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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향수’ 소외된 세대의 문화적 방랑

‘7080노래방’ ‘7080 라이브 카페’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얼핏 눈에 띄는 70~8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간판들이다. 40~50대가 청춘을 만끽하던 시절을 힐끔 힐끔 되돌아보게 하는 업소들이 경쟁적으로 성업 중인 것은, 이들이 대중문화 소비자로서 이미 주역의 자리를 빼앗겨버린 386 언저리 세대들의 문화적 갈증을 상업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윤형주와 김세환, 드라마틱한 목소리의 송창식, 거침없이 맑고 고왔던 양희은, 그리고 한국적 ‘하드 락’의 새 지평을 개척한 신중현 같은 이들은 그 시절 젊은이들이 열광적으로 공감했던 문화적 코드였고, 70년대 후반 대학가요제 출신 스타들은 앞에 섰던 스타들의 맥을 이어 또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포크송, 통기타, 락, 히피 같은 단어를 마치 특권처럼 즐겼던 그 시절 젊은이들은 어느덧 대중문화에 있어서 소외계층으로 조금씩 위축되게 되었고, 알아듣기도 따라하기도 어려운 ‘헤비메탈’이나 ‘레게’나 ‘랩’을 웅얼거리는 자녀들을 바라보며 새삼 ‘세월이 무상함’을 느낄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 시절 스타들은 이미 전설이나 추억이 되었고, 절기마다 이어지는 이미자, 나훈아 같은 이들이 펼치는 ‘효도 콘서트’를 즐기며 젊은 날을 회상하기에는 너무 이른 386언저리 세대들에게 있어서 ‘7080 음악에 대한 향수’는 문화적 갈증의 표출이며, 그 시대에 풍미했던 문화가 단순히 ‘향수’나 ‘반추’의 차원을 넘어서 현재형이기를 바라는 몸부림일 것이다.

이문세와의 만남

 이문세 사이트. 그는 참 행복한 가수다
 이문세 사이트. 그는 참 행복한 가수다
이문세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가수로서가 아니었다. TV 어린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처음 안면을 트게 된 그가 ‘가수’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는 행복한 사람’이 히트하고 나서였다.

그 노래가 히트할 전후를 즈음해서 대전에서 속리산을 운행하는 시외버스에서 우연히 나는 그의 옆 자리에 앉게 되었다.

1시간 30 분간을 동행하면서 우린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는 창 밖을 내다보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고, 나는 사색에 잠긴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소탈한 그의 모습에 호감을 간직한 채, 손에 쥐고 있던 ‘서머셋 모옴’의 ‘비’를 읽어 내려갔다. 나와 한 자리에 앉아 적지 않은 시간을 동행했던 그가 정말 이문세였는지는 지금도 확신을 못하겠다. 그가 다른 사람이었다고 할지라도 이 또한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나는 ‘그가 이문세였다’고 믿을 뿐이다.

어쨌거나 그와 나의 인연 같지 않은 인연은 여기서 오랜 시간 소강상태를 가진다. 얼마 후 ‘난 아직 모르잖아요’ 등이 히트하면서 가수로서 전성기를 누리게 되지만 TV프로나 라디오 MC로서 두각을 보이는 그를 보며 ‘더 이상 가수가 그의 본업이 아닌가 보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였다.

팬이 있어 기타 들고 산에 오른 가수

‘별밤 지기’나 ‘두시의 데이트’ 등을 진행하는 그를 보며 그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MC가 아닌 가수로서의 이문세의 진면모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접하게 되었다. 정지영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스윗뮤직박스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그는 앨범 ‘독창회’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팬들에게 추억을 반추하게 하는 추억 속의 톱스타로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신곡도 내고 활동하는 현직 가수로서 오랫동안 팬들의 곁에 남고 싶다”며 가수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사실 이 말에 나는 그를 다시 보게 되었고 약간은 감동도 받았다. 대부분 가수들이 세련돼 보이는 ‘라이브 콘서트’를 진행하는 시대에 ‘독창회’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고수하는 그의 연주회가 보고 싶어졌다. 현장에서 확인한 그의 무대 매너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빼고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추억의 히트곡과 오늘의 신곡이 잘 어우러진 환상의 레파토리는 관객으로 하여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관객들에게 있어서 낭만은 과거의 희미한 추억이 아니라 오늘의 진행형인 삶으로 되살아났고 그가 앞으로 오랜 시간을 우리와 함께 호흡할 것이란 확신을 심어주었다.

얼마 전 우연히 TV프로에서 ‘히말라야’에 올라 산악인들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이문세를 볼 수 있었다. 노래하는 그나 노래를 듣는 산악인들이나 누구라 할 것 없이 햇빛과 풍파에 그을리고 튼 얼굴에서 오히려 빛이 나고 있었다. 거기에 산이 있어 산에 오른 산사람들과, 거기에 팬이 있어 기타를 들고 무대를 마련한 가수 이문세는 모두가 ‘행복한 사람’들 이었다.

이젠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 <광화문연가> 중에서


세월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처럼 쉽게 변하는 것이 어디 또 있으랴만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퇴색한다 할지라도 ‘살아 있음’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추억 속의 톱스타가 아니라 현직 가수 이문세가 있어서 행복하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 즐겁고, 그와 동갑내기라 더 반갑고, 비록 사실이 아닐지 몰라도 그의 옆 자리에 앉았던 추억이 있어 더 기쁘다.

이문세는 가수다. 음악이 있고 팬이 함께 있음으로서 진정 행복한 가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한겨레,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문세#7080콘서트#386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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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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