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뇌충'에서 '문보살'로, 문희준의 화려한 귀환 루머는 보통 하루 이틀, 길어야 한 달이면 소멸된다. 그러나 문희준에 관한 루머는 몇 년간 확대 재생산되며 우리나라 플래시 콘텐츠의 발달에까지 일조했던 '루머의 최고봉'이었다. '10만 안티 대군'을 보유했던 '무뇌충'은 '병장 만기 전역'으로 '문보살'이란 명예로운 호칭을 받으며 돌아왔다. 그를 폄하하는 합성사진으로 가득했던 사이트에선 '문보살 제대 환영' 사진과 문구들이 넘쳐났다. 이 기괴한 현상들에 어안이 벙벙할 때, '무릎팍 도사'님이 일을 내셨다. 지난 주(2007.12.26) '무릎팍 도사'는 '고민 해결 팍팍!'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한 듯하다. '면죄부 방송'이라는 비아냥이 무색하게, 꽤 근사하게 '10만 안티대군'으로부터 '최고의 아이돌 그룹에서 솔로로' 전향한 외로운 예비역을 구해냈다. 사실 문희준 스스로 화려한 입담으로 능수능란하게 해묵은 오해들을 쳐냈지만, '무릎팍 도사'라는 방송이 없었다면 이렇게 한방에 처리가 됐을까 싶다. 초반엔 군대 얘기를 '너무 많이' 했다. '군대 얘기로 공감대를 끌어보려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어찌나 맛깔스러웠던지 군대를 안 가본 나조차도 심정이 절절히 느껴질 정도였다. 아시다시피 여자들은 군대 얘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음에도 말이다. (이쯤 되면 '이 기자, 이거 빠순이 아냐?' 란 생각을 하실 법도 한데, 본인은 언더의 언더의 언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서, 문희준과 비슷한 머리 스타일을 한 사람만 봐도 고개를 돌리던 '각종 루머에 넘어간' 귀 얇은 사람일 뿐이다. 귀가 얇아서 그의 해명에 솔깃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 방송을 보고 어찌 안 넘어가리오!) 아무튼 재미있고도 긴긴 군대 얘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루머들에 대한 진실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제가 한 말들이 와전된 것" 그들이 많이 보는 일간지들을 어느새 닮아버린 걸까? '이쯤되면 막하자는 거지요?'를 '막가자는 거지요?'로 만들어버리는 언어유희의 마법사들의 기술을 습득해 버린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에 관한 루머들은 '와전된 것'들이었다. 라디오에서 게스트에게 설명을 부탁하며 "레드제플린이 누구죠?"라고 한 것은 "레드제플린이 누구예요?"로. 간이 안 좋아 몸이 불기 시작하자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라며 어머니께서 싸주신 오이 도시락은 "오이 세 개씩 먹어요"로 전달되었다. "락은 배고픈 음악이니까요"는 본인이 한 말도 아닌 옆의 리포터가 한 농담이었다고 한다. 줄줄이 풀어내는, 안티들에게는 경전과도 같았던 '망언 어록'들의 진실이 하나씩 까발려지는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서른살의 그'가 꽤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고참이 "내가 인마, 초등학교 때 너 팬이었어"라고 하더라며 늦게 간 군대생활 얘기며, 10대 시절의 어려운 가족사, 기타리스트이신 스티븐 시걸을 닮은 아버지 얘기에 눈물을 보이는 그 모습에 더이상 누가 안티를 하리요. "제가 진짜 그 음악이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위에 한 말들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겠지만 나는 그 후의 이야기가 주목되었다. 그를 가장 욕했을 '락 마니아'들이 달가워하지 않을 그의 음악 욕심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그의 아버지도 "사람들이 너를 욕할 만하다"고 했다고 하니, 세상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렇지만, 그는 분명한 어조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기타를 치시는, 비록 작은 무대이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시는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나도 이 음악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그의 음악이 아직 나의 취향은 아니지만, 앞으로 어떤 곡들을 쓸지 기대해봐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일주일 전 종영한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가 떠올랐다. "나는 나, 박인순이야"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으나, 전반부가 참으로 감동적이었던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의 인순이가 문희준과 오버랩되었다.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를 주먹으로 쳐 죽게 했다는 오해를 받고 감옥에서 긴 시간을 보낸 '전과자' 인순이. 사회에 나와 일자리 하나 구하기 어렵고, 죽은 줄만 알았던 친어머니가 사실은 자신을 버렸단 얘기에 자살을 결심했다가 우연히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해 영웅 '지하철녀'로 추앙된 인순이. 잠깐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얼떨결에 지독한 음치 실력으로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계속 사랑을 받아 연예계에 진출하고, 살인 전과자인 게 밝혀져 오르락 내리락, 오르락 내리락. 그 가운데에는 '네티즌'이 있었다. 게다가 성격이 괴팍하기 짝이 없는 엄마의 닦달은 혼란을 가중하기까지 한다. 드라마를 보면 네티즌 한 명 한 명이 썼을 댓글이 미치는 파급력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기획사에서 일부러 댓글을 달아 여론을 선동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순식간에 '천사'에서 '사기꾼' '전과자'에서 '불쌍한 인순이'로, 본인은 그대로인데 세상은 그를 이리쥐락 저리펴락한다. 그러나 결국 인순이는 "나는 나, 박인순이야"라는 진리를 깨닫는다. 드라마는 해피엔딩. 문희준은 '무뇌충'이란 치욕스러운 별명을 얻었으면서도 꿋꿋이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나는 나, 락을 하고 싶다"고 하니 '문희준은 (마음이) 예쁘다'고 해도 되려나. 그리고, '무릎팍 도사'를 만나지 못했어도 인순이는 스스로 '고민 해결 팍팍!'을 했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의 상처까지 감싸안았다. 네티즌의 사랑이라는 달콤함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찾아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인순이의 모습도 예쁘다, 너무 예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