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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문국현 후보가 '까칠한 토론회'를 열었다. 첫번째는 정치·경제/외교·통일·안보 분야를 다뤘다. 계속 생중계를 봤지만 외교·안보에 대한 아무 질문도 없었고 문 후보의 언급도 없었다. 질문하는 패널 자체부터 이 분야 관련자는 없었고 결국 경제 문제로 집중됐다.

 

당시 생중계 동영상 화면 밑에는 "토론주제가 분명히 정치·외교·통일 안보인데… 대체 뭔 소리들만 하는지. 난 정치·안보·통일·외교에 대한 생각을 듣고싶다구 인물에 대한 이미지말구…"라는 제목의 댓글도 달렸다.

 

나도 약간 황당했다. 문국현 후보의 토론을 보다보면 그가 던져진 질문에 초점이 맞지않는 '사오정식 대답'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 대해 토론한다고 해놓고 다른 주제만 얘기한 '까칠한 토론회' 첫 회도 사오정식 사례다.

 

문 후보는 현재 대선 주자 가운데 가장 효율성이 높다. 그가 거느린 국회의원 숫자는 이명박, 정동영 후보는 물론 이인제 후보나 권영길 후보에 비교가 안된다. 현직 의원 단 한 명도 없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있지만 두 번이나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지냈으니 같이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지지율은 6~8% 수준에서 정체 상태다. 무엇인가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마다 문 후보에게 부족하게 느끼는 것은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외교·안보에 평소 관심있던 사람 입장에서 볼 때 문 후보에게 가장 부족할 뿐 아니라 그 정체성이 의심스러운 게 바로 외교·안보 분야다.

 

지난 7일 문국현 후보는 KBS 대선후보 초청토론회 "질문있습니다"에 출연했다. 당시 사회자인 정관용씨가 "(문 후보의 대북정책은) 현 정부 대북 정책 기조와 별 차이없는 것이네요"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 단계보다 한 단계 더 나간 것이다. 현 정부는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지나치게 자주적으로 갔다. 그 자주적으로 간 것은 6자회담의 틀이나 한미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 대북 관계에 관한한 서로의 의견을 맞추는 것이 아주 중요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과의 공조체계가 훨씬 강화될 것이다."

 

노 정권의 자주가 문제였다? 한나라당과 똑같은 평가

 

노무현 정부 출범을 환영하던 진보적 지식인 가운데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간 쪽이 외교·안보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노 대통령 집권 첫 해인 2003년 중반기부터 노무현에게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집권하자마자 대북송금특검·이라크 파병·수용소 발언·주한미군기지 이전 비용 100억달러 덤터기 쓰기·전략적 유연성 인정 등등 너무 사례가 많아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 실험을 했을 때 노 대통령은 "포용정책을 포기하겠다"고 발언했다가 DJ가 강력하게 반발하자 거둬들이는 등 우왕좌왕했다. 그 때 포용정책 포기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중단했으면 2·13 합의 뒤 남한은 정말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됐을 것이다.

 

문 후보의 발언은 한나라당과 보수 진영이 노 정권을 비판하던 내용과 똑같다. 이는 역으로 문 후보의 외교안보 인식이 한나라당의 그것과 별 다를 바 없다는 간접 증거다.

 

"대북 관계에 관한한 서로의 의견을 맞추는 것이 아주 중요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과의 공조체계가 훨씬 강화될 것"이라는 문 후보의 발언도 고개가 갸우뚱하다.

 

화끈하게 반미·자주 발언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선거 때 "반미면 어때"라며 좌측 깜박이 켜다 집권 뒤 우회전 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친미주의자라고 말하는 게 차라리 낫다. 외교·안보 정책에서 자주적으로 평가받는 DJ지만 정작 그는 반미 발언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

 

그러나 문 후보 발언은 노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이 부시 정권의 그것과 달라서 문제가 많았다는 뜻이다. 현재 부시 정권은 대외 정책의 실패로 역사상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핵 문제만 해도 6자회담을 만들어놓고 "대화는 하되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전략으로 시간만 질질 끌었다가 결국 북한 핵실험 사태까지 갔다. 이후 부시 정권의 태도가 확 바뀌어 '미국판 햇볕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즉 부시 정권의 대북 방향에 한국이 따르지 않아 불협화음이 발생했던 것이 옳았다(진보진영 전문가들은 노 정권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우왕좌왕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 안에서도 부시 정권의 일방적이고 군림하는 외교정책으로 우방국과의 관계가 엉망이 됐고 미국의 대외 이미지가 급락했다고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데 문 후보는 부시 정권의 대북 정책을 따르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김정일을 어린 아기로 보나? 모든 것을 경제로만 환원

 

KBS 토론 때 한 연세대 학생이 문 후보의 대북 정책 비전이 부족하다고 지적하자 문 후보는 "내가 대통령이 꼭 되어야 하는 이유도 미국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북미 수교와 남북간의 새로운 경협 이끌어낼 사람은 나 밖에 없다"고 답했다.

