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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주님의 잔을 마셨고, 하느님의 벗이 되었도다."
- 성 야고보 축일 전례 영성체송

2007년 7월 25일 수요일이자 성 야고보 축일, 날씨 다시 햇빛, 순례 33일째.
폰프리아에서 사모스까지, 19km.
오전 7시 출발, 오후 12시 반 도착.

아침이다. 이제는 한 몸인 양 익숙해진 가방 하나와 지팡이 하나를 옆에 두고, 등산화에 발을 쏙 넣고 신발끈을 꽉 조이면 준비 완료. 오늘은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을 따라 산책하듯 걸을 수 있을 거야, 마음이 가볍다. 숙소에 딸린 바에서 크로와상과 카페로 아침을 맞는 순례자들 사이를 조용히 빠져나와 대문을 열고 길 위에 섰다. 자욱한 안개가 사방을 둘러친 새벽의 산중턱에 안녕을 전한다.

차가 다니는 도로를 따라 흙길로 난 순례 길을 걷다가, 잘 닦인 아스팔트 찻길이 탐나서 풀섶을 뛰어넘어 빈 찻길을 걷는다. 길이며 산 하나를 통째로 전세 낸 기분에 걸음이 즐겁다. 그러나 어느새 순례길이 찻길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해 다급해져 순례길로 기어 올라갔다. 가슴 한 번 쓸어내리고 ‘외도(外道)는 적당히, 그렇지만 스릴 만점이었어’, 하며 웃고 넘겼다.

사모스 가는 길 운무에 싸인 마을
▲ 사모스 가는 길 운무에 싸인 마을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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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 풍경은 운무에 가려져 신비롭기만 하다. 내가 지금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건가? 걸음을 멈추고 일출로 붉게 물드는 지평선과 분홍빛 구름의 조화에 넋을 놓았다. 햇빛이 떠오르자 곧 짙은 구름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무심코 길바닥의 축축한 땅을 밟자 파리 떼들이 '우우웅' 하고 달려들어 성을 낸다. 소들의 자취를 따라 걸으며 ‘신발에 묻으면 안 되는데’, 난감해 했다.

길을 걷다 작은 집 문 앞에 놓인 테이블이 눈에 띄었다. 그 위에는 산딸기, 작은 체리열매가 담긴 작은 플라스틱 도시락 몇 개와 동전 몇 닢이 담긴 나무바구니가 있었다. 신기한 무인 산딸기 판매대였다. 1유로에 한 통씩 가져가라고 쓰여있는 것 같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수중에 있는 동전이라고는 다 모아봐야 반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20유로를 성큼 내 놓을 수도 없고….

서성거리다가 됐다, 하고 걸음을 옮기고 몇 발자국 채 못 가서 되돌아와 ‘아침도 못 먹었단 말야~’ 절규하며 있는 동전을 털어놓고 도시락 하나를 챙겼다. 그리고 테이블 앞에 서서 눈을 감고 ‘굶주린 저를 배부르게 해 주신 이 집에 평화를 주세요’, 기도로 나머지 값을 대신했다. 다음에 오면 꼭 갚을 게요. 감사합니다.

두 시간 반을 걸어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에 도착했다. 아침 아홉시 반, 침묵에 싸인 마을은 고요하기만 하다. 겨우 문을 연 빵집을 발견했다. 주인아주머니가 갓 나온 빵들을 차에 싣고 배달가려는 것을 붙들어 매어잡고 “저도 이거 주세요.”, 덕분에 나도 뜨끈뜨근하고 길다란 빵 하나를 받았다. 오른 손에는 탐스러운 갈빛 빵, 왼 손에는 날벌레들이 수북한 딸기 도시락을 들고 걷는다.

트리아카스텔라에서 체리와 커피, 그리고 갓 구운 빵, 오늘의 아침.
▲ 트리아카스텔라에서 체리와 커피, 그리고 갓 구운 빵, 오늘의 아침.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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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사람을 기억 못할까?

마을 끝자락에 이제 문을 연 바를 발견했다. 할아버지들이 아침부터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카페 콘 레체 큰 컵을 한 잔 받아 노천으로 나왔다. 도시락에 물을 부어 벌레들을 입수시키고 따라내어 이제 겨우 먹을 용기가 나는 딸기를 빵에 척 얹어서 아그작 한 입 물었다. 발목의 통증도 잊게 해 주는 이 맛! 어느새 옆 테이블에는 방금 도착한 순례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고, 인사 몇 마디를 나누고 다시 아침식사에 집중했다.

