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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처가식구들과 함께 오봇한 시간을가진 어느 날
가족처가식구들과 함께 오봇한 시간을가진 어느 날 ⓒ 김민수

 

고향은 서울, 차남, 종교는 개신교. 이 정도면 갖출 것 다 갖춘 것 아닌가? 교통체증으로 고생할 일 없고, 차남이니 손님치레 할 일도 없고, 개신교니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임에도 명절만 되면 예외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속물이라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문제의 근원을 살펴보면 '돈'이다. 그러면 혹자는 '돈'만 있으면 명절증후군 없겠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다. 물론 그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명절 스트레스의 주원인은 여전히 '돈'이다.

 

아이들 사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휘는데

 

한국에서 5인가족 최저생계비가 얼마인지 계산하기 조차도 싫다. 심정적으로는 중산층이고 싶은데 그렇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비참해지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골에 살 때는 지금의 반 정도의 연봉으로도 빚지지 않고 살았는데 서울생활도 서울생활이지만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세 자녀를 두고 있다보니 사교육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만족할 만큼 사교육에 몰입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최소한(모든 부모들의 잘못된 판단일지도 모르지만)의 것을 시켜주고 있을 뿐이다. 이런저런 것들을 제하고 아무 일이 없어야 가계에 주름이 지지 않는다. 하지만 돌발상황이라는 것은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그런데 명절은 예견된 상황이지만 거의 돌발상황(?) 수준이다.

 

그동안 우리들 먹고사는 데만 여념이 없었으니 명절 때만이라도 양가부모님들에게 시늉 정도는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그동안 갖고 싶었어도 미안해서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 내어 하나쯤은 장만해 줘야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한 것 같지 않은가? 그리고 집안 어르신들과 아이들까지 하나 둘 챙기기 시작하면 최소한으로 잡아도 가계에는 어둔 그림자가 드리울 수밖에.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지 않을 때만 해도 여유(?)가 있었는데 연일 인상되는 학원비 뒷감당하다보니 빈지갑 사태가 빈번하고, 아예 그것을 넘어서 마이너스 통장사태까지도 발생을 한다. 조금 빚지고 살아가지만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살아야 할 수밖에.

 

그래도 빈 지갑이면 열 받는 걸 어떻게 해?

 

비자금도 마련해 봤다. 나의 비자금 출처는 <오마이뉴스> 원고료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별일 없이 차곡차곡 원고료가 쌓이면 꿈을 꾼다. DSLR카메라를 장만할 계획. 그렇게 원고료로 카메라를 살 기회는 서너 번 있었지만 번번히 좌절됐다. 돌발상황 혹은 명절과 관련되어 뭉칫돈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기분을 바꾼답시고 마이너스 통장을 꺼내 연필로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고쳐보지만, 이내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결국은 마이너스를 조금이라도 줄이자는 쪽으로 생각의 가닥을 잡게 된다. 그런 일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나의 무능함을 잊은 채 아내에게 퍼붓는다.

 

"뭐냐? 좀 모았나 싶으면, 카메라를 사겠다 싶으면 맨날 이러냐? 지갑은 열어봤냐? 빈 지갑이다. 빈 지갑."

"당신만 그래? 요즘 남자들 다 그래."

 

"뭐가 그러냐? 다른 직원들 지갑은 빵빵하던데."

"빚지지 않고 사는 걸 감사해, 남들 지갑 쳐다보면서 열받지 말고."

"그래도 빈 지갑이면 열 받는 걸 어떡해?"

 

다음 날 출근 해서 지갑을 열어보면 빳빳한 배추잎사귀를 닮은 놈이 두어 장 들어 있다. 아내의 배려다. 아마 거기서 조금 더 격앙되면 '당신의 능력' 운운하는 얘기가 나왔을지도 모르고, 그랬으면 '칼로 물베기'라는 부부싸움이 화끈하게 진행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명절이면 되풀이 되는 '돌려막기'

 

명절이면 내 지갑은 점점 가벼워지는데 아이들 지갑은 점점 두꺼워진다. 뭐, 그렇다고 평소에 지갑이 빵빵한 것도 아니다. 출퇴근 기름 값 외에는 거의 돈을 쓰지 않기 때문에 빈지갑일 때가 더 많다. 그래도 명절 때 집에서 출발할 때에는 제법 두툼하게 챙겨나가기 마련이다. 그래도 결국 급할 때는 아이들에게 빌리게 되고,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한 두주가 지나기 전에 갚는다. 이른바 돌려막기다.

