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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양산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종점인 부산 장산까지 다녀왔다. 권사님과 오랜만에 만나 모처럼 저녁이라도 함께 먹기 위함이었다. 딴엔 차려입고 외출하기는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함께 나가는 일 외에는 별다른 외출이 거의 없었던 요즘, 이런 외출이 좀 낯설다. 하지만 좋았다. 2호선 지하철을 타면 종점에서 종점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양산에서 부산 장산까지 두 시간 정도 소요될 것을 예상했지만 약 1시간30분 정도 걸렸다. 지하철을 타자마자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 생각했던 것보다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며칠동안 마음에 힘든 일이 있어 고민하던 중 ‘집에만 있지 말고 부산에 한번 나오라’는 권사님 말에 내가 문제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보자. 막상 밖으로 나오니 무겁게 느껴졌던 문제가 정리되고 환기가 되어 좋았다. 전철을 타고 가는 1시간 30분 동안 생각하다가 책을 읽다가 했다. 해운대 장산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오고,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권사님에게 도착했다는 전화를 했다. 차를 타고 가까운데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은 이른 시각이지만 저녁을 먹기로 했다.

 

참대나무집 내부... 사장 부부의 개량한복 차림...따뜻하고 정갈한 실내가 보인다..
참대나무집 내부...사장 부부의 개량한복 차림...따뜻하고 정갈한 실내가 보인다.. ⓒ 이명화
 
실내... 병풍과 수석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실내...병풍과 수석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 이명화

 

우리가 찾은 곳은 권사님이 예전에 자주 갔었다는 ‘참대나무집’이었다. ‘참대나무집’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깔끔하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벽을 둘러친 병풍과 그 앞에 놓여진 수석들, 옛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메뉴판에는 ‘대나무통밥정식 1만원, 영양돌솥밥 정식 1만원, 유황 오리훈제바베큐 3만5000원, 생유황오리불고기 3만5000원, 보쌈(大)3만5000원, 보쌈(小)2만5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샐러드.. 이 샐러드는 위에 유자차를 얹어 특이했다...
샐러드..이 샐러드는 위에 유자차를 얹어 특이했다... ⓒ 이명화
대나무통밥 수저를 싼 천...이 마음에 들었다...
대나무통밥수저를 싼 천...이 마음에 들었다... ⓒ 이명화
대나무통밥 반으로 잘랐다...개인적으로는 잘라서 먹는 것보다 대나무 안에 있는 그대로 먹는 것을 좋아한다.  잘라서 먹어보았다. ^^
대나무통밥반으로 잘랐다...개인적으로는 잘라서 먹는 것보다 대나무 안에 있는 그대로 먹는 것을 좋아한다. 잘라서 먹어보았다. ^^ ⓒ 이명화

 

우리는 똑같이 대나무통밥정식을 주문했다. 한지를 깔아놓은 낮은 나무 식탁 위에 앞 상이 먼저 나왔다. 샐러드, 잡채, 해파리냉채, 계란찜, 부침개 등 맛깔스럽게 담긴 음식이 나오고 이어서 찹쌀과 쌀, 흑미, 잡곡으로 만든 대나무통밥과 된장국, 밑반찬이 나왔다.

 

참 오랜만에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대하기 편안한 사람, 그런 사람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될까. 하기야 그런 사람 내겐 또 있다.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어도 어쩌다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만 들어도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사람 있다.

 

먹음직 스럽고 이쁘죠?! ..
먹음직 스럽고 이쁘죠?!.. ⓒ 이명화
참대나무집 대나무통밥 앞상이 나오다...
참대나무집대나무통밥 앞상이 나오다... ⓒ 이명화
대나무통밥 정식 반찬이 나왔다...
대나무통밥정식 반찬이 나왔다... ⓒ 이명화

 

우리는 그동안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궁금했던 것들도 많았기에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권사님은 내가 힘들 때 따뜻한 밥을 자주 사주었기에 오늘은 내가 밥을 사기로 했건만, 오늘도 역시 권사님이 사신다. 모처럼 만났는데 밥만 먹고 가기엔 너무 아쉬웠던 우리는 밖으로 나와 부산 해운대 달맞이 고개로 차를 돌렸다.

 

거리엔 이미 어둠이 출렁이고 있었다. 달맞이고개에 자주 온다는 권사님이 잘 아는 찻집으로 들어갔다. 분위기는 좋은데 담배연기가 싫어서 밖으로 나와 그 옆에 있는 레스토랑으로로 들어갔다. 오렌지주스, 체리주스 두 잔을 주문하고 제법 긴 시간동안 묵은 회포를 풀었다. 찻값은 내가 지불했다.

 

레스토랑... 조용한 곳에 앉아 ...
레스토랑...조용한 곳에 앉아 ... ⓒ 이명화

 

다음에 또 만나자고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시간과 마음을 내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곳에 서로 살고 있지만, 그게 쉽지 않은 것이 우리들 대부분의 살아가는 모습들이다. 사람은 좋은 일이 있을 때 자주 만나는 것이 좋지만 대부분 안 좋은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어 혼자 해결하기 힘들 때 그럴 때 꼭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살아가면서 마음을 터놓고 속에 있는 것들까지 내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

........(중략).......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가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물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선선하며

그는 반드시 잘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한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지나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중에서-

 

예전에는 어떤 문제가 있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다가 혼자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후회하게 되었던 경험도 많았던 나는 근래에는 어떤 일이 있을 때 일부러 혼자 고민하지 않고 말을 하는 편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자신이 선택을 해야 하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말 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와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면 내 스스로가 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비로소 나를 내려놓게 되고 평안이 내 마음을 주장한다. 따뜻하고 온유한 성품을 가진 권사님은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좋은 의논 상대가 되어 준다. 그래서 언제나 고맙고 큰 언니처럼 편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읽다만 책을 다 읽을 작정으로 무릎 위에 펼쳤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지하철은 시내를 벗어나 호포역에 도착했고, 호포역에서부터 양산까지는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차창 너머 어둠 속에서 사람 사는 불빛들이 명멸하고 있었다.


#참대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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