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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오마이뉴스 자원봉사단>이 태안 기름유출 방제활동을 하기 하루 전인 지난 4일 저녁 무렵이었다.

 

방제활동을 펼칠 장소를 미리 돌아보기 위해 백리포 해변을 돌아보던 나와 우리 일행의 눈에 해수욕장 끝자락 절벽에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위태롭게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미 일몰이 지난 시간이었기에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아주 어린 학생들이었다.

 

우리는 호기심에 다가가서 '어디서 왔느냐', '누구랑 왔느냐'를 물었다. 녀석들은 대답은 하지 않은 채 뒤를 가리켰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 것은 그들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절벽에서 미끄러지듯이 내려오는 그녀. 바로 지금부터 내가 소개할 최영희(서울 상암동·38)씨다.

 

그녀는 위태로운 절벽타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어디론가 계속 전화를 하고 있었다.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다. "그러니까 본부에 얘기를 해서 이쪽으로 자원봉사자들을 보내달라고 하라고…. 백리포 해수욕장 끝 절벽을 넘으면 온통 기름 범벅이라니까. 여기는 사람들이 와 보지도 않고…."

 

우리는 그녀 일행을 불러 세웠다. 누가 기자 아니랄까봐 어디서 왔느냐, 몇 명이 왔느냐, 왜 이렇게 늦게까지 일을 했느냐, 어디서 하다가 왔느냐를 캐물었다.

 

그녀와 일행은 모두 7명이라고 했다. 한 가족이란다. 최씨와 두 아들. 동생네 부부. 그들의 두 아들. 이렇게 7명은 벌써 일주일째 방제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이 집인데 백리포해수욕장 첫 번째 집에 방을 얻어놓고 기름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정말? 온 가족이 일주일씩이나?'

 

최씨는 우리가 다음날 방제활동 할 곳을 둘러보려고 왔다고 하자 방제작업을 하던 곳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그녀를 따라 밧줄을 타고 절벽을 올라야 했다. 절벽은 매우 위험했다. 젊은 남자의 몸으로도 쉽지 않은 코스다. 그러나 일주일을 타서인지 최씨는 가뿐히 올라다녔다.

 

최씨가 안내한 곳은 정말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기름이 초콜릿처럼 바위마다 눌어붙어 있었고, 바위란 바위는 모두 새까만 색이었다. '아!~' 탄식이 절로 나왔다. 언덕 너머 해수욕장을 볼 때만 해도 어느 정도 방제가 된 줄만 알았는데….

 

그날 밤 우리는 최씨의 숙소로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우리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일주일씩이나'였다. 정말 궁금했다. 태안이 고향일까? 부모님이 여기 사시나? 태안에 땅을 사뒀나?

 

"사고소식을 TV로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 가족들이 서해안을 참 좋아했거든요. 서해대교랑, 안명도랑, 왜목마을이랑…. 그런 곳을 다니면서 너무 아름답다 늙으면 이런 곳에 집짓고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너무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왔죠."

 

그게 이유란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자연을 인간이 파괴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파서 달려왔단다. 그렇다고 온 가족이 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인데?

 

"대선이 끝난 12월 20일 우선 저 혼자 내려왔어요. 1박2일만 하고 가야지 하면서 내려왔는데 도저히 발길이 안 떨어지는 거예요. 하루만 하루만 하다가 4일을 여기서 지냈어요. 안되겠다 싶었죠. 주위에 사람들을 모아서 다시 오겠다고 올라갔는데 누가 오려고 해야지요.

 

그래서 동생네를 꾀었죠. 저도 하는 일이 있는데 휴가내고, 동생부부도 휴가내고, 동생네 아들 둘하고, 우리 아들 둘, 여섯 살 막내는 너무 어려서 맡겨 놓고, 제 남편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남겨 놓고…. 딱 일주일만 하고 가자고 하면서 내려왔어요. 벌써 내일이 마지막 날이네요. 얼마 닦지도 못했는데…."

 

제일 큰 애가 중학교 2학년이고 나머지는 초등학생들인데, 아이들이 일주일씩이나 방제활동을 하다니 정말 놀라웠다. 힘들어 하지는 않을까?

 

"잘 안하려고 하죠. 아직 어리니까. 집에 가면 용돈 줄게, 게임하게 해 줄게, 그렇게 꼬셔가면서 하려니까 힘들어요. 그래도 자기들도 느끼는 게 있는지 기름 묻은 바위를 보면 마음이 아프대요."

 

엄마의 말이 끝나자 그녀의 큰 아들(최소금·16)이 나선다.

 

"힘들지는 않은데요 돌에 묻은 기름이 찌들어서 닦아도 닦아도 표가 안 나니까, 그래서 저 많은 돌을 언제 다 닦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일주일이나 묵으려면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일을 제쳐놓고 온 것 자체가 큰 손실이죠. 또 애들은 1월 한 달 학원에 안 다니기로 했고. 방 값하고 교통비, 식비 이런 것 다 하면 적어도 60-70만 원 정도 쓴 것 같아요. 애들 학원비에서 좀 당겨쓰고, 놀러 다니는 것 좀 못하고 그러면 어떻게 되겠죠."

 

어느 누구 못지않게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자원봉사자로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았다.

 

"상황실에서 현장상황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네트워크가 잘 됐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려운가 봐요. 우리가 간 곳은 아직도 할 일이 엄청 많은데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해수욕장에서 어제 닦던 돌 또 닦고, 또 닦고…. 그러다가 가요. 그 분들도 큰 맘 먹고 온 분들인데 요소요소에 잘 배치를 해 주고, 또 방제 활동하는 요령도 잘 전수가 되고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씨는 일주일을 지내면서 "이 많은 돌은 언제 다 닦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졌다고 했다. 그리고 뒤에 오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빨리 원상복구가 되었으면 하는 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참여해 주었으면 한다"고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최씨는 인터뷰를 마치는 우리에게 "저는 굴도 좋아하고, 낙지도 좋아하고, 서해안에서 쌓았던 추억도 많고 그렇거든요. 그래서 왔어요. 아마 또 올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는 진짜 놀러 와야죠!"라며 환한 웃음으로 인사했다.

 

다음 날 <오마이뉴스 자원봉사단>은 절벽을 기어올라야 하는 험한 길을 넘어 최씨 가족이 방제활동을 하던 곳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녀와 가족들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씨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수해 주기도 했다. 최씨는 우리가 다 철수한 다음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다. 그렇게 최씨 가족들의 태안에서의 일주일은 끝이 났고, 아쉬운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는 그곳에서 검은 기름에 절은 '절망'이 아닌, 최씨와 같은 아름다운 마음들이 보여주는 '희망'을 봤다고 생각했다.

 

올 여름, 태안 백리포 해수욕장에 가면 새하얀 파도만큼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최씨를 또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태안반도 기름유출#백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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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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