알리고 있는 홍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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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행사 건물 인근에서 금융기관의 영업을 알리고 있는 홍보물들
 시행사 건물 인근에서 금융기관의 영업을 알리고 있는 홍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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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들에게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 준 수박하우스 앞에서 한 촌로가 콩수확에 여념이 없다.
 농민들에게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 준 수박하우스 앞에서 한 촌로가 콩수확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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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청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혁신도시#충북#맹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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