“너 어제 폰프리아에 묵었지?”
“네. 그런데… 나를 알아요?”
“응! 우린 너 봤는데. 우리 기억 못해? 아쉽다~”

프랑스에서 온 율리앙과 리차드는 의자에 기대 매정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는다. 대체 왜  나는 아무도 기억을 못하는데? 한국에서도 ‘나는 너 봤는데’ 하는 얘기를 꽤 들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똑바로 보는 것을 못하는 것 같아. 언제나 눈을 피하고, 딴 곳을 보기 일쑤지. 혹은 내 정신이 딴 데 가 있거나 말야.

꼭 친구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부자지간이라니, “굉장히 젊어 보여요.”, 했더니 “내가 좀 센스가 있지” 하면서 웃는다. 길 위를 친구처럼 걷는 아버지와 아들…,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부럽게 쳐다보았다. 갑자기 눈앞에서 바지를 벗어던지는 아들내미에 화들짝 놀라 눈을 먼 산으로 옮겼다. 걷다보니 몸에 열이 올라 덧입었던 긴 바지를 벗는 것 같은데 어딜 봐야 할지 모르겠다. 대충 아침을 해결하게 되어 짐을 다시 들었다. “우리도 지금 가는데 같이 가자”하기에 “네”하고 잠시 대기.

“저는 오늘 사모스에 가려고 하는데, 혹시 아세요?”
“우리 책에 보니까 조금 있으면 갈림길이 나오고 큰 동상을 따라 가야 한다고 써있구나. 어디 같이 가 보자.”

가이드북 하나 없는 순례자로서 이럴 때에는 고분 고분히 뒤를 쫓는 것이 현명하다. 얼마 채 가지 않아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길바닥에 가방을 쌓아놓고 진을 치고 앉아서는 바닥을 구르는 등의 묘기를 하고 있다. 마치 펑크족처럼 소갈머리(?)를 싹 밀어버린 모습이 재미있다가도 약간 겁이 난다. 곧 택시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와 그들을 싹 태우고 길 위로 사라졌다. 순례라고 걷기만 하는 게 다가 아니구나, 신기한 이들이었다.

곧 사모스와 사리아의 갈림길에 닿았고, 율리앙 부자는 “동상 꼭 잊지 말고” 하며 신신당부를 하고 사리아 쪽으로 걸어갔다. 과연 사모스 길을 따라 걷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상 하나가 나타났다. 그 앞을 2인승 자전거를 탄 이가 휙 지나가다 길을 멈추고 눈앞의 지도를 몇 번이나 확인한다.

“혹시 도와드려요?” 하고 물었다. “여기가 사리아 가는 길이예요?” 하기에 “이리로 가면 사모스를 경유해서 가서 좀 더 멀어요. 저쪽이 사리아 길이예요” 했더니 고맙다며 자전거를 돌리고 사라졌다. 아까까지는 도움을 받다가 이제는 도움을 주고 있다.

나무지팡이 짚으며 길 위에서 주운 수국다발을 꽂아
▲ 나무지팡이 짚으며 길 위에서 주운 수국다발을 꽂아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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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끔할 정도로 위압감 풍기는 수도원

10분에 한 대쯤 오는 차 뒤꽁무니를 쫓으며 도로를 따라 걸었다. 곧 길은 숲으로 접하고 앞뒤로 순례자들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한다. 잘 걷다가도 문득 ‘마을은 언제 나오나’ 조바심내고, 뒤에서 누가 걸어오기라도 하면 마음이 급해져서 속도가 흐트러진다.

손바닥만 한 배낭을 메고 마라토너 복장으로 휙 달음질하는 아저씨를 대신해 ‘저렇게 입으면 춥지 않을까’ 고민해 주고,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저 사람을 내가 따라잡아야 한다는 호승심에 후다닥 걷다가 그의 눈앞에서 보기 좋게 삐끗! 발목을 접질리면서도 ‘올라’ 한 마디를 던지고 태연한 척 걸었다. 그의 눈에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골짝골짝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숨이 꼴까닥 넘어갈 무렵, 산중에 폭 파묻힌 골짜기에 정사각형을 그리는 수도원의 위용이 내려다보였다. 지금까지 본 수도원 가운데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마을 자체가 수도원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하이테크 시대의 높다란 건물 숲에 둘러싸여 사는 것이 익숙한 나조차도 하느님의 엄하심(?)에 한 순간 찔끔, 할 정도의 위압감이었다.

사모스에서 베네딕도 수도원의 위용
▲ 사모스에서 베네딕도 수도원의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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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런히 걸어 수도원에 있는 숙소에 닿았다. 개장은 세 시 반, 주위를 둘러보니 성당 문이 열려있기에 슬쩍 들어가 보았다. 한참 미사의 말씀전례 강론이 진행 중이었다. 넓은 실내에 은은하게 울리는 사제의 목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곱게 깔린 양탄자를 따라 조심조심 걸어갔다. 가방을 한 쪽에 기대고 살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공중에 매달린 십자가와 알파, 오메가의 사인들을 눈으로 좇으며 성당 어디쯤에 낚싯줄이 걸려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사모스 수도원 성당의 전경
▲ 사모스 수도원 성당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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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주변으로 꽤 많은 수도자와 성직자들이 열을 갖춰 서 있다. 성음악 형식의 성가를 주고받고 성찬전례를 나누는 사제단의 위용을 바라보며 그저 대단하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절대자의 위엄을 잘게 쪼개어 나눠 가진 시대에도 느껴지는 엄숙함, 혹은 위압감….