 

문 후보가 '왕자병'이 있다거나 너무 잘난 체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런 대답도 비슷한 류다.

 

문 후보는 킴벌리 클라크 등에서의 경험으로 국제 관계를 잘 안다고 한다. 흔히 보수진영 인사들이 외교 안보 문제에 있어 진보 진영을 공격하는 단골 메뉴가 좌파는 국제관계와 미국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직후 보수 진영은 "국제사회가 일제히 북한에 대해 매를 들었는데 남한의 좌파들만 딴소리 한다, 이는 국제관계와 미국을 모르는 무식함 때문"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북한 핵 실험 뒤 불과 두 달도 안돼 부시 정권이 태도를 싹 바꿔 북한과 직접 협상에 나서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던 게 바로 친미 주의자들이다.

 

되레 진보 진영 전문가들은 북한 핵 실험 직후 미국이 별다른 수단이 없어 결국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나설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연세대 학생이 "남북 관계 문제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문 후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북간에만 해서는 안된다. 6자회담 갖고는 안됐잖은가? 6자회담 기간 중 북한이 핵무기 개발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원했던 것이다. 미국도 6자회담의 한계와 장점을 알고 있어서 6자회담은 유지하고 남북 고위급 교류도 하면서도 역시 미국과 북한과의 직접 대화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 이미 증명된 것이다."

 

남북간에만 해서는 안된다는 말과 6자회담 갖고는 안된다는 말이 나열되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2·13 합의 이전까지만 해도 남북대화와 6자회담은 사실상 대립하는 구도였다. 미국은 북한을 고립하는 구도로 6자회담을 활용했고, 이를 벗어난 남북대화를 대단히 싫어했다.

 

문국현 후보는  내년 북미 수교를 당연시하면서 대북 정책 기조를 설명한다. 그러나 현재 북미 관계 분위기가 좋지만 어떤 사단이 생길 지 모른다. 만약 갑자기 북미 관계가 틀어지게 되면 이후 종잡을 수 없는 김정일은 어떻게 상대할 것이며 대미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때는 미국과의 공조로 대북 압박에 나설 것인가?

 

이명박 후보의 대북 정책이 햇볕정책과 다를바 없으면서도 북한 핵 폐기를 전제로 하는데 문 후보는 북미 수교를 전제로 하는 것 같다.

 

여러번 지적이 나왔던 것이기도 하지만 문국현 후보의 문제는 모든 것을 경제로 환원하는 데 있다. 이명박 후보는 무엇을 물어봐도 토목공사로 얘기한다고 비판하던데 문국현 후보는 뭘 물어봐도 경제로만 답한다. 

 

예를 들어 지난 15일 까칠한 토론회에서 그는 "한미FTA가 북미 수교를 하는 분위기 조성에 큰 기여를 할 것이며, 역으로 북미 수교가 된다면 한미 FTA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경제주도형 한반도 국제협력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고 덧붙였다.

 

한미FTA의 개성공단 문제는 북미 수교와 관련이 있지만 다른 여러 분야가 걸쳐있는 한미 FTA와 북미 수교를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대북 정책의 모든 것을 경제로 환원하는 발상은 김정일을 떡 하나 주면 울음을 그치는 어린 아기로 보는 발상이다. 북한 핵실험과 이후 전개 과정을 보면 알지만 김정일은 외교 정책에 관한 한 초고수다. 북한에 경제적 대가를 줘서 어찌 해보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이명박의 그것과 비슷하다.

 

단 문 후보가 환동해경제협력벨트를 제안하면서 러시아에 주목하는 것은 상당히 좋은 발상이다. 다른 문제를 떠나 경제가 급성장하는 중국이 6자회담 국면에서 의장국 역할을 하고, 북한의 원조국으로 너무 위상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러시아를 참여시키겠다는 것은 세력균형 차원에서 볼 때 바람직하다.

 

참여정부는 동북아균형자론만 들먹였지 실제 동북아에 균형이 성립되는데 필요한 조치는 전혀 하지 않았던 것과도 대비된다.


#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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