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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얇은 서민들이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싸고 양 많은 것을 찾는 일.
▲ 서민들 주머니 얇은 서민들이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싸고 양 많은 것을 찾는 일.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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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부동산 경기가 한창일 때 자고나면 집 값이나 땅 값이 몇 억씩 올랐다며 좋아했던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러한 특급열차를 타지 못한 이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며 그저 멍하니 수직으로 상승하는 열차를 바라 볼 뿐이었다.

2008년 새해, 돈의 가치가 곤두박질 치고 있다

어떤 이는 하루를 돈 셈으로 시작하고 어떤 이는 하루를 돈 걱정으로 시작하는 게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신분을 만들어 주는 자본주의 세상에선 누가 뭐래도 '돈'이 최고였다.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돈,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돈. 요즘 그 돈의 가치가 곤두박질 치고 있다. 

비싸야만 잘 팔린다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에겐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만 올해 대한민국의 물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오르고 있다. 서민들로서는 잠을 잔다 해도 눈 뜨기 무섭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장 보기가 두려운 게 2008년 새해 벽두의 상황이다.

난방비가 없어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넣어 그것을 안고 잠을 청한다는 가난한 백성의 얘기를 들었다. 나이나 많은가. 그는 젊은이였다. 페트병 하나에 의지해 겨울 추위를 견디는 젊은이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동정을 바라고 꾸며낸 말이 아니다.

한겨울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촛불을 켜 놓고 잠들었다가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 또한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일들은 2008년을 맞은 어제도 오늘도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일 뿐이다.

[서민 : 2008년 물가? 이건 사람 살 세상이 아닙니다]

농사 일이 없는 철엔 소일거리 삼아 짚신을 삼는다.
▲ 소일거리 농사 일이 없는 철엔 소일거리 삼아 짚신을 삼는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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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살 수 있는 게 다행인 세상이다. 싼 맛에 산 것들이 건강 식품 뿐이다. 이쯤되면 도시 사람들, 가난을 부러워 할까.
▲ 장보기 1만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살 수 있는 게 다행인 세상이다. 싼 맛에 산 것들이 건강 식품 뿐이다. 이쯤되면 도시 사람들, 가난을 부러워 할까.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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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들어 시장을 본 기억이 없었다. 냉장고는 며칠 째 텅 빈 상태로 전기만 소모했다. 오늘 김치만 파먹고 있는 현실이 모질어 큰 맘 먹고 정선 장터에 나갔다. 식료품 가게에 들러 평소 먹고 싶었던 밑반찬 만들 것들을 주섬주섬 담았다. 계산을 하기 위해 가격을 물어 보니 3만7600원이란다. 나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졌다.

"물건 값이 이렇게 많이 올랐어요?"
"아유, 말도 말아요. 물건 값 오르는 통에 우리도 죽겠어요."

주인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손님마다 '무슨 물가가 이렇게 올랐냐'고 하는 통에 그거 설명하느라 시간 다 보낸단다. 물가 오르는 게 어찌 가게 주인만의 탓일까. 하지만 그렇게 이해 하고 싶다가도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생각에 은근히 주인에게 화풀이를 하게 된다.

"올라도 그렇지 다른 동네보다 훨씬 비싸잖아요."
"그걸 나한테 따지면 어떡하우. 이 동네 물가 비싼 거야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데 나보고 어쩌라고요."

정선 사람들 물가에 관한한 할 말이 많은 동네이다. 철물점에 가면 부르는 게 값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같은 물건을 사도 시간 대에 따라 물건 값이 달라진단다. 집집마다 가격이 다른 것은 예사. 그런 사정까지 감안하니 주인의 말에 달리 대꾸 할 말이 없다.

물가 비싼 동네에서 살기 싫으면 싼 동네로 거처를 옮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골 생활의 즐거움을 통째로 잃는 기분이다. 경치 좋은 곳에 사는 죄 값을 물건 사는 값에 얹혀준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지만 그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다.

하는 수 없이 담았던 고등어도 내려 놓고, 어묵과 깡통조림 등을 다시 꺼냈다. 이제 남은 것은 순두부 3봉지, 두부 1모, 비지장 2개, 청국장 1개, 계란 한 판, 구운 김 1봉지. 다시 셈을 치르니 1만1300원이란다. 뭐가 그렇게 비싸냐고 다시 물었다.

"500원 하는 순두부 800원으로 올랐고요. 두부도 한 모에 1200원으로 올랐어요. 안 오른 것이 없다고 보면 될 겁니다."