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어마어마한 존재였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천장의 돔으로부터 쏟아지는 은빛 햇살이 제대 한 가운데의 붉은 제의를 입은 사제의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사모스 수도원 성당 천정으로 비쳐들어오는 햇빛
▲ 사모스 수도원 성당 천정으로 비쳐들어오는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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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교회와 이 시대의 국가

어쩌면 중세의 교회가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모습과, 이 시대의 국가가 갖는 권위, 엄숙주의 혹은 ‘우리 없으면 모두 안 돼’ 하는 모습이 조금 닮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나고 자라고 짝을 만나고…, 살고 죽는 일생이 세례로 승인되고 성사라는 이름으로 기념되고 의무 되는, 그러한 예식들을 해낸 교회의 직분을 이제는 국민국가가 하고 있지 않을까?

아마도 그 때 사람들은, 우리가 태어나서 출생신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세례를 생각했을지 몰라. 학교에 적을 두고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고, 일을 하고 죽으면 사망신고 절차를 밟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삶과 죽음은 언제나 있는 것인데,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뒤치다꺼리(?)를 누가 해냈느냐를 두고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를 가르고 구분하고 그것이 영 다른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몰라. 이제 한 40일 가까워지니 생각이 별별 곳으로 흐르는구나.

성 야고보 축일답게 들어찬 신자석의 반쯤은 제복을 깔끔히 맞춰 입은 보이스카웃들이 열을 맞춰 앉아있다.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를 닮은 악기를 품에 안고 미사 가운데 연주를 하고, 휘장이 박힌 거대한 깃발을 펄럭이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손바닥 위에 받아 모신 성체는 새우깡을 닮은 빛깔에 두께는 서너 배 쯤 두꺼웠다. 입 안에서 녹아들 때엔 감자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미사가 끝나고도 한참을 수도원 성당에 우두커니 앉아 온 몸을 휘감아도는 감각에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다 지금부터 수도원 견학을 시작하니 서둘러 따라오라 하시는 수도자님의 손짓에 후다닥 값을 치르고 문으로 들어갔다. 길 위에서 보았던 정사각형의 수도원 배치의 뻥 뚫린 한 가운데에는 고요한 정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사제의 경쾌한 설명과 관람객들의 웃음을 배경음악 삼아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회랑을 따라 걸으며 다리를 쉬었다.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연신 웃음을 띠고 사람들에게 수도원을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그의 친절한 모습에서 방금 미사에서 느꼈던 위압감은 찾을 수 없었다.

사모스 수도원 아름다운 수도원 내부 전경
▲ 사모스 수도원 아름다운 수도원 내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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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쯤 전 저 자리에 수도자가 앉아있었을지도….

실내에 들어서자 벽을 따라 외관과는 퍽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성화가 이어졌다. 천사와 악마의 다툼, 새카만 베네딕도의 수도복을 걸친 수도사들의 모습, 그리고 그 끝은 화려한 천국으로 이어졌다. 그 곳에 묘사된 천국은 화려한 모자를 쓴 교황부터 시작해 성직자들이 가득, 내가 수도원에 있긴 하구나 싶었다. 그 색감과 표현력이 만화를 퍽 닮아 이 수도원에 만화 엄청 좋아하는 괴짜 수도자님이 계신가? 하고 속으로 웃었다.

저 멀리 검은 수도복을 휘날리며 빠른 걸음으로 유리문을 밀고 봉쇄구역으로 자취를 감춘 수사님을 보며 ‘대체 저기엔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그렇지만 그 곳이 공개되면 봉쇄구역이 아니지, 한 시간 동안 알아듣지도 못하는 스페인어 큰잔치에 시달리니 온몸이 피곤하다.

겨우 견학이 끝나고 회랑에 기대어 놓은 가방을 챙겨 수도원을 빠져나오며 “저 라바날의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지냈어요. 거기서 알고 왔어요!” 하며 여권의 라바날 도장을 보여드렸더니 점잖은 수사님이 빙긋이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눈부신 햇빛 아래 수도원 주위를 거닐었다. 웬 중고등학생쯤 되는 아이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수다에 부산스럽다. 아마 축일을 기념하여 주변 동네 학교에서 견학이라도 왔는지, 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조금 버겁다.

