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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지냈어요?" " 어떻게 지냈어?" "나는 음... 공부하고 있어요." "그래? 나도 새로운 거 뭐 배우고 있어." 지금에 머물지 않고 계속 진화하는 우리, 내년 이 맘때는 어떤 모습으로 커 있을까요?
"어떻게 지냈어요?" " 어떻게 지냈어?" "나는 음... 공부하고 있어요." "그래? 나도 새로운 거 뭐 배우고 있어." 지금에 머물지 않고 계속 진화하는 우리, 내년 이 맘때는 어떤 모습으로 커 있을까요? ⓒ 이승숙

 

집 바로 앞에 마니산을 두고도 잘 가지질 않는다. 어쩌다 한번씩 간다 하더라도 참성단이 있는 꼭대기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서 내려오곤 했다. 그런데 어제는 참성단까지 올라갔다. 그것도 기분 좋게 올라갔다.

 

10월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지난 화요일 저녁에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봄이 엄마였다.

 

“봄이야, 왜~~~~”


한껏 애교 섞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 봄이 엄마 이애경씨는 대뜸 그런다.

 

살림꾼 '봄이 엄마' 따라가면 좋은 일이 많아

 

“언니, 내일이 10월의 마지막 날인데 그냥 보낼 순 없잖아요. 내일 마리산(마니산) 가요.”

 

봄이 엄마의 말을 듣자 바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좋았어~. 내일 우리 풀코스로 놀자. 노래방은 내가 쏜다.”

 

봄이 엄마가 누구던가 프로 살림꾼이 아니던가. 봄이 엄마가 하는 거라면 나는 무조건 따라한다. 일처리를 똑 부러지게 잘 하는 그녀를 믿고 따라가면 실수가 없다.

 

다음 날 아침에 우리는 만났다. 내가 사는 곳은 마리산을 마주보고 사는 곳이지만 봄이 엄마가 사는 곳은 북한이 가까이 보이는 ‘송해면’이다. 우리 집에서 가자면 근 60리 길을 가야 봄이네 집이 나온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만난다. 물리적인 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마음만 있으면 언제고 만날 수 있는 게 바로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니던가.

 

 가까이 두고도 자주 찾지 못했던 마니산, 같은 강화에 살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했던 우리. 마니산이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처럼 우리도 늘 서로를 생각하며 그 자리에 있습니다.
가까이 두고도 자주 찾지 못했던 마니산, 같은 강화에 살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했던 우리. 마니산이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처럼 우리도 늘 서로를 생각하며 그 자리에 있습니다. ⓒ 이승숙

 

40대 초반을 지나서 중반으로 막 접어드는 봄이 엄마는 그러나 여전히 젊다. 도통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봄이 엄마는 건강하고 생기발랄하다.

 

봄이 엄마 옆에는 정우 엄마 이정미가 있다. 정미는 나랑 나이 차이가 근 열 살 가까이 나는 30대 중반의 동생이다. 나이가 어리지만 속이 깊어서 가까이 하면 배울 점이 많다. 그렇게 우리 셋은 만났다.

 

그러고 보니 일 년만에 보는 거네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는 꼭 일 년만에 만나는 거였다. 봄이 엄마랑은 가끔씩 만났지만 정우 엄마랑은 꼭 일 년만에 만나는 거였다.

 

“우리, 그러고 보니 일 년만에 보는 거네요. 작년 10월 마지막 날 우리 만났잖아요. 그때 우리 북문을 지나서 송해면 숭뢰리까지 걸어 갔었죠? 그때 참 좋았어요. 근 4시간을 걸었는데도 하나도 힘이 안 들었고 기분이 참 좋았어요.”

 

작년 10월 마지막 날에 우린 만났다. 본래는 강화읍에 있는 고려궁지를 구경하고 그 다음에 북문을 넘어서 조금 걷기로 했는데 그 날 우리는 마냥 걸었다. 가을빛에 물든 강화의 너른 들은 여유로웠고 수로에 가득 차 있는 물빛까지도 깊고 푸르렀던 하루였다. 그렇게 근 4시간을 걸었다.

 

마니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단풍나무들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단풍을 보러 멀리 갈 거도 없었다. 마니산에 가을이 와 있었다.

 

“와, 단풍 좀 보세요. 어쩌면 요렇게 곱지요? 늙어서 고운 게 없는데, ‘늙어 고운 단풍’이네요.”

 

정우 엄마가 절창을 토해냈다.

 

 "나는 나이를 먹는 게 좋아요. 나이를 먹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너그러워지잖아요. 얼굴에는 주름이 지겠지만 마음의 주름은 옅어지는 게 바로 나이가 주는 선물이지요."
"나는 나이를 먹는 게 좋아요. 나이를 먹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너그러워지잖아요. 얼굴에는 주름이 지겠지만 마음의 주름은 옅어지는 게 바로 나이가 주는 선물이지요." ⓒ 이승숙

 

우리가 ‘마리산’이라고 부르는 ‘마니산’은 올라가는 길이 여러 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단길’이라고 부르는 길로 올라간다. 하지만 그 길은 그야말로 계단길이라서 걷기에 조금 무리가 온다. 그리고 걷는 맛도 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단군로’로 길을 잡았다. ‘단군로’는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은 본래 그대로의 맛이 살아 있는 길이다.

