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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30일이면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된다. 국네 엠네스티가 만 10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국가에게 주는 명예 훈장이다. 여러 시민단체가 오는 28, 30일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 중이다. 허나 아직 축배를 들긴 이르다. 국민 60-70%는 여전히 사형제 폐지를 반대한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사형제 존속을 내걸었다.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되 사형제는 남아있는 나라 대한민국. 미집행 10년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말]
 <야생초편지>의 저자 황대권씨.
 <야생초편지>의 저자 황대권씨.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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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60~70%가 사형제를 반대해서 실시할 수 없다구요? 그런 논리라면 지금 인권 관련 법 중에서 법제화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 생각이 충분히 성숙해서 제도화할 수 있는 법이 있고, 먼저 법을 만들어서 의식을 높일 수 있는 법이 있습니다. 인권법이 그렇다고 봅니다. 유럽에서 뒤늦게 사형제를 폐지한 프랑스도 당시 국민 66%가 반대하는 상황이었지만, 미테랑 대통령이 사형제 폐지를 밀어붙였습니다. 모든 법을 다 국민 지지로만 판단해선 안 되죠."

<야생초 편지>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의 저자인 황대권(53) 생명평화결사 교육위원장이 요즘 바쁘다. 오는 12월 30일 우리나라가 만 10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에 이름을 올리기 때문이다. 사형제 폐지를 앞장서 주장해왔던 그를 찾는 곳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

26일(수) 황 위원장을 서울 광화문 어느 찻집에서 만났다. 하루 전 충북 영동에서 올라온 그는 가벼운 생활한복 차림이었다.

"건강해 보인다"고 말하려는 순간, 황 위원장이 먼저 눈을 비비며 "눈이 많이 나빠졌다"고 말한다. 글을 너무 많이 읽어서라고. 시골에 살고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바쁜 생활을 하고 있음을 그의 나빠진 눈이 말해주고 있다.

그는 <야생초 편지>로 유명한 작가다. 게다가 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로 생명평화 운동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13년 2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하며 사형선고까지 받은 바 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이유다.

85년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3개월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짧은 기간이지만 3개월 동안 그는 사형수 신분이었다. 그에게 사형이란 이론이 아니라 뚜렷한 경험이다. 감옥 생활동안 그가 만난 사형수도 여럿이다. '사형제 폐지'를 자신있게 말하는 황 위원장은 모든 사람은 변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 전문이다.

"사형제는 모든 가능성을 없애버린다"

- 지난 10년 동안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항상 국민 60~70%는 사형제를 지지했다. 이런 국민 감정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사형제가 없는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렇다. 없으면 큰일 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감옥 생활할 때 재소자는 신문을 볼 수 없었다. 똑똑해지면 통제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90년까지 그랬다. 91년부터 신문을 읽게 됐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재소자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하면서 싸움이나 소란도 줄어들었다. 사형제 폐지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 사형제를 말할 때 항상 따라오는 말이 '인권'이다. 그런데 인권 측면에서 보자면 종신형이 오히려 더 가혹할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 양면성이 있다고 본다. 내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생명에 대한 관점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을 살해할 권리는 없다. 두 번째는 생태 관점이다. 모든 생명은 다양한 방법으로 번성할 권리가 있다. 사형은 모든 가능성을 없애버린다. 종신형은 가능성이 있다. 때론 감옥 안에서 득도할 수도 있다. 나도 감옥에서 도 닦는 마음으로 살았다. 또 하나는 다른 재소자들을 위해서다. 무기수들은 다른 재소자들의 형님 역할을 한다. 재소자들이 교도관 말은 안 들어도 무기수 말은 듣는다. 교도소 전체 분위기를 좋게 해 줄 수 있다. 물론 그 반대 경향도 가능하다. 고급 범죄를 가르칠 수 있다. 그렇다고 더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해선 안 된다."

- 감옥에서 만난 사형수들에게서 정말 변화 가능성을 읽었나.
"물론이다. 사형수를 여럿 만났는데, 몇몇 사람은 공부를 제대로 했으면 정말 큰 인물이 됐을 것이라고 느꼈다. 단지 불우한 환경에서 정상 교육을 못 받아서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게다가 살인을 저지른 사람 중 80~90%는 우발 살인이다. 계획 살인은 얼마 안 된다. 자기 잘못 뉘우치고 올바로 살겠다고 하면 봐줘야 한다."

- 방금 우발 살인과 계획 살인을 나눴다. 그렇다면 계획 살인자들에 대해선 잣대가 달라야 하지 않나.
"'유영철처럼 악마와 같은 살인마들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을 어떻게 그 사람에게만 죄를 물을 수 있나. 모든 잘못을 그 사람에게만 묻는 것은 불합리하다. 우리 사회는 극심한 피라미드형 구조다. 삼각형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떨어지면 극심한 분노와 원한을 가진다. 사형제는 이런 사람들을 만든 사회에는 전혀 잘못을 묻지 않고, 오로지 그 결과물인 사람에게만 책임을 묻는 제도다."

