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는 수요일과 목요일 저녁이 즐겁다. 2시간여 차이를 두고 미국 괴짜 의사가 등장하는 <하우스>와 토종 한국산 괴짜 의사의 활약이 돋보이는 <뉴하트>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생소하게 들리는 의학 분야인 진단의학과 전문의 그레고리 하우스(휴로리)의 모습을 담아낸 <하우스>는 응급실의 숨막히는 순간을 포착한 <E.R>과 새내기 인턴들의 모습을 통해 따뜻한 인간애를 그려낸 <그레이스 아나토미>와 더불어 미국에서 3대 메디컬 드라마로 꼽히는 수작이다.
2004년 제작된 <하우스>는 몇 년 전 케이블 방송을 통해 소개되어 인기를 끈 바 있으며 지금은 케이블 방송 온 스타일에서 시즌2를, 공중파 방송에서는 시즌1 더빙 판을 방송 중에 있다.
닥터 하우스는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의학 분야인 진단의학. 그중에서도 주로 병명을 밝혀내기 어려운 희귀병을 추적하여 밝혀내 그 치료방법을 제시해 주는 진단의학전문의다.
미국 괴짜 의사 VS 한국 괴짜 의사허벅지 근육 수술로 인해 한 다리를 절며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과자처럼 복용하는 하우스.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사랑도 배려도 친절도 기적도 아니라고 확신하는 그는 싸가지는 없을지언정 희귀병 진단 분야에서는 천재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의 전지전능함(?)을 보인다.
그는 궁극적으로 환자를 위하는 길은 환자를 안심시키거나, 위로하거나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를 심문하고 괴롭히고 무시해서라도 질병의 정확한 원인을 캐내어 진단하고 신속하게 치료에 임하는 것이라고 믿는 현대의학의 맹신자다.
지난 12월 12일 방송을 시작한 MBC 수목드라마 <뉴하트>에도 닥터 하우스급의 괴팍한 천재의사가 등장한다.
흉부외과 전문의 최강국(조재현). 의료계의 꽃이라 불리는 외과. 외과 중에서도 흉부외과는 꽃 중의 꽃이라 불린다. 그만큼 가장 위험하고 힘들다는 뜻이다.
심장수술을 위해서는 수많은 경험과 연습을 통해 쌓은 섬세한 의료기술은 물론 고도의 집중력과 강한 체력까지 필요하다. 대여섯 명의 의료진이 모여 열 시간 넘게 수술하고 받는 비용이 성형외과에서 30분만에 끝내는 쌍꺼풀 수술비용과 같다고 한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이 때문에 어느새 몇몇 대학병원에서는 흉부 외과의사를 지원하는 레지던트가 없어 그 명맥이 끊기고 있다고 한다. 심장수술을 받으러 해외로 나가야 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흉부외과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드높은 기상으로 의술을 펼치는 의사가 바로 그다. 지방에 '좌천'되어 있는 동안 매일 매일 토끼 한 마리씩을 잡아 심장수술 연습을 했다는 흉부외과 과장 최강국. 그는 흉부외과 분야에서는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자타공인 실력자다.
가난한 환자를 위해 직접 사회복지과를 찾을 만큼 지나친(?) 인간애마저 가지고 있는 그의 문제점은 조직의 부조리에는 조금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것. 병원 경영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트러블 메이커가 아닐 수 없다.
까칠한 성격으로 따지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두 사람. 하우스와 최강국을 번갈아 보면서 한국과 미국 의사들의 모습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두 까칠한 의사들이 속해 있는 병원이라는 조직 모습이 한 눈에도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때문이다.
의사가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 질병이 아닌 조직이라니<하우스>의 재미는 <과학수사대 CSI>를 방불케 하는 추적진단 장면이다. 바이러스가 침투해 조직을 파괴시키는 장면은 물론 신경세포가 재생되는 장면까지 마치 작은 캡슐 우주선을 타고 인체 속을 여행하는 듯 섬세하게 펼쳐지는 화면은 사실성을 높여 줄 뿐 아니라 어려운 의학용어를 쉽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드라마를 보고 나면 모르고 있던 의학지식을 알게 되는 즐거움도 있다. <하우스>와 같은 천재 의사에 대한 무한 신뢰가 생기기도 한다.
<하우스>가 의사나 병원에 대한 환상(?)과 신뢰를 부추긴다면 <뉴하트>는 의사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깨주는 드라마다.
환자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마치 경쟁 상대가 된 다른 의사와 전쟁이라도 치르듯 집도하는 의사,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환자를 빼돌리는 의사, 무성의한 진단으로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거나 성공을 위해서는 뒷거래도 마다하지 않는 의사, 환자의 고통보다는 과장이나 병원장 자리에 더 마음을 쓰는 의사.
환자의 생명을 지키고 고통을 줄여주려 노력하는 의사는 없고 성공을 위해 권모술수를 마다 않는 흰가운을 입은 노동자가 가득한 곳이 바로 <뉴하트>에서 표현하고 있는 병원이다. 의술은 없고 경영만 있는 병원. 우리가 찾는 병원이 바로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면 정나미가 떨어진다.
미국의사 그레고리 하우스가 다른 의사들과 의학 소견과 판단 그리고 찾을 수 없는 병명을 알아내기 위해 온갖 싸움을 할 때 우리나라 의사 최강국은 때로는 위급한 환자조차 미루어 둔 채로 거대한 조직의 힘과 맞서 싸운다.
의사가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 질병이 아닌 조직이라니, 의사를 찾게 될 무지한 환자로서는 권력암투 속에 환자들의 인권이 무시당하거나 짓밟혀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의료지식 부족에서 오는 메디컬 드라마의 한계이며 문제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기에 오직 의료에 집중하고 의술로 승부하는 드라마 <하우스>가 부러울 수밖에 없다.
의사가 등장하고 수술대가 나오고 수술 장면이 나온다고 다 의료 드라마는 아니다. 권력암투나 남녀상열지사가 주를 이룬다면 병원을 배경으로 했을 뿐 기업드라마나 멜로드라마와 다를 것이 무엇일까 싶다.
메디컬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로서 우리나라에 <하우스>와 같은 본격 의료드라마가 아직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하지만 매력적인 까칠이 의사들이 등장하는 한국과 미국의 메디컬 드라마를 모두 감상 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당분간 수요일과 목요일 저녁은 한국과 미국의 병원을 오가는 즐거움으로 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