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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이나 자선단체마다 김장김치 사업을 진행하느라 분주한 요즘입니다. 복지관들의 최근 관심이 지역사회, 지역사회조직이라 말하며 이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으나 이는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행해온 지극히 마땅한 일들입니다. 하지만 지역복지 잘 한다는 복지관들도 그 하는 일을 살펴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지역과 함께하는 일은 거창하고 새로운 일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소재로 지역사회와 깊이 상관하는 것입니다. 꼭 주민을 모아 모임을 만들고 특별한 공부를 하고 마을학교를 열고 하는 것이 지역사회조직화는 아닙니다. 김장김치 나눔, 반찬 나눔, 도시락배달, 생일잔치 등 동네 분들이 쉽게 참여하여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자신의 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돕는 구실로 삼는 일들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에서 시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일하는 복지관에서는, 김장김치 나눔을  ‘사업’으로 하지 않고 이웃들과 만나는 구실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새로운 이웃을 찾기보다는 기존에 알고 지내던 분들께 안부도 전하고 보다 친밀한 관계로 삼기위한 구실로 김장김치 나눔을 제안하고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몇 포기, 몇 가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분 한 분 드리는 분과 받으시는 분의 입장과 상황을 살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즉, 두 분 사이의 관계를 잘 주선하고 맺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선 나누실 분을 선정하여 찾아뵙고 상의하는 것에 집중했고 그 다음에는 받으시는 어르신 댁을 방문하여 여쭈고 있습니다. 김장김치는 나누는 분들에게는 부탁드리는 기회요, 받으시는 분에게도 그 입장을 여쭈고 근황을 살필 수 있는 이야기의 실마리가 됩니다.

 

김치나눔이 잘 이루어지면, 동일한 분들에게 그때 김치를 전한 어르신 댁의 소식을 전해드리며 설날에 떡국을 나눠먹자고 하거나 여름에 수박 나눔으로 다시 그 어르신을 찾아뵙기를 제안하는 것이 어떨까요. 내년 김장김치 역시 같은 분들께 다시 부탁드리다보면 언젠가는 먼저 말씀하실지도 모르지요.

 
 김장김치 나누기는 이벤트 행사가 아니라 일상입니다.
김장김치 나누기는 이벤트 행사가 아니라 일상입니다. ⓒ 김세진

'김선생! 걱정하지 마. 내가 올해에는 벌써 OO할머니 댁에 김치를 드리고 왔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바로 이런 이웃관계의 회복입니다.

 

김치 나눔을 사업화하여 대규모로 지원하는 방식은 경우에 따라 필요하기도 하겠으나 어르신들을 거저 받는 분으로 대상화 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누가 주는지 누가 받는지 명확한 '그'를 알 수 없으니 감사하기는 하나, 그 감사가 복지관으로 향하고, 나눠주어 뿌듯하기는 하나, 여전히 그 일은 내 일이 아니요 복지관의 일로 생각됩니다.

 

이는 복지관의 사업입니다. (김치조차 도움을 받을 정도로) 어려운 가정의 일은 동네 사람들이 함께 하는 일이 아니라 복지관(복지단체)이 하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복지관은 지역사회 스스로 이웃을 섬기고 도울 수 있도록 동네를 일궈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행함은 그렇지 못합니다. 동네 분들을 복지관 사업에 동원하는 것이지요. 인적자원화 시켜버리는 모습입니다.

 

김기석 목사의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를 읽다보니 사람이 모여 더불어 사는 최소의 축소판인 동네에는 다섯 부류의 사람들이 어느 동네에나 있는데, 존경받는 어르신, 말썽 부리는 후레자식, 입방아 찧는 여자,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익살꾼, 좀 모자란 반편이나 몸이 부실한 장애인 등이 그들이라 했습니다.

 

마을은 그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말없이 품어 안았다고 합니다. 간디가 마을 공동체를 통해 인도를 바꾸려 했던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사회사업의 핵심은 관계입니다. 관계로 풀어야 합니다. 마을이 다양한 사람을 품어 안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김치라도 드려야 생활비 부담 줄어들 것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공짜로 비누까지 챙겨드리는 것이 사회복지사의 책무성이다'라고 말씀하는 분도 계시지요. 물론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지요. 공짜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사업은 그 사람을 이미 온전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강점 관점을 주요한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결핍의 관점이 아닙니다.

 

여기저기서 무료, 공짜 물품 잔뜩 얻어다 드리고 그로 인해 만족해하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는 것이 우리의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무한공급의 서비스는 어르신들을 복지의 대상으로 타자화 시킬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구별되는 특별한 누구가로 존재하며 항상 (돕기에 마땅한 마음이 드는) 그 모습 그대로 우리의 선함을 받기만 하는 타자 말입니다. 저는 그런 것보다 우리 동네 어르신으로서의 자존심과 염치를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절망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목적이 되지 않고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행복은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확신에서 오는 것입니다.'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 김기석)

 

전통 공동체의 복지는 자기가 해야 할 몫이 분명히 있는, 그야말로 공짜 없는 자립과 자조, 자치의 복지입니다. 나누는 자와 받는 자는 구별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도움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동네의 모습입니다. 이번 김장김치 나눔에서는 그동안 복지관 도움을 받았던 젊은 어머니들께 어르신과 김치 나눠먹을 수 있을지 부탁하였습니다.

 

또 어르신께 김치 나누는 것에 대해 여쭈면서도 그 물음에 이번 겨울에는 김치를 어떻게 준비하실 계획이신지, 혹시 다른 어르신과 나눠드실 수 있으신지 제안하였습니다. 말을 백 마리 가진 사람이라도 채찍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신세를 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오래된 미래, 헬레나노르베리 호지) 마땅한 사람사이의 이치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가난은 엄밀한 의미에서 근대화 된 빈곤이기 쉽다.. 원래 풀뿌리 공동체에서 가난은 견딜 수 없는 비참한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공생공락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풀뿌리 민중의 자립, 자치, 자급의 능력을 훼손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의 자유롭고 주체적인 정신의 힘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복지국가가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가 정말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삶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를 조금이라도 넓혀가는 일에 헌신하는 수밖에 없다.'(녹색평론96호)

 

우리 사회사업의 지향은 어디인가요? 각자 처한 기관, 조직의 상황이 다르니 그 행함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500포기를 단체로 담가 나눠드리는 기존의 방식은 그대로 진행하더라도 올 해부터는 두 세 가정 정도 관계지향적인 방식을 시도해보면 어떨지요. 퇴근길에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동네 분 만나서 조심스럽게 부탁해 봅시다.

 

건강한 사회란 각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정서적 지지의 그물을 제공하면서, 긴밀한 사회적 유대와 상호의존을 권장하는 사회입니다.(오래된 미래, 헬레나노르베리 호지)


#지역#동네#공동체#복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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