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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 앞에 수북이 쌓인 아기 인형들

 

오늘로 딱 10일째다. 지난 14일 첫 테스트를 받은 뒤부터다. 수상인명구조원(라이프가드) 과정은 모두 10일. 즉, 오늘은 마지막 강습 날이다. 우선 힘들었던 훈련이 끝난다 생각하니 가슴이 후련하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날인가.

 

이젠 저녁 늦게까지 숙제를 할 필요도 없다. 아침 일찍, 미어터지는 지하철에 몸을 맡기지 않아도 된다. 행복하다. 하지만 왠지 쓸쓸하다. 지난 10일간, 눈만 뜨면 함께 했던 사람들과 헤어진다고 하니 가슴이 찡하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함께 부대끼던 이들과 헤어질 때면 이런 느낌이 든다. 그래서 사실 새롭게 누군가를 만나는 게 두렵다.

 

나이가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이러면 주책이겠지. 주책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다. 오늘은 기분이 그렇다. 특히 서른여섯 명이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게 돼서 더더욱.


 23일 오전 9시, 서울 성동구 마장동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 4층 대강당. 간단한 출석체크 뒤, 곧바로 수업이 시작됐다. "오늘은 영아(만 1세가 채 안 된 아이) 구조법입니다. 구조호흡과 심폐소생술(CPR)을 배웁니다." 강의실 앞에는 아기 인형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여기서 떨어지면 그냥 짐 싸고 집에 돌아가야...

 

전날 연습했던 실습용 인형 '애니'(Anne)의 절반 정도 크기다. 팔도, 다리도 달린데다, 목이 뒤로 젖혀져 실제 아기 같다. 적당히 무게감도 있어 사실감이 더했다. 한 손에 인형을 들고, 바닥에 요가 매트 한 장을 깔고 앉았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두 명이 한 조다. 방법은 성인과 비슷하지만, 불어넣는 바람, 누르는 힘의 세기는 달랐다. 성인보다 약 4분의 1정도로 보면 된다.


여기서 잠깐, 전날 빠뜨린 '구조호흡'과 '심폐소생술'에 대해 짚어보자. 둘의 차이는 이렇다. '구조호흡'은 맥박은 있는데, 호흡이 없을 때 쓴다. '심폐소생술'은 맥박과 호흡 둘 다 없을 때 시도한다. 구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시험을 볼 때 순서가 틀리면 안 되기 때문에, 집중! 또 집중!. 첫째,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면 '3C'부터 챙긴다. '3C란 체크(check), 콜(call), 케어(care)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우리말로 바꾸면 '현장조사', '연락', '의식유무확인'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환자를 발견하면 팔꿈치를 쫙 펴 두 손을 머리 가까이 흔들며 "도와주세요"를 크게 외친다. 누군가 다가오면 "119에 연락해주세요"라고 부탁한다. 다음, 환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묻는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반응이 없으면 문제가 있는 거다. 여기까지가 '3C'다. 무작정 "삼씨삼씨"라고 외우기보다, 과정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쉽게 외울 수 있다.


둘째, 환자 자세를 그대로 두고, 귀를 환자 얼굴 가까이 대고 10초 동안 숨을 쉬는지 확인한다. 셋째, 환자를 똑바로 눕힌다. 배를 대고 엎어져 있을 경우 뒤집는다. 넷째, 기도개방. 한 손은 손을 쫙 편 채 새끼손가락 날 부분을 환자의 이마에 대고 지그시 눌러준다. 다른 한 손은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턱 끝에 얹은 채 살짝 들어준다.

 

다섯째, 기도개방이 됐으면 다시 숨을 쉬는지 확인한다. 이른바, 2차 호흡확인. 환자의 입과 코 가까이 귀를 대고, 환자의 가슴을 보며 숨을 쉬는지 살핀다. 이 상대로 큰 소리로 10을 센다. 여섯째, 기도개방을 유지하고 이마에 얹은 손의 엄지와 검지로 코를 막는다. 공기를 들이마시고 입을 크게 벌려 환자의 입에 두 번 공기를 불어넣는다. 한번 불어넣고 1초 쉬고, 다시 불어넣고 1초 쉬면된다.


