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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씨가 지은 로맨스소설 <경성애사>에서 <태백산맥>을 표절한 대목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씨의 표절 양상을 두고 "표절을 넘어선 도작 행태"라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이선미씨가 지은 로맨스소설 <경성애사>에서 <태백산맥>을 표절한 대목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씨의 표절 양상을 두고 "표절을 넘어선 도작 행태"라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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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프린스 1호점> 작가로 이름을 날린 이선미씨가 자신의 로맨스소설 <경성애사>에서 소설가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표절한 대목이 추가로 확인됐다.

지난 12월 26일 <뉴시스>의 보도로 처음 이씨의 <태백산맥> 표절이 드러난 직후 <오마이뉴스>가 추가 표절 의혹(2007년 12월 26일)을 보도한 데 이어, 또 다시 표절한 대목이 확인돼 "표절을 넘어선 도작 사태"라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문제가 된 <경성애사>는 이씨가 지난 1999년 인터넷에 연재된 글을 모아 지난 2001년 3월 책으로 엮은 로맨스 소설이다. 한 방송사에서는 이 소설을 각색해 드라마 <경성스캔들>을 제작해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단어 몇개 제외하고 거의 똑같은 문장

<오마이뉴스>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선미씨가 <태백산맥>을 추가로 표절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 이씨는 '무수한 햇빛의 조각'이란 표현을 '저녁노을의 붉은 조각'으로 바꾼 것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태백산맥>의 문장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

<태백산맥>
"어머니가 불안에 시달리며 혼자 누워 있는 집을 보듬듯이 하고 있는 풍성한 대숲이 느린 흔들림의 물결로 바람을 타고 있었다. 그 흔들림의 물결이 흐르는 굽이를 따라 무수한 햇빛의 조각이 반짝이고 있었다."

<경성애사>
"풍성한 대숲이 느린 흔들림의 물결로 바람을 타고 있었다. 그 흔들림의 물결이 흐르는 굽이를 따라 저녁노을의 붉은 조각이 반짝이고 있었다."

<태백산맥>
"어허어, 싸게싸게 갖고 와, 늦어뿔먼 못 묵어, 어허어, 찹쌀엿, 찹쌀엿, 달고 맛난 찹쌀엿……." 무당이 바라소리에 맞춰 춤을 추듯 엿장수는 커다란 가위를 철그렁거려 박자를 맞춰가며 걸찍한 목소리로 잘도 주워섬기고 있었다."

<경성애사>
"사시오, 달고 맛난 찹쌀엿, 빨리빨리 갖고 오쇼. 늦으면 못 먹습니다. 자, 꿀보다 단 찹쌀엿……." 무당이 바라소리에 맞춰 춤을 추듯 엿장수는 커다란 가위를 철그렁거려 박자를 맞춰가며 걸쭉한 목소리로 잘도 주워섬기고......"

<경성애사>의 또다른 표절 대목도 이것이 '단순표절'을 넘어 섰음을 보여준다.

<태백산맥>
"중앙에 두 마리의 봉황이 마주 보며 온갖 색깔의 휘황한 꼬리를 양쪽으로 길고 길게 늘였는데, 그 꼬리는 수평으로 나가다가 자연스럽게 꺾여 수직으로 늘어져 있었고, 두 개의 긴 꼬리가 만든 넓적한 직사각형 가운데에 '壽 ·福' 두 글자가 다섯 송이씩의 줄장미 꽃송이에 떠받치듯 자리잡고 있었다."

<경성애사>
"중앙에 두 마리의 봉황이 마주 보며 온갖 색깔의 휘황한 꼬리를 양쪽으로 길게 늘였는데, 그 꼬리는 수평으로 나가다가 자연스럽게 꺾여 수직으로 늘어져 있었고, 두 개의 긴 꼬리가 만들어낸 넓은 직사각형 가운데 '수壽·복福' 두 글자가 다섯 송이씩의 검은 딸기 꽃송이에 떠받치듯 자리잡고 있었다."

'길고 길게'가 '길게'로, '만든'이 '만들어낸'으로, '넓적한'이 '넓은'으로, '줄장미'가 '검은 딸기'로 바뀌었을 뿐 두 작품의 문장은 거의 똑같다. 그런 점에서 일각에서는 남의 작품의 일부나 전부를 자신이 쓴 것처럼 고치는 행위인 '도작'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독자는 "<경성애사> 속에서 나름대로 '잘 썼다' 싶은 문장은 전부 태백산맥에서 통째로 가지고 오거나, 혹은 (이를) 참고로 하여 약간씩 토씨만 바꿨음을 알 수 있다"며 "세상에 어느 작가가 이렇게 많은 메모를 했겠으며, 설령 메모를 한 것을 자신이 쓴 것으로 착각했을 지라도 이렇게 많은 양을 의심없이 썼다는 것은 충분히 문제가 있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 독자는 "더구나 출판사 여우비측은 발매를 중단하는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버젓이 서점가나 e-book 판매 사이트에서 판매 중"이라며 "조정래 선생님과 태백산맥 출판사 측이 별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기에, 사태를 유야무야 넘기려는 속셈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한편, <뉴시스>에서 후속 보도를 통해 <경성애사>가 소설가 박경리씨의 <토지>까지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태백산맥>의 문장을 거의 베낀 경우와 달리 문장이 서로 달라 그 대목을 표절로 단정지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조정래씨의 <태백산맥>(위)과 이선미씨의 <경성애사>의 일부분. 몇개 단어를 빼고 문장이 거의 똑같다.
 조정래씨의 <태백산맥>(위)과 이선미씨의 <경성애사>의 일부분. 몇개 단어를 빼고 문장이 거의 똑같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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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 작가 "깊이 반성... 메모한 걸 제 것인냥 착각"

이씨는 지난 12월 26일 언론에서 표절 의혹을 제기한 직후 한국로맨스소설작가협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리며 깊이 반성하고 각성하겠다"며 표절사실을 시인했다. 