주인의 말을 들으니 사람 살 세상이 아니다. 2800원 하던 3kg짜리 밀가루는 5300원으로 올랐다는 주인의 말은 서민의 목을 조이는 결정타다. 지난 연말 밀가루 값이 오른다 하여 사재기를 했다는 소문 또한 헛말이 아니었다. 과자 값은 물론이고 콩나물 값도 올랐단다. 더 이상 가게에 있기가 싫어졌다.

계산을 하는데 가게에 켜둔 TV에서 광고가 나온다. 한 주부가 돈 만 원을 남편에게 주면서 '이것저것' 다 사고 남는 것은 "용돈해!" 한다. 언뜻 듣기로도 그렇게 많은 것을 사려면 수표 한 장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지만 남편은 용케도 아내가 시킨 것을 다 사고 돈 만원을 아내에게 다시 돌려주며 화장품도 사고 뭐도 사라고 큰소리 친다.

물가가 급등해 심란한 요즘 장난이 심하다. 요즘은 군대에서도 후임병들에게 그런 심부름 안시킨다. 그런데도 광고를 보면 그게 통한단다. 문제는 '쇼'. 어느 마트에서 할인을 적용받으라는 게 광고의 내용이지만 시골 사람으로서 그 광고를 보니 은근히 열통 터진다.

왜냐, 시골에선 '쇼'를 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시골 사람들 아무리 '생쇼'를 해도 할인은 커녕 도시보다 더 비싼 값에 살 수밖에 없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TV를 박살내지 않은 게 다행인 날이었다.

[농민 : 빚만 지는 농사요? 이젠 '노가다' 하러 갈래요]

밭 한가운데에 버려진 밀짚모자. 농민이 땅을 떠나면 누가 지키나.
▲ 밀짚모자 밭 한가운데에 버려진 밀짚모자. 농민이 땅을 떠나면 누가 지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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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토양을 살려내는 퇴비. 땅이 살아난다고 농민이 살아날까.
▲ 퇴비 죽어가는 토양을 살려내는 퇴비. 땅이 살아난다고 농민이 살아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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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물가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농민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살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인 식료품과 생필품의 가격은 이미 천정부지로 오른 상태. 한 해 농사를 준비해야 농민들로서는 농자재 가격의 가파른 오름세에 대해 다들 입만 쩍쩍 벌린다.

작년에도 비료 값의 오름세가 컸지만 올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작년 9800원 하던 요소비료가 올해 1만2400원으로 올랐다. 농민들의 한숨이 땅을 치는 이유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사용 비닐(멀칭) 가격이나 농약 등 오르지 않은 것이 없다. 상승폭도 크다. 축산업을 하는 이들도 치솟는 사료 값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 직전이다.

"비료 값을 이렇게 올리는 건 나라에서 농사 짓지 말라는 거 아닌가요? 물가 오르면 수입하면 된다고 하지만 두고 보세요. 그게 말처럼 쉬운 건지."

농협 앞에서 만난 한 농민의 말이다. 그는 올해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농협에 대출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작년 농사는 어땠냐고 물었다. 농민은 생각도 하기 싫으니 그런 말은 묻지도 말란다. 비료 값이 오른 이유에 대해 농협 관계자에게 물었다.

"화학비료의 경우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요. 원자재 가격이 오른 것도 있지만 수입물량 자체가 모자라요. 수요는 많고 수입은 달리니 당연히 오를 수 밖에요. 축산 사료도 마찬가지고요."

농민의 말이 맞았다. 비료 값의 상승 요인이 수입량 조절의 실패 때문이란다. 곡물 농사를 많이 짓고 있는 유럽에서의 비료 수요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게 수입물량이 줄어드는 이유라는 설명이 따라 붙었다.

리터당 1700원을 넘어선 기름 값과 함께 상종가를 치고 있는 곡물가격은 우리나라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곡물은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그로 인해 국내에서 생산된 곡물의 가격이 덩달아 오르긴 했지만 흉년 농사를 지은 대다수 농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농민들은 이러한 사태에 대해 '농업 자본의 종속이 가지고 온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IMF이후 비료 공장을 비롯해 농약회사, 사료회사 등 외국 자본에 넘어가지 않은 곳이 없단다. 그러하니 가격이 올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구입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게 농민들의 하소연이다.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려고 해도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인증 받는 것도 어려운 데다 판로가 힘드니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단다. 정선에 사는 농사꾼 최모(40)씨의 말이 농민의 답답한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다. 1만평의 농사를 짓고 있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농사라는 게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작년에만도 2천만원 정도 빚을 졌습니다. 올해부터는 비료다, 농약이다 그런 거 다 그만두고 손이 덜가는 농작물을 심어 놓고 '노가다' 하러 다닐 겁니다. 오히려 그게 더 알차거든요. 이젠 농사 지어서 아이들 학비는커녕 책 한 권 못 사줘요."

