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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소리가 작업장을 울린다. 소통을 기다리던 전화 소리는 제 풀에 끊어진다. 벌써 네 번째 울리는 핸드폰 소리다. 하지만 작업장 속 주인은 전화 소리보다는 일에 빠져 있다. 밥상 대신 넓은 판자를 의자에 올려놓고 먹음직스럽게 비계가 섞인 김치찌개,  마른숭어, 김, 김치,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부인이 마지막 매생이 한주먹을 쥐고 딸 손자 머리 쪽 짓듯 마무리를 하고 밥 먹을 채비를 한다. 다시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을 주인은 그제야 집어 든다.

매생이 채취
 매생이 채취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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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채취
 매생이 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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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제철을 맞다

“월요일이요. 몇 시요. 매생이전, 매생이국 음식도 만들자구요. 여그는 그런 것 없어라. 깨끗한디 그런 소리할라 먼 오지말쇼.”

대화 소리만으로도 감이 온다. 매생이가 제철을 맞았다. 바쁜 것은 어민들만이 아니다. 이놈의 방송국이 더 난리다. 며칠 전 약산 매생이가 방송에 소개되면서 천동리 마을의 매생이 출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이 정도면 출연료만도 쏠쏠했을 텐데 작가의 마지막 멘트가 껄쩍지근하다. 그놈의 ‘타르’ 이야기를 기어코 집어넣는다. 사실 완도 섬에서는 타르를 구경하고 싶어도(?) 구경할 수 없다. 그런데 김 값은 물론이고 매생이를 포함한 수산물 소비가 많이 줄었다. 가격도 예전 같지 않다.

매생이와 굴 양식장(고금도와 약산도 사이)
 매생이와 굴 양식장(고금도와 약산도 사이)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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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에 매생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3년도 되지 않는다. 처음에 몇 척씩 시험 삼아 해본 것이 지금은 40~100여 척으로 늘어났다. 천동리의 어촌계장 차씨(62)도 작년에는 6때를 막아 170만원의 돈맛을 봤다. 자신감을 얻어 금년에는 30때를 막았다. 천동리 50여 가구 중 19가구가 금년에 매생이 양식에 뛰어 들었다.

천동리는 내년에는 이웃마을에 내준 어장까지 매생이 양식을 할 계획이다. 약산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마량에서 출발한 배가 닿았던 천동나루. 그곳에는 매생이 작업장 몇 채가 지어져 있다. 매생이가 고금도와 약산도까지 확산된 것은 파도와 조류가 세지 않고 적절한 수온이 유지되는 천혜의 조건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요인은 유통이 편리해진 데 있다. 약산대교와 고금대교가 차례로 개통되면서 상인들이 직접 마을에 들어와 매생이를 구입하고 있다. 광주의 양동시장, 남광주시장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직접 구입해간다.

매생이를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매산이’, 자산어보에는 ‘매산태(莓山苔)’라 했다. 자산어보에는 매생이의 특징으로 ‘명주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빽빽하다. 길이는 몇 자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미끄러우며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적고 있다.

매생이국
 매생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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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정식
 매생이 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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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권력을 쥐다

매생이는 강진, 고흥, 완도, 장흥, 진도 등 서남해역에서 자라는 해조류다. 환경오염에 매우 예민한 매생이는 육지의 오염물질이 유입되거나 태풍은 물론 파도가 심한 곳에서 자라지 않는다. 게다가 염산이 근처에만 와도 녹아버리는 무공해 식품이다.

매생이를 비롯해 김, 미역, 다시마, 파래, 톳, 모자반 등은 겨울바다에서 온갖 영양분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고 전해지는 해조류들이다. 웰빙음식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이들 해초들은 음식재료는 물론 환, 분말 등 건강 보조식품은 물론 사탕과 젤리를 비롯한 과자류 등에까지 그 쓰임새가 확대되고 있다.

매생이는 녹조식물문 갈파래목 매생이속에 속하는 해조류다. 흔히 파래와 혼동하는데 파래는 매생이보다 발이 굵다. 매생이 발은 머리카락 보다 더 가늘고 부드럽다. 마치 개울에 낀 이끼처럼. 음식은 권력과 관련이 많다. 커피가 그랬고, 설탕이 그랬다. 매생이가 저자거리에 유통되기 시작한 것이 오랜 된 일이 아니다.

<자산어보>에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럽다’는 대목이 있지만 남도의 갯가에 터전을 둔 사람들이나 먹는 음식이었다. 1990년대 국민의정부 시절 힘 좀 쓰는 정치인들이 한정식 집을 드나들며 정식 메뉴에 올렸던 매생이국이 웰빙바람을 타고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매생이는 무기염류와 비타민이 풍부해 어린이 성장발육, 변비예방, 혈압강화, 골다공증 예방 등 노인병에 좋다.