이씨는 <경성애사>에서 <태백산맥>을 표절한 배경과 관련 이렇게 해명했다.

"돌이켜 보면 작가가 뭔지, 글을 쓴다는 게 뭔지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지만 그 땐 더욱 무지했습니다. 갓 로맨스소설을 쓰고 처음으로 인터넷 연재의 재미에 빠졌고 소설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흥분해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시대물을 쓰고 싶다는 열망으로 자료조사를 했습니다.

수십 편의 소설과 인문서 등 자료를 찾아 닥치는 대로 읽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과정에서 참고하리라 생각하고 기록해둔 것들과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정리해뒀던 것들이랑 분간을 못하고 마치 제 것인 양 착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어 이씨는 "의도를 했건 안 했건 결과적으로 도용을 한 점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다"고 밝혔다.

<경성애사> 작가 이선미씨는 누구?

1971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선미씨는 지난 1999년 신영미디어 주최 로맨스 소설 공모에 <아란야의 요정>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이씨가 지은 책으로는 <경성애사> 외에도 <커피프린스 1호점>, <석빙화>, <광란의 귀공자> 등이 있다.

소설가 조정래씨의 <태백산맥>을 표절한 <경성애사>는 지난해 6월 6일부터 KBS 2TV에서 16부작으로 방영된 <경성스캔들>의 원작이다. 2001년 3월 초판 발행된 <경성애사>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모던보이와 신여성의 사랑을 다룬 로맨스 소설이다. 이 책은 한 때 절판됐으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다시 서점가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씨는 현재 이윤정 PD와 함께 차기 드라마 <공중그네>를 작업하고 있다. / 박상규 기자


같은 날 <경성애사>를 출판한 여우비 측도 협회 홈페이지에 "편집을 담당한 편집부로서 백배 사죄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여우비측은 "이것이 정식 출판물로 발행되면서, 작가도 출판사도 저작권 관련 인식이 부족한 채로 책이 발행되었다"며 "개정판을 출간한 여우비 편집부 역시 당시 작가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글을 썼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책을 발행한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우비측은 "이선미 작가에게 확인한 바, 온라인 연재 당시 출판을 목적으로 한 글이 아니었고, 상업적인 글쓰기가 아니었기에 글을 쓰면서 다른 저작물에 대한 보호나 저작권 보호 관련 인식의 수준이 미비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여우비 측은 "신인작가였던 이선미는 <경성애사>를 집필하면서 인문·사회·문학 등 방대한 양의 자료를 조사했고, 작품에 필요하다고 싶은 부분들을 발췌했다고 한다"며 "<경성애사>에 필요하다 싶은 부분들을 가져왔고, 이 과정에서 생긴 일들은 여러분이 알고 계신 부분과 같다"고 표절사실을 인정했다.

여우비 측은 "하지만 어떠한 변명이라도 이 사건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여우비 편집부는 현재 재발행된 <경성애사>의 남은 재고를 비롯, 서점에 깔려있는 책들도 전량 회수하고 폐기처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여우비 측은 <경성애사>가 소설가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표절한 것으로 드러난 점에 대해 "감히 엄청난 대작인 그 작품을 대범하게 따라 출판할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조정래 선생님을 비롯해, 심려를 끼친 여러분께 사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선미씨의 표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한국로맨스소설작가협회는 지난 12월 31일 "이선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새로 나온 책' 게시판에서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이선미씨의 표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한국로맨스소설작가협회는 지난 12월 31일 "이선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새로 나온 책' 게시판에서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 한국로맨스소설작가협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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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로맨스소설작가협회, <경성애사> 등 게시판에서 삭제 조치

한편 한국로맨스소설작가협회는 지난 12월 31일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경성애사>를 비롯한 이선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새로 나온 책' 게시판에서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새로나온책' 게시판은 국내외에서 발간된 로맨스 소설을 소개하는 창구로서 역할을 해왔다.

협회는 게시판에 올리 글에서 "표절작으로 작가가 인정하거나 출판사에서 회수, 폐기하는 경우에는 '새로 나온 책' 게시판에서 그 작품을 내렸다"며 "<경성애사>도 새로 나온 책 게시판에서 내리겠다"고 밝혔다.

또한 협회는 "그와 함께 이선미씨가 기존에 출간한 모든 작품들도 '새로 나온 책' 게시판에서 삭제하겠다"며 "이런 조치는 앞으로 모든 표절 작가에게 동일하게 적용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협회는 "다시는 이런 조치를 두 번 취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이번 일이 한국로맨스소설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이 다시 한 번 저작권에 대해 되새김질 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태그:#이선미, #경성애사, #커피프린스호 1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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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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