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 <걸 프렌즈>
 책 <걸 프렌즈>
ⓒ 민음사

관련사진보기

“한 남자를 사랑하는 세 명의 여자가 질투와 우정을 동시에 품고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이 소설은 그 주장을 유연하고도 능청스럽게 형상화한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은 것은 이 시대의 독자들과 이 작품의 도발적이고 끈끈한 매혹을 같이 맛보고 싶어서다.” - 소설가 정미경의 심사평 중에서

책 <걸 프렌즈>는 탄탄한 구성력을 바탕으로 하여 현대적이고 세련된 삼각관계를 소재로 하고 있다. 소설은 진한 키스신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혀끝은 피겨스케이팅 선수 같다’라는 자극적인 문장이 소설의 맨 첫머리다. 완력과 테크닉이 절묘하게 어울리고 강열한 틈입과 부드러운 터치의 완벽한 조화 속에 끝까지 냉철함을 잃지 않는 키스.

이 매혹적인 첫키스 덕분에 갑자기 사내 커플이 되어 주인공 남자와 사귀게 되는 여자 한송이. 술을 마시고 조금 취한 상태에서 얼떨결에 회사의 한 남자와 키스를 하게 된 주인공은 그와의 완벽한 키스에 매료되어 결국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이전에 사귀던 남자도 있었건만 이 남자만큼 섹스와 키스 면에서 자신을 홀딱 반하게 하는 남자는 없었다.

스물아홉 살 주인공의 연애의 규칙

스물아홉 살 주인공에게는 연애의 규칙이 있다. 그 연애가 결혼을 전제한 것이든 아니든 지켜야 할 필수적인 사안이다. 첫째, 기족 얘기는 삼가도록 한다. 왜냐하면 헤어지고 나서는 남자 친구보다 가족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 둘째 싸이월드에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헤어지고 나서 다른 남자 만나게 될 경우 사진 정리에 엄청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셋째 과분한 선물은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카드 할부로라도 정말 어울릴 법한 멋진 선물을 사줬는데, 헤어지고 나서 나머지 할부 금액이 청구될 때마다 헤어진 남자 친구에 대한 증오심이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이유. 넷째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묘연한 통화 내용을 들으면 바로바로 추궁했는데 헤어지고 나서는 그런 자신이 무척 초라하게 느껴졌다는 것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한 그와 그녀의 만남은 만만치가 않다. 그 남자에게는 낯선 여자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하고 회사 앞 편의점의 젊은 여자애와 열애중이라는 소문이 나기도 한다. 숨겨진 사내 커플인 한송이는 그 남자의 여자관계를 밝히기 위해 핸드폰에 찍힌 전화로 연락을 취한다. 남자와 핸드폰 번호 뒷자리가 같은 여자, 진을 만나면서 송이의 인생은 더더욱 꼬이기 시작한다.

오빠처럼 챙겨주는 남자를 좋아하지만 남자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는 편의점 대학생 보라, 남자의 첫사랑이었지만 돈 많고 자상한 남편을 만나 현실에 안주한 여자 진. 이들은 모두 주인공 남자와 현재도 연락을 취하며 만나는 사이다. 거기다가 남자의 섹스 파트너이자 비밀 사내 커플인 한송이까지, 한 남자를 사랑하는 세 여자는 우연한 기회에 모두 만나게 된다.

한 남자를 사랑하는 세 여자, 친구가 되다

신기하게도 이들은 질투의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토대로 친구가 된다. 남자에게는 이 세 여자가 서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비밀이다. 이 위태로운 관계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면서 이 여자들이 남자를 사랑하는 이유 하나 하나가 밝혀지는 것이다.

남자와 첫사랑을 나누었지만 그 남자의 고지식하고 착한 성격보다는 멋지고 돈 잘 버는 다른 남자를 선택하는 미녀 진. 아직 성경험이 없는 순진한 대학생이지만 자기가 제일 먼저 잠자리를 함께 하고 싶은 남자는 바로 주인공밖에 없다고 말하는 보라. 그리고 회사 회식에서 처음 키스를 한 남자에게 푹 빠져버린 여자 한송이.

이 세 여자의 상황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의 여자라면 대부분 이해할만한 내용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 수많은 송이와 진, 그리고 보라가 살고 있기에. 그래서인지 소설에서 세 여자가 극적으로 만나 서로를 이해하는 장면이 전혀 낯설지 않고 이해가 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고백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한송이 그녀밖에 없다는 사실을. 회식에서 우연을 가장해 키스하게 되기 전부터, 그녀가 입사하던 순간부터 여자를 사랑했다는 것. 그래서 평상시 늘 마음을 얻으려고 접근해 봤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자 회식 자리에서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적 사랑이 지닌 본질적 모순과 갈등

남자의 솔직한 이야기들은 한송이의 마음을 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갈등한다. 왜냐하면 그 남자와 얽힌 보라와 진의 관계가 늘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그녀의 갈등 상황에 동질감을 느끼고 공감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의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 남자, 내 여자’라 하더라도 그녀 혹은 그가 다른 이성에게 마음을 두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소설은 이처럼 현대적 사랑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 모순과 갈등을 묘사한다. 그래서 아마 이 소설이 오늘의 작가상이라는 큰 상을 거머쥐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마지막까지도 사랑의 걱정과 갈등, 의심을 해결하지 않은 채 결말을 맺는다. 극적인 전환이나 시원하고 명쾌한 결말 없이 끝을 맺으면서, 아마도 해결되지 않는 사랑의 고뇌를 표현하고자 했으리라. 그래서 독자는 더더욱 책의 내용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써주다 보니 고등학교와 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고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신세대 작가 이홍. 그녀의 뛰어난 감각과 주제 형상화의 놀라운 재주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길, 한국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기대해 본다.


걸프렌즈 - 2007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홍 지음, 민음사(2007)


#오늘의 작가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