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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부쟁이의 꽃말은 '그리움'이다. 꽃에 대한 전설을 보면 왜 꽃말이 그리움인지 알 수 있는데 간략하게 소개하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마을에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대장장이) 딸이 있었다. 사람들은 ‘쑥 캐는 불쟁이네 딸’이라 해 ‘쑥부쟁이’로 불렀고, 그는 산에서 우연히 위험에 빠진 젊은 사냥꾼을 구해 주게 된다. 하지만 다시 만나자고 굳게 약속했던 사냥꾼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기다리다 지쳐 버린 쑥부쟁이는 그만 절벽에서 떨어져 생을 마감하고 만다. 얼마 뒤 그 자리에는 여태 못 보던 보랏빛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이를 쑥부쟁이라 불렀다."

 

'쑥부쟁이'라는 이름은 '쑥'(쑥을 캐는 딸)과 '불쟁이'(대장장이)이 합쳐져서 이뤄진 말이다. 쑥부쟁이의 종류도 다양하고, 피어나는 곳도 다양한데 그동안 만나 사진으로 남긴 것은 모두 다섯 종류로 갯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가새쑥부쟁이, 섬쑥부쟁이, 쑥부쟁이다.

 

 
쑥부쟁이는 가을꽃이다. 가을꽃이 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 '한 송이 국화를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하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듯이 가을 들판에 피어나는 국화과의 꽃들은 아주 오랜 인내의 시간 끝에 피어나는 것이다. 물론 쑥부쟁이도 국화과의 꽃 중 하나이다. 그 꽃이 그 꽃 같아 통칭 '들국화'라고도 불리지만 도감에도 '들국화'라는 이름을 가진 꽃은 실재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듯이 들꽃 심지어는 잡초들도 다 이름이 있는데 우리들은 그 이름을 불러주는데 너무 인색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도 처음에는 '그냥 꽃이라 불러주면 되지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했다. 그런데 그들을 사랑할수록 알면 알수록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 최소한의 예의가 없다고 들꽃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들꽃들이 열려 있으니까.
 
 
그러나 그냥 그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아가씨'라고만 부르는 사람은 없을 터이니. 세세한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구절초, 쑥부쟁이, 해국, 개미취가 서로 다른 꽃이라고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 여행을 가면 즐겁다.
 
산을 좋아하는 분들이 만든 산악회의 회원들과 산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분들에게는 오직 정상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내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산꼭대기까지 이어진 길에 피어 있는 수많은 꽃들과 풀숲에 숨어 있는 곤충들과 나무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정상정복'이라는 말도 어불성설이지만 산길이 왜 직선이 아니고 곡선인지,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지, 산과 자연이 주는 소리에는 마음의 귀를 틀어막고 산행을 한다고 하고, 산을 좋아한다고 한다. 짝사랑도 좋지만 이 정도면 거의 스토커 수준이 아닐까 싶다.
 
 

꽃 이름을 제대로 불러준다는 것의 의미, 비단 꽃의 이름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자연들과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준다는 것은 그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을 안다는 것, 그것은 이름만 알아서 되는 일이 아니다. 부부 간에도 서로 알지 못하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인데 어찌 이름만 안다고 그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 이름만 안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꽃 이름을 알면 그를 다 알아버린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 꽃을 좋아하는 방법도 다양한데 어떤 분은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꽃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한다.

 

실제로 겪은 일 두어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희귀종 꽃을 다른 사람이 담지 못하게 하려고 사진촬영 후 꺾어버린 경우, 좀 더 좋은 배경을 얻고자 꽃을 꺾거나 뽑아서 인위의 장소에 가져다 놓은 경우가 있었다. 꺾은 꽃이야 뿌리가 남아 있으니 내년을 기약한다고 하더라도 뿌리째 뽑힌 꽃은 내년을 기약할 수도 없다.

 

물매화가 계곡 바위틈 기가 막힌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특종이다!' 애써 올라갔지만 누군가 옮겨놓은 것이었고, 이미 물매화는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었다. 그런 짓을 한 이는 추측건데 물매화란 이름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어떤 위치에서 찍어야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으나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지난밤 가을비가 소리없이 내린 후 비 내린 아침은 싱싱했고, 깨끗해 보였다. 꼭 필요한 때에 적당하게 내려준 것 같아 고마웠다. 비가 내릴 때 자연은 목욕을 한다. 찌든 때를 벗겨 내기 위해서는 더 강한 비가 필요하고, 때론 강아지들이 털에 붙은 이물질을 떼어내기 위해 몸을 떨어야 할 때가 있다.
 
더 강한 비가 폭우라면, 먼지를 떨어내기 위한 몸부림은 지진이다. 그러나 마음 아픈 일은 자연의 몸부림 앞에서 늘 피해자는 정작 가해자들이 아니요, 늘 이 사회의 약자들이라는 점이다.
 
이제 서리가 내리고 단풍이 드니 가을꽃들도 하나둘 내년을 기약할 것이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쉼이니 이별이 마냥 슬픈 것만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쑥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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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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