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즐거운 나의 집> 겉표지
 <즐거운 나의 집> 겉표지
ⓒ 푸른숲

관련사진보기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은 신문에 연재되는 동안 말이 많았던 소설이다. ‘실제’ 여부를 두고 여러 말이 들려왔다. 그것이 소설임에도, 그리하여 허구적인 요소가 많음에도, 모델은 실제라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책으로 나오자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왜 그런 것일까? <즐거운 나의 집>은 그런 말들이 범접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색적이라면 이색적인, 어색하다면 어색한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 소설을 쓰는 엄마가 있다. 그녀는 싱글맘이다. 그리고 그녀의 아이들, 위녕과 둥빈 그리고 제제가 있다. 아이들은 모두 그녀의 딸이지만 ‘성’이 다르다.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이고 이것은 그녀가 그만큼 이혼을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 가족을 도와주는 아줌마들이 있다.

성이 다 다른 아이들

이러한 가족을 만난 첫 인상은 뭔가 허전해 보인다는 것이고 또한 불안해 보인다는 것이다. 허전하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은연중에도 아버지가 있어야 정상적이라고 믿는다. 아버지가 없으면 뭔가 부자연스럽다고 한다. 그 이유가 분명치 않지만, 그렇게 믿고 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불안해 보이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이혼이 옳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오늘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것 또한 미심쩍게 본다. 그런데 ‘그 집’의 여자는 이혼을 여러 번 했다. 불안해 보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성이 다른 것은 어떤가?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을 일들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불안해 한다. 사회가 변했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들까지는 쉽게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집’에서 조금만 생활해 본다면 이와 같은 생각들이 편견에 불과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허전해 보인다는 것은 아픈 일을 겪으면서도 서로를 격려하고 포옹해주는 그 가족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불안해 보였다는 것은 어떤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굳건하다.

'그 집' 사람들은 굳건하다

물론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에 따라 많은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겨나가는데 그 모습이 든든하기 그지없다. 그들을 두고 이런 말 저런 말 했던 것이 남부끄럽게 여겨질 정도로 ‘그 집’은 ‘당당’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 집’이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사랑’이 있는 가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소중하게 품는 것은 또 어떤가. 그 또한 하나의 힘이 된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만큼 자주 잊어버리는 일이다. <즐거운 나의 집>이 다시금 그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 집’의 첫 인상은 위태로웠다. 하지만 ‘그 집’을 나올 때는 실상 위태롭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집’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잊고 편견에 젖어 바라보던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족’과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즐거운 나의 집>, 덕분에 우리는 또 한 번 우리의 주변을 뜨거운 눈시울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푸른숲(2007)


#공지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