 

그래도 이 정도면 배부른 소리라고 일침을 놓을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그것에 대해 강력하게 '아니다!'라고 부인하지는 않겠다. 명절이 되어도 고향은 고사하고 가족들조차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이들이 많은데 당연 배부른 소리다.

 

지금 내 지갑에는 설날 상여금으로 받은 빳빳한 현금이 들어 있다. 양가 부모님과 아이들과 조카들을 세며 계산을 해보니 딱 그 정도의 금액이다. 음식장만하는 만큼의 비용만 제하면 이번 명절은 방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퇴근을 하면 고스란히 아내의 손에 쥐여질 것이고 내 지갑은 또 배가 고프다고 징징거릴 것이다.

 

"당신만 그래? 요즘 남자들 다 그래!"하는 아내의 말이 귓가에 윙윙거린다.

 

가족 조카 집들이에 모인 가족들
가족조카 집들이에 모인 가족들 ⓒ 김민수

 

비교하기 시작하면 한 없이 왜소해지는 나

 

나는 돈버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아내도 나도 가족들도 돈을 모으지 못해도 빚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간다. 간혹 풍족하지 못해서 속이 상하기는 해도 그 정도의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므로.

 

그런데 친지들이 모여 대화를 시작하다 보면 주제는 돈 이야기로 귀결이 된다. 아파트의 평수를 늘렸다든지, 땅 사 놓은 것이 얼마나 올랐다든지, 주식이 어쩌고하는 집안 자랑이야기가 시작되면 나는 잠자코 대화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내 명의의 집도 없고, 집을 마련할 계획도 없고, 땅 사둔 것도 없고, 주식하고도 거리가 멀다.

 

자식자랑과 며느리 혹은 사위 자랑이 시작되면 아직은 며느리나 사위 볼 나이도 안 되었고, 자식자랑이야 팔불출 같고, 아이들에게 부담만 주는 것 같아서 또 뒤로 밀려난다. 이야기 끝에 민속놀이(?)를 하자고 윷놀이나 고스톱을 하자고 하면 돈내기를 해야 재밌다고 하니 돈내기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또 밀려난다. 요 내용만 보면 완전히 '왕따'가 따로 없다. 그런데도 용하게도 왕따는 아니다.

 

그러나 뒤끝이 만만치 않다. 나야 그려러니 하고 명절의 뒤끝을 마무리하지만 아내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누구네는 어떤데 우리는 뭐야? 누구는 어떤데 당신은 뭐야?'

 

꼭 요런 생각을 아내가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점점 왜소해지는 것 같고, 내가 도대체 지금까지 추구하며 살아온 바가 옳은 것인지 아닌지 회의를 하게 된다. 그렇다고 돈 팍팍 벌어다 줄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더 더욱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러나 결국은 한 마디에 스트레스를 날린다

 

아내에 대한 내 생각이 틀린 것인가, 아니면 아내가 이미 내 속을 다 읽고 있는 것인가?

 

"추구하는 게 다르잖아. 당신이나 나나 돈 버는 것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잖아."

 

물론, 그 한 마디에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것은 아니다. 빈지갑을 볼 때 느끼는 그 허전함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말 한 마디로 인해 다시금 살아온 길을 돌아보게 되고, 살아가야 할 길을 재다짐하게 된다.

 

말 한 마디, 고우나 미우나 나를 이해해주고 동반자로 살아가야 할 그 사람이 던져주는 말 한 마디가 명절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린다.

 

요즘은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아내의 입김이 점점 세지는 것 같아 기싸움을 간간히 한다. 계속 밀리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 지금부터 '네, 네!'하지 않으면 말년에 고생할 것이라는 아내의 은근한 협박에도 불구하고 기싸움을 한다. '돈도 제대로 벌어다 주지 못하면서 꼴에 자존심은 있어 가지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존심이라도 세워야 한다면 40대 후반을 살아가는 이들은 이해를 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명절, 남편들도 두렵다구요> 응모글'


#명절증후군#명절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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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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