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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유산에 오르지 못한 사연

 서봉에서 바라 본 남덕유산
 서봉에서 바라 본 남덕유산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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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에서 남덕유산까지는 1.5㎞로 40분이 걸린다. 서봉에서는 내려가는 계단이 잘 나 있어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다. 계단 주위에는 산죽이 빽빽하게 분포되어 있다. 내려가면서 눈을 왼쪽으로 돌리니 덕유산 향적봉까지 앞으로 갈 백두대간 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약 30분을 내려가니 남덕유산으로 오르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곳은 서봉, 남덕유산, 삿갓봉으로 가는 갈림길로, 0.3㎞를 올라가야 남덕유산이다.

이곳에서 나는 잠시 망설인다. 그동안 산행으로 힘이 너무 빠져 삿갓봉 쪽으로 바로 가는 게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바로 가면 남덕유산에 오르는 힘을 조금은 축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산행을 하면서 어떤 고지를 포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남덕유산에 올라 남쪽으로 펼쳐지는 함양군의 산하를 조망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덕유산 종주 산행을 위해 마음을 접는다.

 월성치로 가다 보이는 가야산: 가운데 끝 높이 솟은 봉우리
 월성치로 가다 보이는 가야산: 가운데 끝 높이 솟은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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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남덕유산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고 자연스럽게 내가 산행의 선두가 된다. 이곳에서 월성치(일명: 월성재)까지는 1㎞ 남짓이다. 월성치는 동쪽의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와 서쪽의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를 연결해 주는 고개이다. 월성치로 가면서 보니 동쪽으로 멀리 가야산이 보인다. 또 온 길을 되돌아보니 남덕유산의 북사면도 아주 가까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남덕유 정상에 오른 우리 회원들의 움직임도  보인다. 비록 작기는 하지만.

한 20여 분 걸었을까? 나는 월성재에 도착한다. 이곳은 해발이 1240m로 앞으로 갈 삿갓봉까지가 2.1㎞이고, 우리의 최종 목적지 덕유산 향적봉까지는 13.4㎞이다. 이곳 월성재에서는 삿갓봉이 아주 가까이 보인다. 삿갓봉은 말 그대로 끝이 뾰족한 원뿔 모양의 산이다. 그런데 1,410m의 삿갓봉 정상까지 해발 170m를 수직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 더욱이 점심때가 가까워지면서 배도 조금씩 고프기 시작한다.    

삿갓재 대피소의 떡라면 점심이 맛있었던 이유

 삿갓봉 정상 표지석
 삿갓봉 정상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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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죽의 푸른 줄기도 보고 신갈나무의 줄기와 가지도 보고 수리취의 마른 꽃도 보면서 마지막 힘을 쏟아 붓는다. 평상시에 운동을 별로 하지 않은 벌을 여기서 받는 것 같다. 삿갓봉에 오르기 전 힘이 들어 쉬고 있는 동안 남덕유산에 올랐던 우리 일행 중 선두가 나를 추월한다. 한 마디로 대단한 체력이다. 뒤처지면 안 될 것 같아 바로 그들을 따라붙는다.

10여 분 정도 마지막 힘을 다해 산을 오르니 삿갓봉(1418.6m) 정상이다. 이곳에서의 조망 역시 서봉만큼이나 좋다. 우리가 지나온 서봉과 남덕유산이 가까이 보이고 그 너머 왼쪽 저 멀리 지리산 연봉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우리가 갈 무룡산에서부터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다시 동쪽을 보니 왼쪽으로 가야산이 그리고 오른쪽으로 황매산이 산줄기 속에 두드러진다.

 지난 여름 만났던 황매산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지난 여름 만났던 황매산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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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과 황매산은 지난 여름 답사차 다녀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가야산에는 유명한 해인사가 있고, 황매산에는 유명한 영암사지가 있다. 가야산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황매산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황매산은 봄에 철쭉으로 유명한 산으로 요즘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황매산 아래 자리 잡은 영암사지는 수려한 산세를 배경으로 널찍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꼭 가볼만 하다. 그곳에는 삼층석탑, 석등, 귀부 등 세 점의 보물이 있다. 그 중 특히 쌍사자석 등이 아름답다.

우리가 삿갓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점심을 준비할 대원들이 벌써 삿갓재 대피소로 내려간다.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고 음식을 준비하려면 20분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삿갓봉에서 삿갓재까지는 완전 내리막길이다. 눈쌓인 길을 뛰듯이 내려간다. 올해는 눈이 많이 와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는 산행이 불가능하다. 특히 내리막길에서는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일부 대원들은 아예 앉아서 미끄럼을 타는데 비닐포대를 다 준비해 왔다. 산사람들만이 할 수 있고 또 느낄 수 있는 재미다. 나도 이제는 다리가 풀려서인지 발만 옮기면 자동으로 걸어지는 것 같다.

 삿갓재 대피소에서 점심을 준비하는 대원들
 삿갓재 대피소에서 점심을 준비하는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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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삿갓재 대피소 건물이 보인다. 이제 제대로 쉬면서 점심을 먹고 에너지를 충전해야지. 삿갓재 대피소는 최근에 지어졌는지 본 건물 자체뿐 아니라 앞마당의  식탁과 화장실 등이 아주 깨끗하다. 사실 대피소라는 곳들이 관리가 잘 안 되어 형편없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대원들이 벌써 버너를 피워 떡라면을 끓이고 있다.

