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거듭되고 한 살 두 살 나이가 보태질수록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진다. 그래서 올핸 서울시정모니터에 도전을 해 보기로 마음 먹고 신청을 했는데 다행히 선정이 되어 올 1년 동안 모니터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
2일, 2008년 서울시 시정모니터 간담회가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강연과 함께 열린다는 초대장을 받고 아침 일찍 행사장으로 향했다. 건물 입구부터 안내원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간담회 장소로 들어섰다. 장내 분위긴 디너쇼 장을 연상케 했다. 둥근 원탁 위엔 번호표가 세워져 있고 입장 순서에 따라 지정된 자리에 앉도록 되어 있었다.
20세 이상의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한 시정모니터, 이렇듯 폭넓은 자격 때문인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부터 연세가 지긋하시고 백발이 성성한 70세는 훨씬 넘으셨을 분들이 의외로 많이 계신 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순간 인터넷에서 보았던 작자 미상의 감동적인 글이 생각나 옮겨보았다.
나는 퇴직 후"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3분의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 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면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 날!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다시 읽어도 가슴 뭉클한 채찍을 가하는 듯한 글이다. 그런데 연세가 지긋하신 저 분들은 어떤 마음에서 이 추운날 이른 아침에 이곳에 와 계신 것일까~ 궁금증과 함께 가벼운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저마다 특별한 동기가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는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때면 궁색하게 서울이라고 대답은 하지만 어릴 적 동무들과 뛰어놀던 곳은 육중한 아파트 건물에 묻혀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실향민 아닌 실향민이 되어버렸다.
고향이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모습 그대로이고 언제 어느 때 달려가도 따뜻한 마음으로 반겨줄 이가 있는 곳 일텐데, 나에게 있어 고향이란 단어는 낮설기만 하다. 하지만 서울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그래서 더 나이를 먹기 전에 내 고향이자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을 제대로 알고 좀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발전시키는데 미력하나마 힘이 되고자 시정모니터를 신청하게 되었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 5대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듣는 동안 머잖아 세계적인 문화의 도시로 탈바꿈하게 될 서울의 모습에 가슴이 벅찼다. 이어 오 시장은 ‘여성이 행복해야 남성도 행복합니다’라며 ‘旅行’이 아닌 여자가 행복한 ‘女幸’ 도시 만들기에도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힘주어 말할 땐 마치 나를 위한 정책인양 귀가 솔깃했다.
생활주변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불편 사례들을 토대로 정책을 수립하고 개선해 나간다는 것이 취지였다. 일례로 노후된 보도블록으로 인해 하이힐 굽이 틈새에 박히거나 걸려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보도블록 교체사업, 공공시설물에 여성화장실 수를 늘린다거나 심야에 귀가하는 여성들이 안심하고 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구체적이고도 피부에 와 닿는 정책들이어서 더 흥미로웠다.
이것 역시 모니터가 제안한 내용들이 정책에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시정모니터로 활동하게 될 1년 동안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데 열과 성을 다해 내 고향 서울이 파리나 런던, 뉴욕과 같은 세계적인 유명도시로 거듭나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