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토요일 오전,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 근처에서 내렸다. 학교로 가는 골목길은 벌써 꽃길이 되어 화려하다. 손에 꽃다발이 들려있어선지 아무도 내게 꽃을 사라고 하지 않는다. 어젯저녁 동네에서 꽃다발을 맞추고 오늘 아침에 꽤 비싼(?) 값을 치르고 찾았다. 졸업이나 입학식 때면 꽃다발 같은 별로 '실속' 없는 것에 돈 쓰기가 잘 안 됐는데, 이번 딸애 졸업식에는 큰 돈을 써야 될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남편은 전날인 1일 출장가서 졸업식날 저녁때나 돌아올 예정이고, 아이에게 "졸업식 하고 맛있는 회를 사주겠다"던 시동생도 출장 중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하나뿐인 딸애의 남동생도 누나 졸업식날엔 학교 수업이 늦게 끝난다고 한다. 학년 반 배정이 있는데 새로운 선생님이 누가 될지 다 알고 오려면 졸업식 끝난 후에야 오게 될 뿐더러 시간이 돼도 누나네 학교로 가는 길이 번거롭단다. 가만 듣고 보니 올 생각은 없고 변명만 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년 입학식' 때는 자기가 꼭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겠다고 한다. 내년 입학식? 딸애는 한 해(재수) 더 도전하기로 했다. 수능이 끝나면서 차츰 결심이 선 듯 아예 지원을 하지 않았다. 이웃이나 친척들, 친구들은 왜 재수를 시키냐(하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도 걱정스러웠지만 딸애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했을 터였다. 친구들이 대학지원서를 쓰고 합격과 불합격의 경계에 감정이 오르내리는데 딸애는 도시락을 들고 독서실로 갔다. 다시 수험생이 된 딸을 바라보는 마음이 안쓰럽다. 오늘 졸업식은 딸애에게 노는 날이다. 선생님과 반가운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식이 끝나면 맛있는 점심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엄마, 학교 올 때는 꼭 이 옷을 입고 와." 딸애는 제 엄마가 입을 옷을 눈여겨 봐 두고 특별히 주문했다. 나는 평소에 치마를 잘 안 입는 편이라 어색하고 불편했다. 식장을 안내하는 학생들은 까만 비닐봉지 두 개씩을 나눠주었다. 바닥이 더러워질까봐 궁여지책으로 비닐을 실내화 삼아 신는 것이었다. 강당엔 졸업하는 학생들로 꽉 차서 열기가 후끈했다. 남학생 여학생 나누어 앉아있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니 검고 동그란 뒤통수가 누구랄 것 없이 다 똑같아 보인다. '어머, 여기서 애를 어떻게 찾나?' 딸애가 카메라를 갖고 간 것이다. 딸을 찾아야 하는데 핸드폰도 없으니 어떡하나 싶었다. 내가 찍고 싶은 장면들이 눈에 띄는데 할 수 없었다. 여학생 줄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반 별로 앉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난감할 데가. 딸애가 몇 반이었는지 알쏭달쏭하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12반인 것 같다. 나는 뒤에서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혹시 12반에 이슬비'가 어디에 앉아있는지 아이들에게 물었다. "12반 이슬비요? 걔 9반이에요. 저 쪽 에어컨 쪽에 있어요. 야~ 굴비!" 내가 찾기도 전에 그 아이가 내 대신 큰 소리로 부른다. 친구들 간에 부르는 딸애의 별칭이 '굴비'이다. "야, 굴-비, 너네 엄마 오셨어!" 수다를 떠느라 제 엄마가 온 줄도 모르던 애가 나를 보자 '어, 엄-마!' 한다. 모녀상봉이 따로 없다. 재빨리 카메라를 건네받고, 아이들 시선을 받으며 9반에서 12반까지 걸었다. 그 계면쩍음이라니. 식순에 따라 국민의례가 있을 때, '국기에 대한 맹세'를 들었다. 그러다 어느 대목에서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에서는 왜 뭉클했는지 모르겠다. 졸업장과 상장이 수여되고 이름이 불리는 학생이 나올 때마다 그 반의 아이들은 모두 일어났다. 그리곤 합창하듯 이름을 복창했는데 그럴 때마다 강당이 잠깐씩 들썩거렸다. "우리 사진 찍어야 돼, 지금 아니면 내가 언제 널 만나겠니?"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대면서 서로를 안아주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운동장은 이미 주차장으로 변해있어서 교문 앞은 계속 복잡했다. “무자년 새해는 무쟈게 공부할 해... ㅎㅎ” 남편이 내 핸드폰으로 딸애한테 문자를 보내왔다. 다시 시작하고 마무리할 올해. 열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 딸애에게는 아주 특별할 것이다. 집으로 오면서 뭔가 뿌듯한듯 딸애가 말한다. "와, 고등학교 3년을 한 군데 학교에서 보냈다아~." 잦은 이사로 초등학교 세 군데와 중학교 두 군데를 다녔던 감회가 떠올랐나 보다. '너는 3년이 아니라 4학년까지라고 생각해야 된다'고 하니, 오늘 졸업에 엄마만 온 것이 못내 서운한 듯 딸애가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꼭 들어가겠다는 결심도 그 말에 묻어난 건 아닐까 싶었다. "알았어. 내년 입학식 때는 그럼 왕창 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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