썰물에 모습을 드러낸 매생이
 썰물에 모습을 드러낸 매생이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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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와 ‘매생이국’

시인 안도현은 ‘매생이국’을 이렇게 노래했다.

저 남도 해안에서 왔다는
맑은 국물도 아니고 건더기도 아닌 푸른 것, 다만 푸르기만 한 것
바다의 자궁이 오글오글 새끼를 낳을 때 터뜨린 양수라고 해야 하나?
숙취의 입술에 닿는 이 끈적이는 서러움의 정체를 바다의 키스라고 해야 하나?
뜨거운 울음이라고 해야 하나?
입에서 오장육부까지 이어지는 푸른 물줄기의 폭포여
아무리 생각해도 아, 나는 사랑의 수심을 몰랐어라.


정일근 시인도 ‘매생이’를 노래했다.

다시 장가든다면 목포와 해남 사이쯤
매생이국을 끓일 줄 아는 어머니를 둔
매생이처럼 달고 향기로운 여자와 살고 싶다.
(중략)
남쪽에서 매생이국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차가운 표정 속에 감추어진 뜨거운 진실과
그 진실을 훌훌 소리내어 마시다 보면
영혼과 육체가 함께 뜨거워지는 것을.
아, 나의 아내도 그러할 것이다.
뜨거워지면 엉켜 떨어지지 않는 매생이처럼
우리는 한 몸이 되어 사랑할 것이다.


갈무리를 잘 해 놓은 매생이, 한 덩어리를 '재기'라 부른다.
 갈무리를 잘 해 놓은 매생이, 한 덩어리를 '재기'라 부른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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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한 매생이를 바닷물에 잘 씻어 여인의 '쪽'마냥 모양을 만든다. 이를 '재기'라고 한다.
 수확한 매생이를 바닷물에 잘 씻어 여인의 '쪽'마냥 모양을 만든다. 이를 '재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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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의 동침, ‘매생이와 김’

부모들은 곧잘 이런 말씀을 하신다. 속 썩이는 자식이 효도한다고. 그래서일까. 요즘 남도 바닷가에 효자 매생이가 인기다. 매생이는 12월 중순에 수확을 한다. 상강(10월 23일) 무렵 대나무발을 얕은 바닷가에 깔아 매생이 포자 채묘작업을 한다. 한 달쯤 뒤 수심 2미터 내외의 바다에 말장을 박고 10개의 발을 묶는다.

그 길이는 40m 내외로 이를 한 때(척)라 한다. 채취는 12월 중하순에 시작해 2월 말까지 이어진다. 물때에 따라 긴 장화를 싣거나 작은 배를 타고 들어가 작업을 한다. 보통 세 차례 정도 수확을 하고 매생이 발을 철거한다. 매생이 발 한 척에 600개의 대나무가 들어간다. 시설비로 10만 원 정도 들며, 60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채취한 매생이는 갯가에서 바닷물로 헹군 다음 물기를 빼고 어른 주먹 모양으로 다듬는다. 이를 ‘재기’라고 한다. 400g 남짓한 크기로 모양이 꼭 옛날 여인 쪽머리 모양이다. 값이 좋을 때는 4000원에도 거래되었지만 최근 산지에서 2500~3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매생이는 파도가 심하지 않고 조류의 흐름이 약한 갯가에서 잘 자란다. 이곳은 김 양식이 발달하기 전 1960년대 대나무를 쪼개 만든 김발을 막았던 장소다. 자산어보에도 지적했듯 매생이는 김발보다 수면이 얕은 곳에서 자란다. 지금은 매생이가 비교적 대중화되어 회자되지만, 과거에는 섬 주민들이나 미식가들 사이에 알려졌을 뿐이다.

특히 김 양식이 완도경제를 좌우하던 시절에 ‘매생이’는 천덕꾸러기였다. 일본으로 수출하려면 눈치 없이 김발에 붙어 기생하는 매생이를 한 올 한 올 뜯어내야 했으니 어민들의 눈총깨나 받았을 게다. ‘이것이 금덩이가 될 줄 누가 알았어’ 약산면 천동리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어민들은 누구나 차가운 하늬바람에 맞서 김발에서 엉겨 붙은 매생이를 뜯어낸 경험들이 있다. 지금은 작업장에서 ‘매생이 재기’를 만들며 눈치 없이 섞여 올라온 김을 뜯어낸다. 매생이와 김, 김과 매생이의 동침, 인생사가 그렇듯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매생이 발은 세벌 맨(채취) 후 철거해 다음해 다시 설치한다. 매생이 발은 한 때(약 40m)에 600개의 대나무를 엮어 만든다. 발 한 개에 평균 1만원 정도의 수확을 한다.
 매생이 발은 세벌 맨(채취) 후 철거해 다음해 다시 설치한다. 매생이 발은 한 때(약 40m)에 600개의 대나무를 엮어 만든다. 발 한 개에 평균 1만원 정도의 수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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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매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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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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