네 조로 나눠 각 조별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숟가락을 들고 3조를 찾아가 맛있는 떡라면을 국물과 함께 입에 넣으니 따뜻한 기운이 창자를 타고 내려간다.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찬 물만 마셔 속이 너무 차가워졌기 때문인지 따뜻한 음식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최근 먹어 본 떡라면 중 최고의 맛이다. 산행으로 인한 허기가 이렇게 식욕을 돋궈줄 줄이야. 먼저 도착해 이렇게 음식을 준비한 대원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숫갈만 들고 식사에 끼어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삿갓재 대피소 안내판
 삿갓재 대피소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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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조의 대원들도 다양한 메뉴의 음식으로 점심을 든다. 라면에 김밥을 넣질 않나, 밥을 말아 먹질 않나, 누룽지를 먹질 않나 정말 다양한 점심식사이다. 그래도 기본은 모두 라면이다. 가장 간단하게 가장 빨리 해결할 수 있는 식사이기 때문이다. 이번 덕유산 종주에서는 시간관리가 아주 중요하다. 육십령에서 향적봉까지 25㎞를 약 10시간 정도에 주파해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산행 25㎞, 이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체력, 팀워크, 치밀한 계획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무룡산의 무룡은 무슨 뜻일까?

 삿갓재 쪽에서 바라 본 무룡산: 왼쪽이 정상이다.
 삿갓재 쪽에서 바라 본 무룡산: 왼쪽이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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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재 대피소가 육십령에서 향적봉까지 이어지는 덕유산 종주길의 중간쯤에 해당한다. 점심을 먹고 체력을 보충한 나는 대원들보다 조금 먼저 출발한다. 이곳에서 해발 1492m 무룡산까지는 2.1㎞이다. 우선 무룡산까지가 일차 목표이다. 시간상으로는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잘 될지 모르겠다.

멀리서 보는 무룡산은 두리뭉실하고 둥글둥글하게 생겼다. 지나온 봉우리처럼 가파르지 않아 수월해 보인다. 무룡이라는 이름의 한자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용(龍)자가 용을 말하는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덕유산 주릉을 용의 꿈틀거림으로 볼 수 있고, 무룡산이 중간을 넘어 머리 쪽으로 향하는 첫 봉우리이기 때문이다. 무룡산 가는 길은 한 눈에 들어와 그렇게 어려워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길 역시 그렇게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무룡산 가는 길의 나무 계단
 무룡산 가는 길의 나무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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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하고 바로 움직여서인지 숨이 꽤나 차다. 그래도 몸에 힘이 생겨 걸을 만하다. 가다 보니 눈 위에 수리취 꽃도 보이고 가까이에 나무 계단도 보인다. 계단에는 고무판을 깔아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놓았다. 겨울 산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나무계단을 올라 한 봉우리에 도달하니 저 아래 황점마을로 내려오는 도로가 골짜기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그 오른쪽으로는 가까이 삿갓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 남덕유산과 서봉이 보인다.

 황점 마을로 내려오는 골짜기 길
 황점 마을로 내려오는 골짜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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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것은 앞으로 보이는 무룡산이다. 이곳에서 다시 15분을 걸으니 무룡산 정상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곳은 의외로 사람이 많다. 그것은 남쪽과 북쪽에서 덕유산 주능선을 타는 사람들이 대개 이곳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무룡산 정상에서는 덕유산 주능선 남쪽 조망보다는 북쪽 조망이 가까이 보인다. 저 멀리 덕유산 향적봉이 하얀 눈에 덮여 있고 그 옆으로 철탑이 서 있다. 이곳 무룡산에서 향적봉까지는 8.4㎞로 4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이다.        

삿갓(골)재 대피소
 삿갓(골)재 대피소
 삿갓(골)재 대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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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재 대피소는 2층으로 된 최신식 건물이다. 1층에는 보일러실과 취사장이 있고, 2층에 숙소가 있다. 등산객들은 1층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2층에서 숙박을 해결한다. 숙소는 2층 침상으로 되어 있으며, 총 7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용료는 1박에 5000원이며, 침구류(담요) 대여료는 1장에 1000원이다. 숙소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라면이나 과자류 등 인스턴트 식품을 판매하며 캔이나 음료수 건전지 휴지 등 꼭 필요한 물건만을 판매한다. 사고를 우려해 술은 일체 팔지 않는다.

밤에는 심야전기를 이용해 난방을 하기 때문에 아주 따뜻한 편이다.

그리고 건물 외부에도 탁자가 마련되어 있어 대피소에 예약을 하지 않은 등산객들도 취사를 하거나 쉴 수 있다. 탁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화장실도 있어 이용이 가능하다.

삿갓재 대피소에서는 동남쪽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황점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가장 빠르며, 북서쪽 무주군 안성면 명천리 원통골로 내려갈 수도 있다. 이곳에서는 또한 핸드폰 통화도 가능하다.


#남덕유산#월성치#삿갓봉#삿갓재#무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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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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