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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고급 출판문화를 대표하는 '이와나미쇼텐'의 전 사장인 오쓰카 노부카즈씨가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 출판편집자의 회상> 한글판 출간을 기념해 우리나라를 찾았다. 왼쪽이 노부카즈씨, 오른쪽이 책을 출간한 한길사 김언호 사장.
일본 고급 출판문화를 대표하는 '이와나미쇼텐'의 전 사장인 오쓰카 노부카즈씨가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 출판편집자의 회상> 한글판 출간을 기념해 우리나라를 찾았다. 왼쪽이 노부카즈씨, 오른쪽이 책을 출간한 한길사 김언호 사장. ⓒ 김대홍

"일본에서 활자(문화) 이탈이 심각하다. 대학생들이 신문조차 읽지 않는다. (사람은) 활자를 통해서 생각한다. 곧 문화 붕괴다. 일본은 문화 붕괴 직전에 와 있다."


1912년 만들어졌고, 현 직원만 250명에 이르는 거대 출판사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의 전 사장이자 40년 동안 출판편집자로 일한 오쓰카 노부카즈씨. 최근 펴낸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 출판편집자의 회상>의 저자인 노부카즈씨(일본 이와나미쇼텐 오쓰카)는 현 세태를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문화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


2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통역 이현진) 자리에서 그가 밝힌 내용이다. 그는 "일본 전체 출판물 판매량은 2천억엔, 파칭코 게임 산업 규모는 30조엔"이라며 "오락산업이 출판물 산업의 100배가 넘는다"고 개탄했다.


그가 단순히 '파칭코가 필요없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100배라는 격차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 것이다.


노부카즈씨는 한국 인터넷 문화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 일본과 같은 현상이 생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일본 유명 논픽션 작가인 야나기다 구니오의 말을 인용하며 휴대폰, 인터넷, TV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구니오씨가 2-3년간 계속 강조하는 게 있어요. 휴대폰, 인터넷, TV를 아이에게서 떼어놔야 한다구요. 그렇지 않다면 아이가 망가진다구요. 인터넷 게임 같은 것을 하면서 흉악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습니까. 초등학생 살인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 관계 있다고 봅니다."


노부카즈씨가 생각하는 '활자 문화'라는 게 과연 무엇이냐는 물음이 나왔다. 그는 인터넷 쓰임새를 비관하면서 자신이 말하는 '활자 문화'에 포함되지 않음을 드러냈다. 그는 "인터넷은 일과성"이라고 진단하면서, "활자 문화는 뒤로 한 발짝 가서 생각하기도 하고, 앞으로 한 발짝 가서 생각하는 것인데, 인터넷이 그런 점에서 어울리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과거 한 중 일엔 독서공동체가 있었다

 

 오쓰카 노부카즈씨.
오쓰카 노부카즈씨. ⓒ 김대홍

많은 우려를 드러냈지만 요즘 상황에 대해 노부카즈씨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그는 인터넷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인터넷과 출판을 조합한 '인터넷 철학아고라'를 만든 바 있다.


또한 2년 전엔 '활자 문화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신문과 잡지 편집자들이 모여서 활자 문화 활성화를 고민하는 모임이다. 여기서 하고 있는 대표 사업이 '북스타트'(BookStart).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책을 쥐어줘서, 자연스럽게 책을 친근하게 만드는 운동이다.


몇 년 전 만든 '동아시아 출판인회의'는 동아시아 차원에서 출판문화와 인문출판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발족했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등이 참여국가. 이날 자리에 함께 한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6개월마다 5개국 편집자들이 모여 책을 통한 동아시아의 가치를 논의한다. 내년 3월 도쿄에서 모임을 연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한자문화권이었던 한국, 중국, 일본엔 독서공동체가 있었다"며 "이 모임을 통해 서구지향적인 출판문화에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부카즈씨는 양 국의 출판문화교류가 평화와 복지에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는 것. 그가 리영희의 <대화>를 비롯 우리나라 책 번역에 애정을 쏟고 있는 이유다.


편집자의 근무시간은 24시간


1963년 이와카미쇼텐에 입사한 그는 2003년까지 정확히 40년 동안 출판편집자로 일했다. '초짜' 편집자로 시작해 일본 지성을 대표하는 이와나미쇼텐의 사장이 될 정도로 그의 편집이력은 화려하다. 노부카즈씨의 40년 경력에 대해 한길사 김언호 사장도 "40년 채우려면 2016년까지 일해야 한다"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2차세계 대전 이후 일본 출판계는 부흥기를 맞았다. 이와나미쇼텐도 마찬가지. 1963년 입사한 카부카즈씨는 "당시 윤택한 생활에 젖어 창업 정신을 잊고 있었다"며 "그때 속주머니에 사직서를 넣고 다녔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곧이어 "일본엔 이와나미 문화, 고단사(講談社) 문화라는 말이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와나미쇼텐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고단사는 1909년 세워진 출판사로 40여종의 가까운 잡지와 여러 도서를 펴내고 있는 일본의 대표 출판기업이다. 고단사는 대중 문화, 이와나미는 전문적, 고급 문화를 뜻한다고. 이런 풍토 속에서 이와나미의 출판편집자들은 자연스레 엘리트의식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자간담회
기자간담회 ⓒ 김대홍

이날 그는 출판편집자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그 중 하나가 "편집자의 근무시간은 24시간"이라는 말이다. 그는 출판편집자가 사회 현상을 아주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판의뢰를 할 때 자신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확실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 편집자가 뜻도 모른 채 부탁할 필요는 없다고 밝혀, 그가 고집스런 장인정신을 갖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가 밝힌 편집자의 또 다른 역할은 '자리를 마련하는 것'. 예를 들어 젊은 학자들을 모이게 한 뒤, 서로 토론하게 한다. 토론회를 통해 지금 현상에 대해서 서로 배우게 한다. 그와 같은 장을 마련하는 것도 편집자의 임무라고 밝혔다.


한편, 이와나미쇼텐이 90여년 동안 버텨온 힘과 위기를 묻는 질문에 그는 "당연히 이와니미쇼텐의 책을 읽어준 독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창업 초기, 2차 세계대전 전후"라고 밝혔다. 이어 "진짜 위기는 바로 지금부터"라며 활자 문화의 위기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 한 출판편집자의 회상

오쓰카 노부카즈 지음, 송태욱 옮김, 한길사(2007)


#오쓰카노부카즈#이와나미쇼텐#책으로찾아가는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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