- 모든 사람이 다 교화가 된다고 믿는 것인가. '사이코패스(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교화가 안 되는 사람도 있는 것 아닌가.
"종교 관점에선 '변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변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선교는 불가능하다. 생각해봐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나. 사이코패스도 환자다. 사회가 치료해야 한다. 9·11 테러 때 미국이 테러리스트를 모두 사형시켰다. 그렇다고 테러가 없어졌나? 아니다. 미국 사회가 그대로인데. 마찬가지다. 사형시킨다고 해서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

"전과자 감싸줘야 하는데, 귀찮다고 사형시키는 것 아닌가"


- '자유의사'라는 차원에서 판단해보자. 무기수가 고통을 이기지 못해 사형을 시켜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에서 그렇게 사형한 사례가 있다. 그럴 때 사형제가 탈출구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사형수 생활을 3개월 했다. 온갖 감정들이 생기더라. 혼돈·자포자기·분노…. 하루하루 어찌 될까 불안했다. 어떤 사형수들은 불안을 빨리 끝내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했다. 하지만 그 때 감정은 정상 감정이라고 볼 수 없다. 극도로 불안한 상태다. 법정에서도 정신병이 있으면 정상 참작하지 않나."

- 영국이 1966년 사형제를 폐지했는데, 이후 20년 동안 살인범죄가 60% 늘었다. 사회 관리 차원에서 어느 정도 희생은 필요한 것 아닌가.
"그 반대 통계도 얼마든지 있다(웃음). 한 통계만 갖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단 이것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사형제가 있다고 해서 범죄가 준다는 근거는 없다. 미국을 봐라. 폐지했다고 해서 꼭 는다고 볼 순 없다."

- 개인 감정은 어찌 할 것인가. 사람이 피해를 입으면 누구나 원한이나 복수심이 생긴다.
"가해자를 죽인다고 해서 치유되나? 아니다. 일시적으로 위안이나 통쾌함 느껴도 절대 치유는 안 된다. 치유는 오로지 자기에게 피해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밖에 없다. 그래서 사형제를 없애자는 것이다. 가해자가 살아 있어야 피해자가 치유를 할 수 있다. 가해자가 바뀌는 것을 보면서 피해자도 정화가 된다.

30년 동안 사형수를 보살핀 수녀님이 있다. 그 분은 사형수들이 대부분 변하는 것을 봤다고 말씀하셨다. 그 과정이 너무 아름답다면서. 그런데 그 분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교정해 놓으면 국가는 사형을 집행한다. 너무 어이가 없지 않나."

- 개인 생각을 알고 싶다. 모든 사람이 다 변한다고 보나.
"변하는 내용에 대해선 솔직히 반반이다. 수녀님들은 사형수들과 생활한 적은 없다. 바깥에서 본 것이니까 나와는 다르다. 나는 같이 살아봤다. 사회에서도 자주 만났다. 변화하지만 좋게 변할 수도 있고, 나쁘게 변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변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좋게 변하도록 하기 위해 사회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전과자라고 외면하면 그 전과자가 과연 좋게 변하겠나? 사회가 따뜻하게 감싸줘야 한다. 이런 과정이 귀찮으니까 '그냥 사형하자'고 하는 것 아닌가."

"인권 법률, 지금껏 '시기상조' 아닌 적 없었다"

 황대권씨는 우리사회가 사형제를 폐지하면 훨씬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대권씨는 우리사회가 사형제를 폐지하면 훨씬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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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수들을 위해 세금 내는 게 아깝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글 읽어봤다. 그런데 사형수가 무기수보다 돈이 적게 드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최근 사형수 관리 비용이 많이 들어 종신형제로 다시 바꾸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형수는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옷이나 신발, 식기구 등 모든 것을 특별 제작해야 한다. 우리도 사회가 발전하고 관리방법이 발달하면 사형수가 무기수보다 더 돈이 많이 들 것이다. '사형이 싸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 당장만 본 것이다."

- 그래도 어쨌든 헌법재판소가 '사형제가 합헌'이라고 하지 않았나.
"당시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지만,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시기상조'라는 말이다. 이에 관해선 내가 아는 분이 아주 적절한 답을 한 적이 있다. '모든 인권에 관한 법률이 나왔을 때 '시기상조'가 아닌 적이 없었다'는 말이었다.

인권 법률은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다. 당연히 기득권은 반발할 수밖에 없다. 인권 법률은 큰 흐름 속에서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

- 사형제가 폐지된다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나.
"우선 우려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 인권 의식이 많이 높아질 것이다. 우리가 사형제를 폐지했다고 하면 전세계가 주목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당연히 의식한다. 올림픽 월드컵 치를 때 국민 의식이 한 단계 높아진 것처럼 사형제 폐지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래도 좀더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긍심도 많이 느낄 것이다.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본다."

-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죽이는 사람은 죽이는 사람과 만나게 되고, 죽이는 마음은 죽이는 마음과 만나게 된다. 우리 사회가 갈수록 흉악해진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사람을 죽이는 마음을 버린다면, 내 주위엔 그런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가 밝아질 것이라고 본다. 결국 사형제 폐지는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을 살리는 길이다."


#사형제#황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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