수도원을 끼고 흐르는 강을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들, 그 옆으로 탐스럽게 자라나는 옥수수밭, 저 멀리 열린 창문에는 책상에 앉아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 수도자의 옆모습이 보인다. 천년 쯤 전 저 자리에 앉아 있던 수도자는 양피지에 펜으로 성서를 한 자씩 적어나갔을지도 몰라. 엉성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림을 떠올리다 곧 배가 고파졌다.

돌아온 수도원 한쪽 숙소 문은 여전히 굳게 닫힌 채 하나 둘 순례자들의 배낭이 담벼락에 기대어 있다. 나도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아침에 먹고 남은 빵을 뜯고 방금 상점에서 산 ‘아로즈 콘 레체’ 한 팩을 꺼냈다. ‘에이, 식당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네’ 하며 실망한 표정으로, 심지가 익지도 않은 달달한 쌀알을 열심히 퍼먹었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티셔츠며 가방을 똑같이 맞춘 세 사람의 순례자가 두꺼운 책을 펼쳐들고 기도문을 주고받는다. 성무일도였다. 아마도 사제 혹은 수도자이신 것 같다. 티셔츠 뒤에 새겨진 나라 이름이 뚜렷하다. 폴란드에서 온 분들이구나. 낮은 목소리의 기도를 들으며 담벼락 그늘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세시 반이 조금 못 되어 짐을 끌고 줄 앞에 섰다. 갑자기 정체불명의 여성 순례자가 호들갑스럽게 말을 건다. “한국사람? 나 한국어 알아.”, 하고는 불쑥 “안녕!” 하는데 “이건 초면부터 웬 반말이야?” 하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응 그거 맞아. 안녕.”, 하고 애써 고개를 돌린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를 받아내며 살짝 둘러본 실내는 말 그대로 ‘병원’이었다.

소독약 냄새가 확 끼치는 비좁은 실내에 벙크 베드 몇 십 개가 늘어서 있다. 라바날의 그곳과는 천지차이였다. 갑자기 이곳에서 오늘 밤을 지내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아 숙소 리스트를 들춰보니 한 군데 숙소가 더 있단다. 그 말만을 믿고 도망치듯 수도원을 빠져나왔다.

두리번거리며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 끝에 호텔 하나가 더 이상 마을은 없다는 듯 서 있었다. 불쑥 들어가 “혹시 여기 순례자 숙소 또 있어요?” 했더니 종업원은 “수도원 말고는 없어요”하고 대답한다. 그렇다고 이대로 길을 따라 마을을 빠져나가자니 이미 늦은 시간, 15km를 더 걸을 재간이 없었다. 갑자기 무슨 호강을 하려고 이렇게 발악을 하나, 하룻밤 몸을 누일 작은 땅만 있으면 되는데….

어쩌면 라바날에서 떠나던 날 새벽, 선잠에 깨어 두리번거리다 책장 구석에서 발견한 사모스 수도원의 안내문을 발견하고, 나는 이곳, 사모스 역시 사람들이 나를 반겨주고, 라바날에서처럼 눈물겨운 영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지 모른다. 혹은 그때와 같은 포근한 안김을, 푹신한 침대와 풍성한 환대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도착한 곳은 말 그대로 후줄근한 순례자들의 침상이었고, 으리으리한 수도원의 거대한 위용뿐이었다. 부질없는 기대가 실망이 되어 길 위에서 나를 떠돌게 한다. 나는, 여전하구나…. 발걸음을 되돌려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소심한 탕자의 귀향이었다.

사모스에서 수도원 소속의 순례자 숙소의 모습
▲ 사모스에서 수도원 소속의 순례자 숙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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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가의 침대에 짐을 풀고 길 위에서 주워 지팡이에 매어두었던 수국을 물병에 꽂아 물을 먹였다. 시들시들한 꽃잎에 미안했다. 내가 괜히 헤매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풀이 죽지는 않았을 텐데….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내일을 궁리한다.

갑자기 며칠 전 길 위에서 아작을 냈던 오츠마미 과자의 매운 맛이 당긴다. 내일 도착하는 사리아에서 한 봉지쯤 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리저리 생각을 떠돌다 저녁기도와 미사에 갔다. 라틴어로 이어지는 기도문을 라바날에서 예습한 덕에 나름대로 따라할 수 있었다. 제대 위에는 세 분의 폴란드 사제들이 미사를 보좌하고 있었다.

매운 새우깡이 떠오르는 고소한 성체를 받아 모시며, 불현듯 웃음이 나고 기뻤다. 어쩌면… 이 길에 불러 주셔서, 걷게 해 주셔서, 내 안의 부서진 부분들을,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을 한 발짝 한 발짝씩 걸어나가며 다시 이어 붙일 수 있도록 해주신 거구나.

멀리 열 시를 알리는 수도원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돌아온 탕아의 밤은 저물어간다.


태그:#산티아고가는길, #스페인, #도보여행, #성지순례, #카미노데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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