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에 선 최병수(47). 목수이며 화가이자 인권·평화·환경운동가인 그는 국내보다는 국제적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상징인 걸개그림의 효시가 된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그려내, 걸개그림이라는 새로운 미술 장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전성태씨는 최병수를 ‘큰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 불렀다. 또한 그의 표현에 의하면 “환경 파괴, 전쟁의 참상이 빚어지는 곳이면 비록 그곳이 지구의 반대편 사지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현장에다 화구를 푸는 그의 존재 때문에 그는 덜 미안한 마음으로 밥술을 떴다고 한다. 이제는 그의 몸이 덜 시달리도록 이 야만의 세계가 좀 더 평화로워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인생여정과 환경의 위험성 알린 최병수지난 28일 환경미술가 최병수와 함께하는 전남 여수 화양고 화양아카데미를 찾았다. 이날 체육관에서 열린 강연회에는 화양고 전교생 430명과 교직원이 함께했다. 그는 기후변화와 온난화로 ‘지구가 녹고 있다’, ‘꿩 먹고 알 먹으면 멸종이다!’라는 주제 강연에 이어,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펭귄은 녹고 있다’, ‘나침반이 녹고 있다!’는 얼음 조각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 행사는 두 달 전 한상준(53·교장)선생이 그의 집을 직접 찾아 ‘지금 나에게 하는 이야기를 우리 학생들에게도 직접 해줄 수 있겠느냐’며 부탁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 학교 교사인 한상석(46) 선생은 “교장 선생은 항상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분”이라며 “소설가이기도 한 선생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고 전했다.
한 교장은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 온 몸으로 노력하는 “그와 함께 특별한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는 인사말에 이어 “귀 활짝 열고 들어 달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안녕하세요? 최병수입니다.”지금껏 그가 살아온 인생여정을 이야기하자 학생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된다. 중학교 2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이며, 당시 ‘사회운동’ 또한 “운동은 알겠는데 사회는 모르겠더라”며 대형스크린을 통해 그림을 하나하나 보여줬다.
그는 1998년 아르헨티나에서 ‘지구반지’와 ‘문명의 끝’을, 1990년 지구의 날에 완성한 ‘쓰레기들’ 등의 작품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2000년 유럽에서 전시했던 ‘우리는 당신을 떠난다’는 작품은 인간이 쏜 작살에 상처 받은 고래가 지구상의 생물 중 인간만을 지구에 남겨두고 떠나듯 한, 떠나감을 표현했다. 2002년에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리우세계정상회의에서 ‘펭귄은 녹고 있다’ 얼음조각 작품을 전시해 지구환경의 위험성을 알리기도 했다.
작품 ‘쓰레기들’은 지구공과 연탄재, 각종 쓰레기더미 위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쓰레기가 쉼 없이 쏟아져 나온다. 차에 치인 청설모의 주검, 돼지를 실어 나르는 화물 차주들이 출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차를 후진하다 갑작스레 브레이크를 밟아 그 충격으로 돼지를 떨어뜨려 돼지가 죽고 고통 받아 고함지르는 돼지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이런 모든 현상들이 그의 작품의 소재가 된다.
또 2003년에는 새만금 간척지에다 ‘바다로 간 장승’을 설치했고,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 중단을 호소하는 ‘너의 몸이 꽃이 되어’라는 걸개그림을 걸어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증언했다. 그가 선보인 폭격으로 죽은 어린 손자의 시신을 안은 아랍인 할아버지의 비참한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잘려나간 소년의 팔다리는 꽃으로 형상화했다.
생각이 안 떠오르면 머리 텅텅 비워무인전투기너도 만들고 나도 만들면
앉아서 죽을 일만 남았네
한심한 문명그는 무인전투기를 그의 작품에서 ‘한심한 발명품’이라고 지적했다. 전쟁을 문명의 사춘기라 말하며 인간이 문명의 사춘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한다고 강조한다. 벼논에 설치한 ‘생명 그리고 희망’에선 생명을 죽이는 미사일탄두에 생명을 되살리는 삽과 호미, 괭이 등의 농기구가 곰팡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표현하기도 했다.
실로 그의 열정은 대단하다. 건강치 않은 몸에도 아랑곳 않고 그를 필요로 하는 현장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다. 펭귄 가슴에 부착된 팻말 ‘남극의 대표’, 컴퓨터 합성한 유빙과 함께 떠있는 얼음 펭귄, 투발로 프로젝트, 문명의 상징인 ‘나침반이 녹고 있다’, ‘떠도는 대륙’, ‘죽임의 락’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있다.
꽃이 피고 지는 현상, 스치는 바람결도 세심하게 살펴보는 그의 관찰력과 감성이 작품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생각이 안 떠오르면 머리를 텅텅 비워놓고 처음 보듯이 보는 버릇이 있다는 그는 담장의 담쟁이덩굴에 옷걸이를 걸어놓고 작품을 구상하기도 했다.
“한참 보니까 사람이더라고, 근본을 찾아보면 원인이 있어요.”
"'도랑치고 가재 잡고'는 땀 냄새가 배어 있지만, '꿩 먹고 알 먹고'는 얌체 같아서 굉장히 싫어했다"며 수도꼭지에 백열전구를 단 작품은 대중목욕탕에 '절약'이라 써서 설치하고 싶다고 한다. 이렇듯 그의 상상력은 기발하다. 우리 주변의 생활 속에서 건져낸다.
갑자기 와~ 하는 함성이 터진다.
“이 여성 모르는 사람 있어요?”
주민등록증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사진을 붙인 작품 ‘증명사진’이다. 최병수가 보기에는 증명사진과 별반 다를 게 없다며 자꾸 보고 느끼라고 한다. 글자 이전에 그림을 사용했으니 그림이 제일의 문자가 아니겠느냐며, 이미지를 잘 파악하면 직관력이 생긴다고 한다.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어요"이날 교육에 참관한 최혜리(17· 1학년)양은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어요”라며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만족해한다.
학교 운동장에서 전기톱으로 얼음 펭귄을 만드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학생들은 원을 그리며 모여들어 똘망똘망한 눈으로 신기한 듯 바라본다. ‘우와~’ 이따금씩 함성이 터진다. 윙윙대는 전기톱의 소음이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또한 학생들이 직접 참여한 ‘나침반이 녹고 있다’ 퍼포먼스에 함께 한 주남진(18·2학년)군은 “이런 경험 처음인데 느낀바가 많아요, 앞으로도 이런 산교육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마음이 따뜻했고 너무 멋있어요”라고 말한다.
최병수 그는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화가, 조각가, 환경 운동가가 되었다. 그렇지만, 어찌 보면 그는 아직 아무 것도 되지 않았다. 남들이 고개 돌리고 외면한 일에 집요하게 매달려 몸을 던지는 그가 진짜 뜨거운 가슴을 지닌 환경운동가다. 우리 사는 사회의 모순을 직관력으로 짚어내는 최병수. 그가 꿈꾸는 세상은 지구온난화와 전쟁, 빈곤이 없는 그런 세상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