일곱째, 기도를 연 채로 맥박을 확인한다. 맥박 체크는 성인과 어린이 경우 경동맥(목 옆쪽의 근육과 기관 사이 움푹 들어간 곳), 영아는 상박동맥(겨드랑이 안쪽 약한 부분)을 짚어보면 된다. 여기까지, 일곱번째 과정까지는 '구조호흡'과 '심폐소생술'이 같다. 맥박, 호흡이 없으면 '심폐소생술', 맥박만 있으면 '구조호흡'을 하는 것이다. 사실, 글로 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설명을 하고도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실습뿐이다. 설명이 더 길어지면 지루해지니, 여기까지만. 궁금하면 지금 바로 자격증에 도전하라.

 

다시 오늘의 강의로. 요즘 인기 있는 의학드라마 '뉴하트'를 보면 심폐소생술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 한 손을 쫙 펴고, 다른 한 손을 깍지를 끼워 손을 곧게 펴고 심장을 눌러주는 것, 기억나는가. CPR은 자극을 줘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럼, 영아 CPR도 같은 방법일까? 아니다. 영아는 손가락 두개(중지, 약지)로만 약 2.5cm 깊이로 눌러준다. 참고로 성인은 약 4~5cm 깊이, 어린이는 3.8cm 깊이 정도다.

 

이론 수업을 받은 뒤, 영아 인형을 바닥에 뉘여 실습에 들어갔다. 고개를 살짝(약 15도) 뒤로 젖혀 기도를 열고 난 뒤, 손가락으로 심장을 누르니 "쌕쌕"소리가 났다. 바람 빠지는 소리다. 힘을 얼마 안 줬는데도, 가슴이 움푹 들어갔다. 실습을 위해 만든 인형이라지만, 너무 사실적인 손맛이 느껴지는 탓에 살짝 섬뜩했다. 실습은 오전 11시40분까지 계속됐다.


오후 12시30분. 점심시간이 끝나자, 곧바로 필기시험을 봤다. 모두 두 차례 치러지는 필기시험 중 첫번째다. 이른바 '자체 필기시험'인데, 커트라인을 넘지 못하면 최종검정을 치를 수 없다. "혹시 형식적으로 치르는 시험이 아니냐"는 질문에 강사는 "아니다. 여기서 떨어지면 그냥 짐 싸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몇 분 뒤, 시험이 시작됐다. OMR카드 한 장과, 시험지를 받았다. 모두 객관식, 4지 선다형이다. 사실 시험을 보기 전엔 "무슨 공부냐. 상식으로 풀면 되겠지" 싶었다. 딱히 공부할 시간을 주는 것도 아니기에, 준비에 소홀했다. 하지만 까딱하다간 짐 쌀 뻔했다. 시험을 볼 때는 그다지 어려운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애매한 문제가 있긴 했지만, 몇 개뿐이었다. 그런데, 시험 결과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수업을 마칠 때 테스트 결과를 알려줬는데, 필기시험 점수가 겨우 커트라인을 넘겼다. 강사는 "다음 최종시험은 애매한 문제가 많아 더 어렵다"면서 "공부를 안 했다가는 백방 떨어진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하나 팁. 필기시험을 잘 보려면 책 3권을 골고루 봐야한다. 문제도 정말 책 3권에서 골고루 출제됐다. 그렇다고 "책 공부를 열심히 해라"고 하면, 무슨 팁이겠는가. 수능 만점 받은 학생들이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했어요"라고 말하면, 누가 믿나. 책을 보기는 하되, 큰 제목을 더 신경 써서 챙겨보면 된다. 작은 거 하나하나 외우려면 머리만 아플 뿐이다. 흐름만 놓치지 않고, 제목만 눈에 제대로 박아놔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어차피 객관식이다. 그것도 4개 중 하나만 고르면 된다.


