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온 국민을 비탄에 젖게했던 충남 태안 원유유출 사고. 하지만 이 사고와 연관된 해상크레인의 소유주 삼성중공업은 말이 없습니다. 곳곳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지만, 이를 실천할 의지조차 없어 보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삼성중공업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촉구하는 각계각층의 릴레이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기사 수정: 21일 오후 3시]


 프랑스의 정유회사 토탈(Total S.A.)사. 최근 프랑스 법원의 유죄판결에 따라, 1999년 원유 유출 사건에 대해 법정 최고 벌금과 거액의 보상을 물게 되었다.
 프랑스의 정유회사 토탈(Total S.A.)사. 최근 프랑스 법원의 유죄판결에 따라, 1999년 원유 유출 사건에 대해 법정 최고 벌금과 거액의 보상을 물게 되었다.
ⓒ Wikimedia Commons

관련사진보기

이미 삶의 터를 잃은 어민 두 명이 절망 속에서 목숨을 끊은 후였다. 책임 당사자인 삼성중공업과 정부는 여전히 책임을 미루며 손을 놓고 있었다. 결국 세번째 태안 주민이 특별법 제정 등 책임있는 대책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겼다.

우리가 고통과 슬픔으로 신음하는 이 순간, 프랑스의 시민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프랑스 형사법원이 정유회사 토탈사의 해상 원유오염 사고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결정에 따라 회사는 해상오염에 대한 법정 최대 벌금인 37만 5000유로와 피해보상금 2억 유로(약 2800억 원)를 지불해야 한다.

이익은 최대한 챙기고 책임은 최대한 회피하는 것은 민영기업의 어쩔 수 없는 본성이다. 프랑스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10년 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회사 측의 책임을 묻기까지 시민들은 지루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시민들은 기름에 찌들어 죽은 새의 시체를 파리의 본사 앞에 쌓아놓고 시위를 했고, 2만 명 이상이 회사 앞에 모여들어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비록 판결이 시민사회가 요구했던 수준의 엄벌은 아니었지만, 프랑스 최초로 환경오염 자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라는 의미가 있다.

토탈사의 오염사건은 개인 소유의 어장이나 생활환경을 황폐화시킨 삼성의 태안 오염사건과는 달리, 구체적인 피해당사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보상의 대상이 대부분 환경보호단체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죽은 새에 대해 책임 묻는 프랑스, 사람 목숨 두고 책임 미루는 한국

막대한 보상금 역시 구체적인 재산손실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징벌적 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업이 눈앞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점검과 보호의 의무를 게을리 한 것에 대해 엄청난 이익손실로 처벌함으로써 재발을 막고 다른 회사에도 '본보기'를 보여주어 유사한 범죄를 막는 것이다.

이는 이익극대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민영기업을 처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자, 사실상 유일한 방식이다.  이번에 보상을 받게 된 시민단체 가운데 하나인 조류보호협회의 회장은 16일 에이피(AP)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판결로 저희 단체는 80만유로(약 11억 원)라는 거액의 보상을 받게 되었지만, 단 한 푼을 받게 되었어도 저희로서는 만족입니다. 이 판결은 야생조류라는 비상업적 대상에 대해서도 피해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원유 유출 사고로 죽은 야생 조류. 프랑스 시민들은 오염으로 죽은 새들을 토탈사 본사에 쌓아놓고 시위를 했다. 프랑스의 1월 16일 판결은 새와 같이 구체적 재산손실과 무관한 '비상업적 개체'에 대해서도 기업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원유 유출 사고로 죽은 야생 조류. 프랑스 시민들은 오염으로 죽은 새들을 토탈사 본사에 쌓아놓고 시위를 했다. 프랑스의 1월 16일 판결은 새와 같이 구체적 재산손실과 무관한 '비상업적 개체'에 대해서도 기업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 Wikimedia Commons

관련사진보기


기름에 찌든 철새 태안반도에 엄습한 기름은 철새들에게도 큰 재앙이 되고 있다.
▲ 기름에 찌든 철새 태안반도에 엄습한 기름은 철새들에게도 큰 재앙이 되고 있다.
ⓒ 신문웅

