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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을 비탄에 젖게 했던 충남 태안 원유 유출 사고. 하지만 이 사고와 연관된 해상크레인의 소유주 삼성중공업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이를 실천할 의지조차 없어 보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삼성중공업에 기업의 책임을 촉구하는 각계각층의 릴레이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북해 석유 시추 시설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는 그린피스 활동가들.
 북해 석유 시추 시설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는 그린피스 활동가들.
ⓒ www.astrosur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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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은 세계적 석유기업인 로열 더치 셸(Royal Dutch Shell)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해로 기억되고 있다. 북해산 원유 생산 거점인 영국과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에서 환경운동가 및 원주민들과 맞붙어 지옥 문턱까지 다녀온 경험이 지금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먼저 영국의 경우다. 셸은 이 무렵 북해 한복판에서 원유 채취 플랫폼 역할을 해오다가 1990년대 초 수명이 다한 시추 시설을 북해 한복판에 가라앉혀 퇴역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스코틀랜드 연안까지 이를 옮겨와 폐기처분하는 것보다 안전하고 비용 절감에도 효과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관련 당사국인 영국 정부도 스코틀랜드 서해안에서 250㎞ 떨어진 심해에 이 시추시설을 가라앉힌다는 셸의 계획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공개되자 그린피스를 포함한 국제 환경단체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석유 시추 시설에 남아있는 원유를 포함한 독성 물질이 북해를 '지옥의 바다'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북해 한복판에 있는 석유 시추 시설은 그린피스 활동가들에 의해 한 달 가까이 점령당했고, 전 세계 언론이 바다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이 드라마를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유럽] 국제적 반대여론에 결국 무릎 꿇은 셸

높이 140m, 무게 1만5000톤의 석유 시추 시설을 심해 한복판에 통째로 빠뜨려 버리겠다는 셸의 계획을 지지했던 존 메이저 수상과 보수당은 곤경에 빠졌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셸의 계획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찬성 여론의 두 배에 육박했다. 

이 사업은 당초 북해를 영해로 두고 있는 영국 정부의 허가를 필요로 하는 사업이었지만 여파는 유럽 전역으로 번졌다. 유럽 전역에서 셸 주유소의 매출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반대 시위가 가장 격렬했던 독일에서는 셸 주유소 방화 사태까지 벌어졌다. 급기야 당시 헬무트 콜 총리는 선진국 정상회담인 G7에서 존 메이저 영국 총리에 항의하고 셸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언급하기까지 했다.

감당할 수 없이 번지는 국제적 반대 여론에 결국 셸은 무릎을 꿇었고 4억5000만 달러나 되는 추가 비용을 들여 이를 선박 터미널로 재활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그렇다고 심해 처분이 더욱 안전하다고 주장해온 전문가들이나 셸이 이러한 기존 견해를 바꾼 것은 아니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반대 여론을 설득할 수 없는 한 무조건 사업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경영상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금도 셸의 사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환경경영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교과서처럼 회자되고 있다.

 로열 더치 셸 주유소에서 벌어진 항의 시위.
 로열 더치 셸 주유소에서 벌어진 항의 시위.
ⓒ www.indy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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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군사정부와 손잡은 석유 시추 사업... 지도자 9명 교수형 

같은 해 셸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서도 석유 시추 사업을 둘러싸고 현지 주민들을 상대로 충격적 사건을 경험한다. 나이지리아의 니제르 삼각주 지역은 이 나라에서도 비옥하기로 소문난 지역이다. 세계적 석유 생산량의 14%나 되는 석유를 이곳에서 뽑아 올릴 정도로 셸로서는 전략적 요충지인 셈이다.

그러나 니제르 삼각주는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석유 생산량을 기록하는 곳이다 보니 이런저런 이해관계의 충돌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 2006년 한국의 대우건설 노동자들이 현지 무장 세력에 의해 납치되었던 곳도 바로 니제르 삼각주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셸이 이 곳에서 사업을 시작했던 1950년대부터 현지 원주민들과 크고 작은 충돌을 빚어왔다. 원주민들은 셸의 석유 생산 이후 농경지와 어업구역이 기름으로 오염되었으며 희귀 동물과 각종 해양생물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지난 50년간 약 150만 톤의 석유가 유출됐다는 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원주민들의 투쟁 목표는 셸이라기보다는 나이지리아 군사 정부였다. 부족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자결주의(self-determination) 전통을 갖고 있던 원주민 부족들 사이에서 석유 생산으로 발생하는 이권을 군사정부가 독차지하는 데 대한 반감이 팽배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군사정부가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평화 시위를 폭력 진압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원주민 투쟁의 초점이 바뀌기 시작한다. 석유 개발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다국적 기업 셸을 향해 주민들은 환경파괴 중지와 더 많은 로열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원주민 거주 지역에 대한 정부의 군사작전에 셸이 헬리콥터 등 운송 수단을 제공하는 등 군사정부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셸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수위를 점점 높여가게 된다.

1995년 유럽에서 북해 석유 시추 시설 폐기처분 방법을 둘러싸고 격렬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셸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서도 충격적 사건에 직면한다. 셸의 석유생산에 반대하며 다국적 석유 메이저에 맞서오던 환경인권 단체 지도자 9명이 군사정부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나이지리아 군사정부의 극단적 처사에 크게 분노했고, 나이지리아 정부와 합작회사를 세워 석유개발 사업을 하던 셸에게도 불똥이 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셸은 환경문제에 관한 한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는 동안 셸은 나이지리아 법원으로부터 석유 개발과정에서 발생한 환경오염에 대해 15억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무장 세력으로 발전한 현지 원주민 조직들은 지금까지도 셸을 비롯한 다국적 석유 메이저들의 현지 생산 기지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 석유 생산기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러한 폭력사태는 아직까지도 셸의 전 세계 매출의 한 축을 위협하는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6년 2월 24일 석유가 많이 나는 나이지리아 니제르 델타지역에서 복면을 한 반군 게릴라들.
 2006년 2월 24일 석유가 많이 나는 나이지리아 니제르 델타지역에서 복면을 한 반군 게릴라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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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불꽃, 저주받은 셸"... 전화위복과 몰락, 선택은 CEO 몫

1995년 불과 몇 달 간격으로 셸이 영국과 나이지리아에서 겪었던 경험은 환경문제에 대처하는 기업의 경영 전략을 둘러싸고 의미심장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1976년에 만들어진 셸의 경영 헌장에 '인권'과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이 포함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북해에서 곤욕을 치렀던 셸 영국법인의 최고경영자 제임스 스미스는 자사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시 우리는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바꾸어야만 했다. 이는 단순히 문제의 시설을 바다에 빠뜨리지 않고 육지로 끌고 가는 문제가 아니었다. 세계 각국에서 우리의 사업을 어떤 방식으로 수행할 것인가를 재검토하는 문제였다. 우리는 아무리 과학적 분석 결과와 정부의 승인이 (사업 추진에)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계획과 행동에 대해 더욱 투명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반면 나이지리아 쪽 사정은 어떤가. 나이지리아 원주민인 오고니(Ogoni)족 주민들은 지금도 이런 구전가요를 흥얼거리고 있다.

"셸(Shell)의 불꽃은 지옥(hell)의 불꽃, 그 불빛 아래서 몸을 녹이네. 모두 말라죽고 우리에게 남은 건 없네. 저주받은 무관심, 저주받은 셸(Shell)."

환경 재앙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몰락의 신호등으로 삼을 것인가. 결정은 경영자의 몫이다.


#태안반도 기름유출#로열더치셸#사회적 책임#석유#나이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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