시험이 끝난 뒤, 5층에 있는 다락방으로 장소를 옮겼다. 수업은 삼각건 사용법. 전날 나눠준 응급구조키트(First Aid Kit) 기억하는가. 그 안을 열어보면, 삼각건 2장이 들어있다.

 


합격자 발표, 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 

 

붕대 매듭의 기본은 '사각매듭'. '사각매듭'을 매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삼각건을 세 번 접어 기다랗게 만든 뒤, 양쪽 끝을 양 손에 잡는다. 오른쪽 끝이 위로 올라가게 포갠 뒤, 한 번 매듭을 맨다. 여기까진 일반 매듭묶기와 다를 바 없다. 문제는 바로 다음. 매듭을 보면, 오른쪽에 있던 부분이 왼쪽을 향해 있다. 그럼 왼쪽 부분이 다시 위로 향하게 포갠 뒤 매듭을 매면 된다. 다시 말해, 오른쪽 끝이 항상 위로 향하게 두 번 매듭을 만들면 된다.


기본 매듭 매기가 익숙해지면, 곧바로 부위별 묶는 방법을 배운다. 머리, 얼굴(뒷머리), 가슴·등, 손·발, 팔걸이 등도 몇 번만 묶었다 풀면 문제없다. 이마, 눈, 뺨도 삼각건을 몇 번 접으면 깔끔하게 동여맬 수 있다.


곧바로 응급구조법 실기 자체시험이 이어졌다. 순서만 잘 기억하고, 배운 대로만 한다면 별 문제 없다. 호랑이 굴에 잡혀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다. 긴장하지 말고, 침착, 침착.


오후 5시50분. 정규 수업은 다 끝났다. 강사가 손에 명단을 들고 다락방 안으로 들어왔다. "자체평가 결과가 나왔습니다. 수영장에서 봤던 실기, 오늘 본 필기시험을 합친 결과입니다. 총 정원 36명 가운데 5명이 아쉽게 떨어졌네요. 합격자 명단을 부르겠습니다."


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 모두들 숨죽이며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몇 초 뒤, 강사는 천천히 입을 뗐다. "강○○, 김○○, 김○○,…(중략)…유○○, 이기자(실제론 이름이 불렸다), …(하략)." 있다. 내 이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최종 시험, 볼 수 있다.' 기뻤다.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아 더욱 그랬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다들 얼굴에 웃음이 걸린 걸 보니 붙은 것 같았다. 한 사람씩, 눈을 마주치며, 기쁨을 함께 나눴다. 그런데, 유난히 낯빛이 어두운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쉽게도 5명이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이름이 안 불린 사람은, 지금 곧바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강사의 마지막 한 마디는 짧고도, 단호했다.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말투엔 아쉬움도 느껴졌다. "떨어진 사람은 언제든지 전화해라. 내가 언제든지 소주 한 잔 산다." 다 뽑지 못해 미안했는지 강사는 이렇게 말하며 객쩍게 웃었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떨어진 이들, 사연 많은 이들이 많았다. 군대 말년 휴가를 이용해 라이프가드에 도전한 이,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있는 이, 군대 가기 한 달 전 마지막 도전에 나선 이, 지난해 라이프가드에 지원했다가 몸이 나빠져 중간에 그만뒀다가 다시 도전한 이, 그리고 스튜어디스를 꿈꾸는 이까지.


사연이 많은 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했는데. 그것을 알기에, 마음이 더 불편했다. 가방을 챙겨들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마침 모두들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괜찮아요. 뭐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되지. 웃어요. 나 때문에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누군가 웃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떨어진 그 애다. 같은 방향이라 함께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집으로 가는 길, 그 애가 나지막하게 속내를 털어놨다. "혀엉~, 나 사실 너무 슬프다. 정말 되고 싶었는데."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말없이, 어깨만 토닥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도전 이기자, #수상인명구조원, #라이프가드, #대한적십자사, #2008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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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화가 나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습니다. 돈이, 백이, 직장이 뭔데,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지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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