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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까지의 대장정에 부인이 운전할 행사지원 차량
서울까지의 대장정에 부인이 운전할 행사지원 차량 ⓒ 오문수

<오지게 사는 촌놈>의 저자인 서재환씨가 엄동설한에 경운기 이동도서관 전국 순회 대장정에 나섰다. 울창한 송림과 백로들의 서식지가 보존된 환경을 지키며 텃밭에 지어진 도서관을 지킬 수 있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11월 17일 진상역 앞 도서 교환전을 시작으로 18일 오후 순천 기적의 도서관 옆 공원에서, 19일은 구례, 20일은 남원을 거쳐 전주, 논산, 대전, 청주, 수원 등을 경유해 12월 1일 서울까지 장장 15일 동안의 대장정이다.

 진상역 행사에 소식을 들은 미국 멕시코 콜럼비아 독일 캐나다  등의 다국적 지원 팀이 참가하여 함께 춤추고 있다
진상역 행사에 소식을 들은 미국 멕시코 콜럼비아 독일 캐나다 등의 다국적 지원 팀이 참가하여 함께 춤추고 있다 ⓒ 오문수

경운기 이동도서관 도서 교환전의 진행 방법은 서씨가 운전하는 경운기와 부인인 장귀순씨가 운전하는 행사 진행용 트럭으로 오전(8시부터 12시)에는 이동하고, 오후에는 4시까지 해당지역에서 도서 교환 행사를 한다. 도서 교환은 헌책 2권과 최근 발간된 새책 1권을 교환하는 형태로, 대체 공장부지 구입자금 모금과 지지 서명을 받으며 동시에 진행한다.

“50이 넘은 적지 않은 나이인데 날씨도 춥고 걱정된다”고 하자 “고생문이 열렸어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행사의 결과는 누구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같은 사람 한 사람이라도 나타나 대안을 제시해줄 때까지 경운기를 끌고 서울까지 갈 예정입니다”라고 답했다.

 경운기를 몰고 서울까지 대장정에 나선 서재환씨
경운기를 몰고 서울까지 대장정에 나선 서재환씨 ⓒ 오문수

서씨가 운영하는 ‘농부네 텃밭도서관’은 27년 전인 1981년 전남 광양시 진상면 청암리의 허름한 마을회관에서 500여권의 책으로 시작했다. 현재는 장서 1만 8000여권을 소장하여 운영하고 있는 자생적 문화공간으로써 주중이나 주말 할 것 없이 지역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곳이다.

서울 같은 도회지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을 것 같은 서씨는 순천 농림 고등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고향인 시골에서 서당을 만들어 동네 아이들에게 한문도 가르치고, 신문도 만들고, 도서관을 만들어 경운기에 책을 싣고 동네를 돌며 책을 빌려주는 이동도서관을 운영했다.

 서울까지 몰고갈 경운기 이동도서관에  아이들이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서울까지 몰고갈 경운기 이동도서관에 아이들이 앉아 책을 읽고 있다 ⓒ 오문수

지금은 독서, 전통놀이, 전시와 공연 등을 체험하는 문화공간도 마련하여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과 백운산과 섬진강 사계절의 변화며, 약초와 들꽃에 관한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촌사람이다.

작가 문순태는 “사투리는 지방 사람들이 거칠 것 없이 오랫동안 아무렇지 않게 잘 써온 말이다. 사투리에는 그 지방 사람들의 넋과 생활풍습 같은 문화가 흠뻑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표준말 쓰는 사람은 유식하고 사투리 쓰는 사람은 촌스럽고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한다”고 일갈한 바 있다.

그는 문씨의 말처럼 진상의 사투리를 엄청나게 사랑하며 서울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고 산다. “잘난 놈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놈은 못난 대로 사는 것”이라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전라도 출신으로 동년배인 나도 새 옷 입은 것처럼 불편해지며 진도가 안 나간다. 하지만 잊어버렸던 사투리에 동심으로 돌아가 “그래 그랬지!” 하며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춥은 날씨에도 밤이면 누가 뭔 지서리를 했는지 보리밭을 다 깔아뭉개 놨다고 아직에 새미 갓에 와서, 아! 글씨! 어떤 직일 년놈들이 너른 매뿌랑도 많은디 지놈들은 밥도 안 쳐묵고 사능가 꼭 보리밭에 와 갖고 지랄헌다고 궁글고 가는가 모르겄구만! 보리 까시락이나 카악 배키 뿔먼 씨언허겄는디!”

옛적 보리밭에서 일어난 연애사건으로 보리밭을 망친 한 아주머니가 마을 공동 우물가에 와서 험담하는 소리를 이렇게 적어 놨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가득 담긴 서씨의 책 '오지게 사는 촌놈'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가득 담긴 서씨의 책 '오지게 사는 촌놈' ⓒ 오문수

일상용품이 아닌 물건을 사려면 광양이나 하동읍으로 나가야 하는데 동네에서는 하동이 가깝다. 고사리, 취나물, 머굿대 등을 가지고 하동읍에 가면 조기, 갈치, 명태, 가오리, 문절이 같은 생선과 꼬막, 우럭, 바지락 같은 해산물을 살 수 있다.

