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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갈대밭
▲ 순천만 갈대밭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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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의 계절은 가을인데, 한참 지난 겨울에도 그 맛을 잃지 않고 바람 사이로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순천만에 갔다. 날씨가 화창하다. 순천시내에서 천변도로를 따라 나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방으로 역할을 하면서 가끔 소들이 여유를 즐기던 풍경을 그려내곤 했었는데, 사람 사는 세상에 편의를 제공하고자 포장도로로 탈바꿈 되었다. 아련한 추억으로 사라져간 아쉬움이 밀려온다.

대대포구 풍경 탐사선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 대대포구 풍경 탐사선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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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이 지금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얼마되지 않는다. 20여년 전만 해도 순천만은 자그마한 포구 하나 있을 정도였다. 해방을 전후로 만들기 시작한 방조제는 만들다 중단되어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흔하게 보는 갈대와 갯벌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철새들이 먼저 관심을 가졌고, 겨울진객인 흑두리미까지 찾아와 주었다.

세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즈음 순천시와 골재업자는 홍수예방을 빌미로 골재채취를 추진하였다. 당연히 환경단체에서는 반발하면서 막아내기 시작했다. 지루한 몇 년의 공방 끝에 순천만은 그대로 보존되기로 결정하였으며, 훼손을 최소화하는 생태공원으로 조성하였다. 만약에 그 당시 골재채취를 하였다면 지금의 아름다운 순천만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매년 찾아오는 흑두루미는 갈 곳을 잃고 또 다른 안식처를 찾아나서야 했을 것이다.

생태체험로 추운 날씨에도
▲ 생태체험로 추운 날씨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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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포구에는 탐사선이 바쁘게 들락거린다. 요금까지 자세히 안내를 하면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다리를 건너 생태체험로로 들어섰다. 갈대숲 사이로 나무다리는 한없이 걸어가게 만든다. 그리고 마음을 홀가분하게 털어내 버린다. 삶을 계산하고, 저울질 하던 복잡했던 머릿속이 이상하리만큼 생각나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 춥다는 생각이 들지만 옷깃을 여미지 않는다. 갈대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생태체험로 끝에는 용산전망대 1㎞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금방 갔다 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올라섰는데, 계속 이어지는 계단에 금방 지친다. 아래서 보기에는 높지 않은 산이었는데 산은 산이다. 능선길은 소나무 숲길로 편안함을 주고 있다. 보통 전망대하면 팔각정이 떠오르는데, 나도 그것을 기대했는데, 용산전망대는 나무마루를 깔아 놓고 순천만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을 뿐이다. 그리고 편의시설로 망원경이 비치되어 있다.

순천만 풍경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순천만
▲ 순천만 풍경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순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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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만 보던 동그랗게 무리지어 있는 갈대와 물길을 보면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움을 느낀다. 적막한 바다풍경에 하얀 물살을 가르며 탐사선이 지나가고 있다. 새들은 점점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망원경에 눈을 대었다. 동그란 렌즈 안으로 멀리 있던 고니가 고개를 들고 있다. 그리고 조금 움직이니 흑두루미도 보인다. 아! 일렬로 서 있는 고고한 흑두루미의 자태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철새보기 전망대에 비치된 망원경으로 철새를 볼 수 있다.
▲ 철새보기 전망대에 비치된 망원경으로 철새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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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을 내려와서 보니 정말 용이 누워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겨울을 즐기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옆으로 유람선이 물길을 가르며 달려간다. 멀리 보이는 하얀 순천시가 갈대와 조화를 이루며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섰다. 겨울잠을 자러간 짱뚱어는 볼 수 없었지만 순천만의 대표음식인 짱둥어탕과 장어구이를 시켰다. 최근 들어 짱뚱어 값이 너무 올라 수지가 안 맞는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

식당 아저씨에게 왜 새들이 없냐고 물으니, 관광객들이 많아서 이른 아침에만 갈대밭으로 올라온다고 한다. 예전에는 갈대밭 위 논에까지 올라와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생태형 관광지로 개발을 한다고 해도 결국은 새들의 터전까지도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씁쓸한 마음이 든다.

무진길 표지석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 무진길 표지석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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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석 하나가 눈길을 끈다. 霧津길.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의 구절을 인용해 놓았다. 그리고 <무진기행> 중 1960년대 순천을 너무나 잘 표현한 내용이 있다.

"무진엔 명산물이... 뭐 별로 없지요?"
그들은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별께 없지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건 좀 이상스럽거든요."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항구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럴 조건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심이 얕은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 백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니까요."
"그럼 역시 농촌이군요."
"그렇지만 이렇다 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오륙만이 되는 인구가 어떻게들 살아가나요?"
"그러니까 그럭저럭 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들은 점잖게 소리내어 웃었다.
"원, 아무리 그렇지만 한 고장에 명산물 하나쯤은 있어야지."
웃음 끝에 한 사람이 말하고 있었다.
                                                        - 김승옥의 <무진기행> 중에서


갈대도 명산물이 될 수 있을까?

순천만 풍경 생태체험로를 걸으며
▲ 순천만 풍경 생태체험로를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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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은 우리나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연안습지로 국제적으로는 람사협약에 등록되어 있다. 하지만 또 다른 개발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광양-목포가 고속도로가 순천만 위로 지나간다고 한다. 이미 진행된 개발계획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편안함을 주고, 철새들과 연안생물들의 낙원인 순천만에 피해가 최소화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순천만#무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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