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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22일에도 그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구지검 국정감사를 위해 대구를 방문했던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7명의 의원들은 피감기관 검사와 폭탄주를 마셨다. 단지 향응을 받은 주역들이 바뀌었을 뿐 그날도 감사를 하는 의원들이 감사를 받아야 할 검사들과 만나 술을 마셨다.

 

그러나 주 의원의 '폭언'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뜨거워지면서 정작 본질이라고 할 수 있던 의원들과 피감기관의 '부적절한 만남'은 뒤에 묻혀졌다.

 

그리고 2년 뒤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은 또 다시 피감기관 관계자들과 폭탄주를 마셨다.

 

과기정위 향응 파문 2년 전 '대구 술자리 파문'과 닮은 꼴

 

<동아일보>는 2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 6,7명은 22일 대전특구지원본부 등 7개 기관에 대한 국감을 마친 뒤 대전 유성구의 단란주점에서 피감기관 관계자들에게서 수백만 원어치 향응을 제공받았다"고 보도했다.

 

또 "단란주점에 갔던 국회의원 중 2명은 술자리가 끝난 뒤 여종업원과 함께 '2차'를 갔다"며 성접대 의혹까지 제기했다.

 

술자리에 간 것으로 알려진 임인배 의원(한나라당), 김태환 의원(한나라당), 류근찬 의원(국민중심당)은 <동아일보>의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임 의원은 "술자리 비용은 20만원 정도였고, 성매매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관련 보도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키로 했다고 밝혀 향응 파문은 진실게임으로 다시 접어들었다. 한나라당은 소속 의원이 향응 파문에 연루된 점에 급히 사과하고 당 차원의 진상조사를 벌여 엄정한 처벌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년 전 '대구 술자리 파문'도 주 의원의 '폭언'에 대한 진실게임으로 접어들면서 정작 향응 문제에 대해서는 유야무야 끝난 바 있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관련 의원들이 제소가 됐지만 결과적으로 철회되는 해프닝을 맞기도 했다.

 

결국 2년 전 대구 L 단란주점이 오늘의 대전 A 룸싸롱으로 변했듯 또 다른 피감기관 향응 파문이 생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동료만은 지켜냈던 국회의원들

 

2005년 '대구 술자리 파문'이 아무런 교훈없이 잊혀지게 된 데는 국회의원들과 일부 보수 언론의 '침묵의 카르텔' 탓이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대구 술자리 파문'을 주 의원 개인의 '폭언' 문제로만 좁히기 위해 물타기에 열중했다. 2005년 9월 23일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직후 주 의원과 자리에 함께 있던 4명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사건이 피감기관 향응 · 접대 문제로 번지자 그제서야 반성의 뜻을 내비쳤다.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의원들도 처음에는 주 의원만을 제소했다 여론에 뭇매를 맞고 난 뒤에야 자당 의원 4명을 다시 제소했다. 그러나 윤리특위가 제소한 다음날 정세균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은 윤리특위 위원 5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철회를 종용했다.

 

김원웅 당시 국회 윤리특별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윤리특위의 적은 각당 지도부"라며 국회 윤리특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뒤흔드는 여야 지도부의 행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나라당 소속 윤리특위 의원들도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2005년 12월 초 우여곡절 끝에 윤리특위 전체회의에 주 의원을 비롯한 의원들이 윤리심사 대상에 올랐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심판기구인 윤리특위에 특정정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편파적인 징계 위협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며 전체 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17대 국회 들어 총 22건의 징계안과 윤리심사안을 통과시켰지만 본회의에 상정된 적이 한번도 없던 윤리특위의 유명무실함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음모론을 사랑하던 보수 언론들

 

'대구 술자리 파문'에 대해 일부 언론은 처음부터 주 의원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며 사건의 본질을 흐렸다.

 

이번 과기정위 향응 파문을 보도한 <동아일보>는 당시 주 의원이 아니라 동석한 검사가 성희롱 발언을 했음을 보도하며 기사와 네컷만화 등을 통해 사건을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정치공작' 논란으로 비화시켰다. <중앙일보>도 주 의원과 한나라당 주장에 반박하는 측의 입장은 외면해 최소한의 균형도 지키지 않으며 주 의원에게 면죄부를 안겼다.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언론모니터팀에서 지역언론들을 모니터한 결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국회의원과 피감기관 관계자들의 술자리는 부적절했다고 지적한 사설은 단지 1개 뿐이고 나머지는 '진실공방'에 매몰되어 버렸다.

 

이에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정치공작'이니 동석 검사가 성희롱 발언을 했다며 주 의원의 폭언을 덮으려는 언론의 태도는 '국회의원과 피감기관 사이의 부적절한 술자리'라는 사건의 본질을 '정치 공작'으로 은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걸핏하면 '음모론'을 들고 나오는 주 의원과 한나라당의 비상식적 행태에 대해 일부 언론들이 거들고 나선 것은 참으로 기막힌 일"이라며 "아무리 '친한나라당'이라는 비난을 받는 신문들이라 해도 명백한 잘못은 질타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최소한의 양식을 갖추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되풀이되는 국정감사 추태... 이번에는 끊을 수 있을까

 

결국 '진실공방'과 '정치공작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국회의원들과 언론들의 플레이로 '대구 술자리 파문'은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면서 거의 잊혀졌다.

물론 2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약간 다르게 보이기는 하다.

 

지난날 주 의원과 한나라당을 옹호했던 <동아일보>가 칼을 빼들고 나섰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 등은 이번 파동을 엄중히 수사하고 윤리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한나라당을 질타하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도 엄격히 조사해 엄중 문책하라고 주문하고 나서 과기정위 의원들이 동료 의원들의 지원사격을 기대하긴 힘들 듯하다.

 

그러나 지금 앞장서고 있는 이들, 국회의원과 언론들은 2년 전의 자신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년 전과 같이 본질을 흐린 채 '진실게임'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99년 광주국세청의 한정식집 접대, 2001년 공정거래위 단란주점 접대, 2002년 대구지검 단란주점 접대…. 잊을만하면 되풀이되는 국정감사 추태를 이번에는 끊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태그:#국감, #향응 접대, #과기정위, #주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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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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