장바닥을 돌면 재 넘어 진상 사람들이나 섬진강 건너 다압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한 집 건너면 사위 집이고 두 집 건너면 며느리 집이라, 시집살이나 안 하는지 걱정되는 사돈들은 서로 한잔이라도 권하며 돈을 서로 내려고 난리다.

“이리 좋은 사이를 무단허니 돌씨만 돌아오먼 찢어 조질라고 발광을 허는 미친놈들이 한 두 놈씩 나오는디 뭔 빙인가 통간에 그 속을 모르겄구만! 지놈들이 근다고 찢어지간디?”

선거철만 되면 지역감정을 자극해 싸움을 시키는 정치인들을 욕하는 소리다.

 도서관 서가로 시골 마을에 18,000권이나 소장하고 있다
도서관 서가로 시골 마을에 18,000권이나 소장하고 있다 ⓒ 오문수

도서관을 운영하며 틈틈이 강아지풀, 개망초, 개쑥부쟁이, 꼬들빼기, 골담초, 광대나물, 괭이밥, 꽃무릇 등의 야생화를 연구하며, 어릴 적 꽃과 얽힌 사연들을 기록해왔던 서씨는 촌놈에 대한 계명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계명1, 촌놈은 죽어도 죽겄다고 해서는 안 된다.”

촌에 살려고 작정했으면 도회지 사람보다 더 잘 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도회지 사람들 하는 거 다 따라 하려다가는 가랑이만 째지고 부황만 나서 혈압이 올라 먼저 죽게 된다. 촌놈은 어느 놈이 죽어도 눈 하나 꼼짝 않는다. 죽어도 살아야 한다.

“누가 니 놈들 보고 촌에 사라더냐?”
“멍청하고 갈 디 없응께 백히 사는 놈들이 뭔 지랄이여!”
“볿우면 볿히고, 뿐질르먼 뿔라지고, 깨먼 깨지고. 그것이 이 땅에서 촌놈이 하늘님으로부터 태초에 부여받은 임무다.”

“계명2, 촌놈들은 절대로 배지가 부르먼 안 된다.”

“촌놈들은 멋이든지 지 주뎅이에 몬춤 옇고 지 배지를 채워서는 안 된다. 잘 묵고 잘 살 수 있는 것이 농사일이라먼 볼세 딴 놈들이 끼 찾제 촌놈들헌티 모가치가 돌아갈 거여! 택도 없제!”

서씨의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은 공부하다 싫으면 토끼장으로, 닭장으로, 염소 우리를 돌며 뛰어다닌다. 그것도 싫으면 우물가에서 개구리를 잡거나, 작년에는 따먹을 사람이 없어서 버리고 말았던 보리수나무 밑에서 책을 읽는다.

 도서관 앞에 있는 연못과 정원
도서관 앞에 있는 연못과 정원 ⓒ 오문수

아이들이 웃으면 조용하던 집이 온통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아이들이 웃으니 감나무도 염소도 닭도 웃는 것 같고 온 집이 웃음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느티나무 아래 대나무 와상에 모여 앉아 아이들이 챙겨 온 빵이랑 삶은 달걀을 나누어 먹으면서 재잘대는 소리를 들으면 감나무에도, 느티나무에도 그네에도 웃음소리가 걸려 있는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름드리 적송과 백로와 왜가리들이 쉬어가던 이곳 마을로부터 50m도 안 되는 거리에 공장이 들어선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허가증까지 받아 낸 업자들은 합법을 주장하며 공사를 강행하였고, 이에 대항하는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과 수십만 네티즌과 방송 매체들의 반대에 광양시에서는 민원이 해결될 때까지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파란 지붕이 보이는 곳이 텃밭도서관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언덕이 소각로가 들어설 공장 부지로, 백로와 왜가리가 사는 송림이다.
파란 지붕이 보이는 곳이 텃밭도서관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언덕이 소각로가 들어설 공장 부지로, 백로와 왜가리가 사는 송림이다. ⓒ 오문수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소망은 아랑곳없이 한번 허가된 사항을 번복할 수 없다며 공사 중지를 취소하라는 전라남도의 행정심판 결과를 듣고,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는 서씨는 엄동설한에 경운기를 끌고 서울까지 대장정에 나섰다.

서씨의 꿈은 아이들의 쉼터가 망가져가는 걸 원치 않고 소각로 제조공장 건립을 추진하는 사업자 측과 상생의 길을 찾으려 한다. 사업자 측에서 주장하는 공장 대체 부지 매입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농부네 텃밭도서관 지키기 경운기 전국순회 대장정에 나섰다.

“농부네 텃밭도서관 지켜주세요!”

덧붙이는 글 | SBS와 남해안신문 및 뉴스365에도 송고합니다.

- 경운기 이동도서관 전국 순회 대장정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1월 17일 진상역, 18일 순천, 19일 구례, 20일 남원, 21일 임실, 22일 전주, 23일 금산, 24일 대전, 25일 청주, 26일 천안, 27일 평택, 28일 오산, 29일 수원, 30일 안양, 12월 1일 서울



#텃밭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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