 

오랜만에 만났던 터인지라 할 이야기도 많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눈다. 번잡하지도 않고 요란스럽지도 않은 우리의 이야기는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상단하원' 식의 '참성단', 하늘과 땅의 이치 담아

 

별 힘도 안 들이고 우리가 목표로 삼았던 ‘약수터’로 갈라지는 곳까지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얼마 안 지나 있었다.

 

“우리 더 올라가요. 만날 여기까지 와서 내려가곤 했는데 오늘은 참성단까지 올라가 봐요. 그냥 내려가자니 괜히 아깝다.”

 

누구랄 것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나온 소리였다. 함께 하는 그 힘이 좋긴 좋았다. 힘들지도 않았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쳐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갔다.

 

‘단군로’로 해서 참성단까지 가자면 가파른 능선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약수터로 가는 길을 지나서부터 길은 가팔라진다. 군데군데 매놓은 밧줄을 잡고 용을 쓰며 올라가면 ‘참성단’이 나온다.

 

그런데 그 가파른 능선에는 계단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두어 해 안 와본 그 동안 강화군에서 올라가기 좋도록 정비를 해놓았다. 발걸음에 딱 맞춤 맞는 간격으로 계단을 만든 그 길은 마치 강원도의 험한 산을 타는 듯한 재미를 주었다.

 

 "'참성단'은 '상단하원'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즉 위는 네모난 형태고 아래는 둥글다는 말이지요. 원은 하늘을 뜻하고 네모난 단은 땅을 뜻해요." 문화유산 해설가인 봄이 엄마랑 함께 하면 배우는 게 많습니다.
"'참성단'은 '상단하원'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즉 위는 네모난 형태고 아래는 둥글다는 말이지요. 원은 하늘을 뜻하고 네모난 단은 땅을 뜻해요." 문화유산 해설가인 봄이 엄마랑 함께 하면 배우는 게 많습니다. ⓒ 이승숙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참성단‘이다. 바위를 잡고 올라가다가 문득 뭔가를 보았다.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는 바위 한 쪽에 어린 독사 한 마리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올해 새로 태어난 독사인 듯 아직 어려 보였다. 굵기가 손가락 정도밖에 안 되는 그런 어린 놈이었다.

 

“어? 여기 독사 있네. 추워서 햇빛 쬐나 보다. 그런데 왜 가만 있지? 사람들 보면 도망가야 되는데 꼼짝을 안 하네. 이러다 사람들이 해칠까 겁난다. 얘, 여기 있지 말고 가라.”

 

그러나 그 어린 독사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본래 뱀들은 사람의 기척을 느끼면 도망을 가버리는데 독사만은 도망을 잘 안 가는 특성이 있다. 아무리 어려도 독사는 독사인지라 그 놈은 도망을 안 가는 거 같았다.

 

내년엔 더 큰 모습으로 만나자

 

우리 뒤에는 사람들이 여럿 오고 있었는데 그들 중의 누군가가 독사를 보고 죽일까봐 염려스러웠다.

 

도시 사람들은 집 안에 곤충 같은 게 있으면 죽여 버리데요. 우리는 거미나 벌레가 집 안에 있어도 안 죽이는데 그들은 보면 그냥 죽여 버리데요.”

“그러게. 우리는 거미가 방에 있으면 살푸시 잡아서 밖에 내주는데 그러지 않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그들도 다 우리와 함께 사는 존재인데 막 죽이면 안 되죠.”

 

생명 존중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아껴야 한다고 정우 엄마는 말했다.

 

 '이유명호' 한의원 원장님 말씀에 의하면 강화의 산들은 여자들에게 특히 더 좋다고 하네요. 그러니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마니산에 오셔서 좋은 기를 듬뿍 담아가세요.
'이유명호' 한의원 원장님 말씀에 의하면 강화의 산들은 여자들에게 특히 더 좋다고 하네요. 그러니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마니산에 오셔서 좋은 기를 듬뿍 담아가세요. ⓒ 이승숙

 

‘참성단’이 보였다. 지금 참성단은 휴식 중이다. 참성단을 보호하기 위해서 철망을 쳐서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놓았다. 그 전, 사람들이 참성단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때에는 참성단이 몸살을 앓았다. 시절이 좋고 날이 좋은 휴일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성단을 찾는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인파에 파묻혔다. 그래서 참성단이 훼손될까봐 몇 년 전부터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참성단을 찾았다. 그들 모두는 건강해 보였다. 몸도 건강하고 마음도 건강해 보였다. 산에 들면 사람들은 순해지나 보다. 그들에게서 좋은 기운이 솔솔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마리산’은 전국에서 가장 ‘기’가 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기는 땅의 기운이기도 하고 하늘의 기운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기운이 더해진 것이기도 하리라. 좋은 마음 좋은 눈빛으로 서로 기운을 나눠 가지니 모두가 선남이 되고 선녀가 된다.

 

10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좋은 기를 나누고 왔다. 따로 또 언제 만나자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좋은 기운을 나눠가진 우리는 언제나 근처에 있다. 서로 북돋워주고 칭찬해 주고 또 격려해 주며 커나간다. 그래서 내년 10월의 마지막 날에 다시 만날 때에는 더 너른 마음의 자리를 가진 서로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마니산#가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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