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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을까?"

 

대화의 어떤 과정에서 그런 다분히 낭만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표현이 불쑥 튀어나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우리는 대선 결과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고, 대선에서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에게 표를 몰아준 국민들의 '시대정신'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 자리에 동석한 한 후배 교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배님, 이제 경제제일주의로 시대정신이 가버렸는데, 그러면 우리도 학교에서 도덕성보다는 경제가 우선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우선, 후배교사의 입에서 발음된 '시대정신'이란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아니, 마음에 걸렸다기보다는 그 단어의 해석 자체가 자못 아리송했다. '시대정신'을 인터넷 사전에서는 '한 시대의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런 사전적인 해석으로 보자면 후배교사의 말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그 사람은 시대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는 그 단어가 품고 있는 내용이나 정서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어떤 그릇된 흐름을 바로 잡아야한다는 선한 의지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나는 후배교사에게 이런 식으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아니지. 이 시대가 경제제일주의로 잘못 가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그런 잘못을 바로 잡아줄 시대정신이 필요한 거지."


후배교사가 그걸 몰라서 내게 물었을까 싶기는 하다. 하지만 질문의 의도가 조금은 수상쩍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혹시,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고 돈이 최상의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느림의 미학을 얘기한다든지, 정직이나 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위선적인 일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물음을 자기 자신에게 먼저 던졌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 몇 순배의 대화가 오고간 뒤에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청년 실업이 심각하고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엄살은 잘 사는 사람이 더 부리는 것 같단 말이야. 지구 인구 절반이 하루 세끼 먹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데 우리는 음식쓰레기 처리비용으로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을 낭비하고 있으면서 부자고 가난한 사람이고 할 것 없이 국민 전체가 오로지 경제제일주의만을 외치는 것은 좀 그렇잖아. 아니, 다 좋은데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욕구만 충족되면 행복할 수 있냐는 거야.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거지." 


듣기에 따라서는 웬 느닷없는 사랑타령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나로서도 부지불식간에 튀어 나온 말이었는데 뜻밖에도 후배교사가 그 말을 흘리지 않고 챙겨들었다.


"사랑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을까? 아, 오늘의 화두네요."   


그러고 보니 언젠가 그 비슷한 말을 아이들에게 했던 기억이 난다. 영어 수업시간이었다.  '정직은 최선의 정책(Honesty is the best policy)이다'라는 영어격언을 설명하다가 한 아이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런 식이었다.


"결국은 정직만큼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도 없어요."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정직하면 손해 보죠."

"물론 정직하다보면 손해를 볼 수도 있지. 하지만 길게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야."

"말도 안 돼요. 정직하면 손해 보는 게 당연하죠."


"그렇지 않다니까 그러네. 넌 네가 사업을 하게 되면 정직한 사람을 쓰고 싶어 남을 속이기나 하는 그런 사람을 쓰고 싶어."

"그거야. 정직한 사람을…."

"봐. 정직해야 취업도 할 수 있잖아."

"아, 아닌데…."


"그리고 돈만 많으면 행복할 줄 아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야."

"돈이 많으면 좋죠."

"나도 돈이 많으면 좋아. 하지만 돈이 많다고 꼭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란 말이야."

"돈이 많은데 왜 행복하지 않아요?"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물론 아이의 눈에는 내가 더 막무가내였을 테지만. 어린 학생들이 돈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갖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문제는 돈에 대한 환상이다. 굳이 선생인 내가 애쓰지 않아도 그 환상은 깨지기 마련이지만, 그 시기가 늦을수록 아이는 행복과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돈이나 경제력을 유일한 행복의 조건으로 굳게 믿고 있는 동안 행복으로 가는 수많은 다른 길들을 놓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은 교사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래 너에게 돈이 많다고 하자. 그런데 네 아빠가 널 사랑하지 않는 거야. 네가 너무 돈만 밝혀서 그럴까? 글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 아무튼 네 엄마도 네 아빠도 네 모든 가족들이, 심지어는 네 친구들까지 널 사랑하지 않는 거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넌 네 아빠도 엄마도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도, 아니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넌 사랑하지 않아. 넌 오로지 돈만 사랑하는 거지. 아무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데 넌 행복할 수 있을까?"


그때 아이가 나에게 어떤 대답을 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해줄 말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대선 결과가 발표되던 날, 나는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 가서도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다. 세월이 하수상하니 교사인 내가 할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일까?

 

지구에서 나무가 완전히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잃어버린 지구가 이전보다 덜 낭만적으로 보이기만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사랑과 정직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하듯이 사랑이나 정직도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말해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어쨌거나 대선 이후, 전에 비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더 깊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내게 온 아이들만큼은 정직하게 키워 이 사회에 내보겠다는 그런 다짐 같은 거 말이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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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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