농민들이 땅을 떠나려고 한다. 농민이 땅을 떠나면 누가 이 땅을 지킨단 말인가. 묵정밭에 핀 개망초 꽃과 칡넝쿨이 땅을 대신 지키나? 그건 아닐 것이다. 농민들은 한미FTA가 발효되면 농사 짓기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설 자리를 잃은 대한민국의 농민들, 비료 값 올랐다며 농협 앞에 모여 항의를 해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다. 정부에서 그렇게 결정한 것을 우리가(농협) 어떻게 뒤집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순대국밥 집 : 이렇게 물가 오르면 음식점 문 닫아야 해요]
 
음식 가격 올린 것을 두고두고 손님들에게 미안해 했다.
▲ 순대국밥집 음식 가격 올린 것을 두고두고 손님들에게 미안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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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속을 달래주는 순대. 술 안주로도, 허기를 채우는 한끼 식사로도 훌륭하다.
▲ 순대 서민들의 속을 달래주는 순대. 술 안주로도, 허기를 채우는 한끼 식사로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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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밥을 먹으러 오는 이들의 대다수는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이다. 정선 장날인 오늘도 가게 안은 손님으로 왁자하다. 여행객도 있고 장날 나들이를 한 시골 촌로들도 보인다. 허출한 배를 채우기 위한 발걸음들. 순대국밥을 시키는 이도 있고, 순대국만 시켜 소주잔을 비우는 이들도 있다.

치솟는 물가는 순대국밥 값까지 올리게 했다. 연말까지만 해도 4천원하던 순대국밥이 새해를 맞아 5천원으로 올랐다. 서민들이 즐겨찾는 국밥 값을 1천원 올리면서 주인의 고민도 컸다. 양을 줄일 것인가, 가격을 올리고 양은 그대로 할 것인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순대국밥 한 상을 차려내기 위해 드는 반찬과 양념류의 가격이 너무 올랐다.

주인은 고민 끝에 결국 1천원을 올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다행인 것은 손님들도 물가가 비싼 것을 아는 처지라 다들 이해해 주었다. 따지고 보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2만7천원이던 가정용 가스 값이 3만4천원으로 오른 것에 비하면 인상율이라는 게 겸손할 정도다.

"물가요? 2천원 하던 청양고추가 8천원, 2500원 하던 파 한단이 8천원으로 올랐어요. 물가가 이렇게 계속 오르면 모든 음식점 문을 닫아야 해요. 그렇다고 중국산을 쓸 수도 없잖아요."

주인은 안심하고 먹을 수도 없는 중국산을 쓰며 손님을 속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순대국밥집 아주머니는 매일 아침과 저녁이면 돼지 내장을 손질한다. 주인의 정성이 양념처럼 들어가는 아주머니의 노력과 특유의 손 맛이 있기에 오늘도 가게는 손님으로 가득찬다.

단순히 돈벌이를 생각한다면 아무 양념이나 쓰겠지만 그러지도 못하는 순대국밥집. 이러한 사정은 여느 집이라고 다르지 않다. 칼국수와 만두를 전문으로 하는 집들의 고민도 크긴 마찬가지이다.

밀가루 값이 급등하면서 음식 값을 올리자니 손님들의 부담이 크고, 장사를 그냥 하자니 누적되는 부담을 견딜 재주는 없고. 음식점을 하는 이들은 2008년을 맞아 진퇴양난에 빠졌다. 음식 가격을 올릴 것인가. 말 것인가. 음식점 주인들은 이 순간도 고민 중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후보 시절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7% 성장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7%가 아니라 10%를 성장한들 무슨 소용인가. 올해 물가 상승율이 4%대에 이른다는 전문가들의 진단도 있고 보면 무리한 성장보다 물가 안정이 더 필요한 시기가 아닌 듯도 싶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 그가 저지른 죄는 사형감이지만 물가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잡았다는 말을 오늘 순대국밥 집에서 들었다. 나이가 지긋한 촌로는 그래도 그 시절이 살긴 좋았어, 라고 말했다. 오늘의 삶이 얼마나 힘들면 그런 말이 회자될까.

서민들이 바라는 것은 요동치는 삶이 아니다. 서민들은 그저 하루를 아무 일 없이 보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해 한다. 2008년 신년 초, 대한민국의 서민들은 행복하지 못하다. 자고나면 껑충 오르는 물가를 감당하기엔 서민들의 주머니가 너무 얇기 때문이다.

돈 벌이는 더더욱 없는 삶. 그런데 물가는 왜 이렇게 오른다냐.
▲ 일거리는 없고 돈 벌이는 더더욱 없는 삶. 그런데 물가는 왜 이렇게 오른다냐.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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