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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아버지가 나서셨습니다. 낫으로 잡풀을 베고 있는 아버지. 기운이 오르셨나 봅니다.
드디어 아버지가 나서셨습니다. 낫으로 잡풀을 베고 있는 아버지. 기운이 오르셨나 봅니다. ⓒ 이승숙

 

어젯밤(30일)에 고모부님이 전화를 주셨다. 고모부는 팔순을 앞둔 어른이신데도 새카맣게 어린 나한테 존대를 하신다.

 

“질년교? 오늘 아부지 약 왔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했지요.”

 

처질녀라도 결혼을 해서 성인이 되면 존대를 하는 게 예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모부는 나이 어린 우리한테도 반존대를 하신다.

 

지금 아버지는 과천 큰고모 집에 가 계신다. 지난 토요일(27일)에 모셔다 드렸는데, 이번 주 내내 고모 집에 계실 예정이다.

 

본래는 하룻밤만 주무시고 올 계획으로 갔지만 고모부가 붙잡으셔서 일주일을 지내기로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일주일 동안 드실 약을 택배로 보내드렸더니 잘 받았다고 전화를 주신 것이었다.

 

아버지, 고모 집에 가시다

 

우리 아버지는 여섯 동생을 두었다. 아버지 밑으로 네 명의 고모님이 계시고 그리고 이어서 작은 아버지가 두 분 더 계신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는 일곱 형제 중의 맨 맏이인 것이다.

 

아버지 형제간들은 우애가 좋다. 고모들과 작은 아버지들은 맨 위 형인 우리 아버지를 공경했고 아버지는 동생들을 은애했다. 인근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아버지 형제간은 우애가 좋다.

 

아버지는 서울에 올라오시면 우리 집에서는 두어 밤만 주무시고 고모 집에 가서 오래 계셨다. 처남매부간인 아버지와 고모부는 뜻이 잘 맞았다. 그래서 두 분이 놀러도 많이 다니셨다. 5년 전에는 두 분이서 중국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오시기도 했다.

 

고모부는 글이 짧았다. 어려운 글자는 잘 못 읽으셨고 더구나 한자는 더 몰랐다. 그에 비해 우리 아버지는 글이 좀 좋다. 국민학교만 졸업했지만 책 읽는 걸 좋아하셔서 책을 많이 읽으신 아버지는 아는 것도 많았다. 또 어릴 때 서당에 다니시며 한학을 조금 공부하신지라 한자도 많이 알았다. 그래서 고모부는 처남인 우리 아버지를 달리 대하시곤 했다.

 

 사진을 자꾸 찍는 저한테 고모부가 묻습니다. "와 자꾸 사진 찍노?"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고모부예,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 카잖아요. 나중에 아부지캉 고모부캉 다 돌아가시면 사진 볼라꼬 찍지요." 그러자 환히 웃으시더군요.
사진을 자꾸 찍는 저한테 고모부가 묻습니다. "와 자꾸 사진 찍노?"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고모부예,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 카잖아요. 나중에 아부지캉 고모부캉 다 돌아가시면 사진 볼라꼬 찍지요." 그러자 환히 웃으시더군요. ⓒ 이승숙

 

전에 아버지가 건강이 좋으셨을 때, 서울에 올라오시면 고모 집에서 한 달씩 머물던 그 때 고모부는 우리 아버지한테 한문을 배우셨다. 두 분이서 게이트볼도 치러 다니고 노인 복지회관에 놀러가시기도 했지만 한문공부도 했다고 한다.

 

“처남캉 이래(이렇게) 반년만 공부하마 내 눈이 좀 트이겠구마는….”

 

그러시며 고모부는 공부에 재미를 붙이셨다 한다.

 

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신 며칠 뒤에 고모부한테서 전화가 왔다. 청도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이틀씩이나 전화가 안 되더란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작은 집에 전화를 했단다. 그랬더니 작은 아버지가 형님은 강화도 작은 딸집에 가셨다고 하셔서 우리 집에 전화를 하신 거였다.

 

노인에겐 내일이 없는데... 