관련사진보기


죽은 새에 대해서 엄중한 책임을 물었던 프랑스 정부와는 달리, 한국정부는 환경은 물론, 막대한 재산과 신체상의 피해를 끼친 유출사고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검찰은 오늘 오후 2시에 태안 오염사고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삼성중공업과 유조선 측 모두에 과실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업무상 과실에 의한 선박 파괴 혐의'로, 회사 측에 무한책임을 지울 수 있는 중과실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결국 과실이냐 중과실이냐는 판단은 법원에서 가려지게 됐다. 삼성중공업측의 중과실이 인정되면 보험과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의 책임한도를 넘는 피해에 대해 삼성이 무한책임을 져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삼성과 유조선 측의 책임 비율이 명확히 가려지기 전에는 당장 삶 자체가 어려워진 주민들이 보상을 받기까지 오랜 시일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도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데서 알 수 있듯, 선박에 의한 오염사고는 책임 당사자가 빠져나가기 쉬운 '회색지대'로 악명이 높다. 삼성이 계속해서 '법적 책임이 가려진 후 대처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외적으로는 책임 인정, 국내에서는 책임 회피

프랑스와 달리, 한국의 경우는 재산상의 피해가 분명하다. 무엇보다 '죽은 새'의 문제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산 사람'의 문제이며, 그들의 삶이 위협 받고 있다는 데서 훨씬 시급한 문제이다. 그러나 시간은 삼성 편으로 보인다. 정권교체기가 정부의 책임소재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권 전부터 '친기업'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삼성측의 과실을 엄중히 물을 의사가 있는지 의문이다.

삼성은 태안 오염사건 이후 단 한 차례도 피해민들에게 사과하거나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삼성은 외신에는 이 오염에 대한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대변인을 통해 분명히 인정했다. 12월 8일, 에이에프피(AFP) 통신은 사건을 보도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 세계에 타전했다.

"우리는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오염사건에 대한 근본적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We are awaiting the outcome of an investigation by police. But we are basically responsible for the incident)." 삼성의 대변인은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우리의 책무를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태가 (삼성측에) 호의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안타깝다."

대변인이 언급한 '호의적이지 못한 상황'은 삼성의 비자금 특검수사를 말하는 것 같다. 삼성으로서는 온갖 악재로 인해 회사의 신뢰도가 흔들리는 것이 크게 우려되었을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자신들의 책임이 명백한 사건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불리하다는 판단에서 책임을 인정했으나, 대내적으로는 정 반대의 행동을 취해온 것이다. 

 삼성 측의 사과를 촉구하는 태안주민들의 시위.
 삼성 측의 사과를 촉구하는 태안주민들의 시위.
ⓒ 정대희

관련사진보기


'삼성 원유 오염사건'이라 부르자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비판하기에 앞서 책임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태안 원유 유출사고'대신 '삼성 원유 오염사고'로 부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사건의 책임당사자를 분명히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오염'이라는 말은 아름다운 태안의 해안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저버린 기업과 더 잘 어울린다. 

프랑스조차 시민들의 감시와 비판이 없었다면 법원의 엄중한 판결을 이끌어낼 수 없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는 책임당사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보상하는 것은 물론, 다시는 몇 푼의 이익을 위해 안전점검과 환경보호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도록 혹독한 징벌적 보상의 의무를 지워야 한다.

원유에 의한 해상오염은 단순히 몇 달의 복구만으로 회복되지 않을 만큼 치명적이다. 비비시(BBC)는 지난 16일,  스페인 근해의 프레스티지 유조선 침몰사고에 의한 잔류피해를 조사한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에 따르면, 사고복구 후 17개월이 지난 후에도 근해 갈매기들의 혈액 오염도가 정상치보다 120퍼센트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보상과 처벌은 이러한 장기적 효과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져야 하며, 징벌적 보상은 기업의 매출을 고려해 충분한 충격과 교훈이 될 정도의 금액이 되어야 한다. 토탈사가 물어야 할 2억 유로나 되는 거액의 보상액에 대해 프랑스의 시민사회가 '불만족스럽다'고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힘이 되어 주면 좋겠지만, 그럴 희망은 없어 보인다. '친기업'과 '민영화'를 종교로 믿는 정권의 출범이 다음 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는 비자금과 원유유출로 한국사회를 몸살을 앓게 한 기업에게 출자초액제한 폐지로 은행소유를 허용하고 신문방송 겸영 허용이라는 선물을 줄 계획이다. 시민사회가 손을 놓고 기다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안 기름유출#삼성중공업#공개사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