 

고모부는 아버지가 좀 괜찮아지면 고모 집에 모시고 오라고 그러셨다. 오래 있어도 괜찮으니 아버지가 기운을 차리면 꼭 모시고 오라고 그랬다.

 

우리 집에 오신 지 보름쯤 지나자 아버지는 기운을 차리셨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아버지도 고모 집에 가시고 싶어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늘 바빴다. 바쁘다기보다는 고모 집에 가는 걸 우선순위에서 제일로 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에 가지 뭐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말로는 ‘노인에겐 내일이 없다’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아버지 일을 첫 번째로 치지 않았던 거다. 내 일을 우선 순위에 두었고 아버지는 그 다음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고모 집에 가는 거도 다음 주에 가지 뭐 그러면서 두 주 씩이나 미뤄 버렸다.

 

 고모가 아버지를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오빠요, 어데 아픈데는 없십니꺼?"
고모가 아버지를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오빠요, 어데 아픈데는 없십니꺼?" ⓒ 이승숙

 

시간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다. 마음을 두느냐 안 두느냐에 따라서 없는 시간이 생기기도 하고 멀쩡히 있는 시간도 없는 것처럼 되는 것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고모 집에 갈 시간은 없었지만 다른 데 놀러다닐 시간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전 일요일엔 친구들이랑 마이산에 갔다 오기도 했다. 고모 집에 갈 시간은 없었지만 놀러다닐 시간은 있었던 거다.

 

시간은 만들기 나름인데...

 

지난 토요일(27일) 고모 집에 가기로 했다. 아버지를 토요일에 모셔다 드리고 일요일에 모셔오기로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남의 집에서는 잠을 못 잔다 하시며 토요일 당일에 돌아와야 한다고 하시는 거였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오줌 누러 가야 하는데, 그러면 고모와 고모부가 잠을 잘 못 잘 거라면서 토요일 당일에 돌아와야 한다고 하시는 거였다. 그래도 그리하면 고모부가 서운해 하실 거라고, 하룻밤이라도 주무시고 오시라고 권하자 마지못한 듯 그러마고 하셨다.

 

말씀으로는 고모 집에서 못 잔다고 하셨지만 아버지는 치솔과 약을 챙기셨다. 하루치 약을 화장지에 똘똘 말아서 안주머니에 넣어두시는 거였다. 그리고는 고모 집에 갈 시간을 기다리셨다.

 

토요일에 고모 집에 갔다. 하룻밤만 주무실 거라고 하자 당장에 고모부가 그러시는 거였다.

 

“무슨 소리 하노? 적어도 일주일은 있어야지 하룻밤 자마 안 된다. 처남, 일주일 있다가 가라.”

 

그래서 아버지는 이번 주에는 고모 집에서 계시게 되었다.

 

 "오빠요, 이거도 함 잡솨보소. 국물이 시원합니더."
"오빠요, 이거도 함 잡솨보소. 국물이 시원합니더." ⓒ 이승숙

 

아버지를 모셔다 드리고 온 그 날 저녁부터 우리 부부는 이상하게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뭔가 모르게 허전했다. 설거지도 미뤄두고 밥도 대충 해먹게 되었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이가 맞게 돌아가던 집안이 아버지가 안 계시자 뻑뻑하게 돌아갔다. 아버지가 계신 자리가 컸던 것이다.

 

아버지는 어찌 지내실까. 고모 집에서 아버지는 잘 지내실까. 아버지와 고모는 같은 시대를 살아온 분들이라서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잘 통할 것이다. 또 공유한 추억도 많아서 할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아버지는 저마다 제 일로 바쁜 딸네 집보다는 여동생인 고모 집이 더 편하고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버지가 걱정된다. 겨우 끌어올린 기운이 다시 사그라질까봐 걱정된다. 밥도 많이 잡수시고 운동도 많이 하셔야 하는데, 아파트에서 운동을 할 수 있을까 염려스럽다.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차례씩 걷던 들길을 계속 걸으셔야 하는데 도시 한복판 아파트에서 걸을 데가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아버지 걱정을 한다. 고모가 오죽 알아서 잘 챙겨주실까, 걱정할 필요도 없는데 우리는 괜한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아버지#고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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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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