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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난 민주춘의 탑
 윈난 민주춘의 탑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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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지막 밤이다. 윈난 여행의 끄트머리. 자정은 넘은 듯한데, 새벽 2시 30분 발 비행기를 타기 전에 잠깐 눈이라도 붙일까 싶어 게스트 하우스에서 뭉그적거려 보지만 도통 잠이 오질 않는다. 오피스텔을 개조한 숙소의 통유리는 밤거리의 불빛을 그대로 통과시킨다.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19층에서 내려다 보는 쿤밍(昆明)의 밤거리. 쿤밍역을 향해 뻗은 도로에는 아주 적지도 아주 많지도 않은 차들이 달리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호객행위를 하면서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선 채로 앉은 채로 길거리에서 뜨개질하던 여인들의 모습은 사라졌다.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침을 뱉던 사람들도, 매캐한 연기의 꼬치구이 노점상들도 모두 어딘가로 기어들어간 시간.

여행을 곧 마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이제야 간신히 이곳에 적응하기 시작했는데. 뭐가 맛있을까 길거리 음식을 기웃거리게 되고, 척 보면 대충 어떤 맛일 거라고 짐작하게 되고,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것들도 내 손톱의 때처럼 자연스럽게 여겨지기까지 열흘이 걸렸다.

쿤밍에서 시작해 따리와 리장을 거쳐 샹그릴라에 이르렀던 길들 그리고 다시 쿤밍으로 돌아오기까지 여정을 얼추 짚어만 보아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몽글몽글 감흥 피어나는 윈난 여행. 막 아지랑이 피어오를 듯 따뜻한 쿤밍, 바람에 휘감겨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것만 같던 따리, 등불이 꽃잎처럼 어룽지던 리장의 물길, 그리고 황량하면서도 한없이 다정하게 다가와 준 샹그릴라….

이제 떠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그리운 곳. 아쉬움에 가슴부터 싸아한 곳. 난 말똥말똥한 눈빛이 되어 금방 지나온 여행길을, 밤하늘 별 세듯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

 윈난 민주춘의 모소족 공연
 윈난 민주춘의 모소족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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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행 적응은 화장실부터

따리(大理)를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니 설레기 시작했다. 비로소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 어제(12월 14일) 새벽 쿤밍에 도착해 호텔에서 잠시 눈 붙이고 일어나 윈난민주춘(云南民族村)을 가볍게 둘러보는 걸로 첫날을 보냈다.

56개의 민족이 존재한다는 중국. 전체 인구의 91.6%가 한족이고 나머지는 55개의 그야말로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 서남부 지역이야말로 소수민족의 땅이라 할 만큼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있다고 한다.

윈난민주춘은 그 소수민족들의 삶을 재현해 놓은 곳인데, 여행 시작의 맛보기쯤으로 여기기로 했다. 인공적으로 모아 놓은 그런 소수민족의 삶이 아니라, 따리 얼하이에 터전을 잡은 바이족과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를 사용했다는 나시족을 직접 찾아 나선다고 생각하니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벌써부터 집이 그립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제 호텔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랬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하품하며 나타난 빈관의 여직원, 방문을 열자마자 소름 돋도록 끼쳐온 썰렁한 냉기.

중국이란 데가 실내 난방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아예 춥자고 작정한 곳 같다. 천정마저도 껑충 높고, 욕실도 공포 영화 속에 나오는 외진 병원의 창백한 병실 분위기다. 덜렁거리는 수도꼭지의 더운물은, 성질 급한 놈은 그냥 찬물 써라 하듯 한참만에야 나오고, 변기의 앉는자리는 차가운 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따뜻하게 데워진 친절한 비데에 길들어 있던 딸은 변기에 앉자마자 앗 뜨거라 하듯 앗 차거라 하며 벌떡 일어서야 했다. 연이은 딸의 비명! 누리끼리한 샤워 커튼에 시커먼 게 달라붙어 있다. 벌레 죽은 것이다. 필시 얼어 죽은 게지. 추위의 공포에 떨며 잠자리로 기어들긴 했는데 잠시 후, 침대에 깔린 전기장판은 뜨끈뜨끈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따리로 가는 버스 안의 화장실
 따리로 가는 버스 안의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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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리행 버스는 키가 높은 볼보(VOLVO)였는데 신기하게도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다. 버스 뒷문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하필 내 자리가 바로 그 맞은편이다. 남편과 딸은 앞자리에 앉고 나는 중국인 아가씨 옆에 앉았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아가씨는 휴대전화를 걸고 나서 빗을 꺼내어 긴 머리를 빗기 시작한다. 애인이라도 만나러 가는 걸까. 정성들여 머리를 빗고 묶고 다듬으며 한참 멋을 부린다.

나는 은근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영어 할 줄 아느냐고 먼저 말을 걸었다. 당황하는 눈치다. 짐작한 대로다. 할 줄 안다고 대답해 오면 내가 오히려 당황할 판. 이 아줌마 해외여행 몇 번 다니더니 용기백배다. 예전엔 누가 영어로 말 걸어올까 두려워 꿀 먹은 벙어리 시늉이더니, 이제 눈치부터 까고 접근이다. 사실은 중국인들이 어지간히도 영어를 모른다는 걸 하루만에 간파했다.

이번엔 친근하게 접근한다. 나 자신을 가리키며, '한구어런'. 어디서 주워들은 중국어를 한마디 던지니 한국인이라는 내 말에 그제야 아가씨는 경계심을 풀고 배시시 웃는다. 그때부터 나는 넉살 좋게 간단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성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중국인들은 잘 못 알아듣는 듯했다. 내가 가이드북의 한자를 가리키면 아가씨가 읽어주고 나는 따라하기를 여러 차례.

'이 얼 싼 쓰' 간단하게 숫자부터 아주 요긴하게 쓰일 것 같은 몇 마디.  얼마예요(뚜어샤오치엔), 너무 비싸요(타이꾸에이러), 좋다(하오), 나쁘다(부하오), 필요 없다(부야오), 못 알아 들어요(팅부동)….

아줌마는 어쩔 수 없다, '타이꾸에이러'가 절로 외워지는 걸 보면. 하지만 이중 제일 많이 사용한 말은 '팅부동'이지 싶다. 중국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우리가 외국인인 줄 알면서, 못 알아 듣는 줄 알면서도 줄기차게 중국말로 설득하고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팅부동, 팅부동'을 외치면 외국인이 중국말 하는 게 신기하다는 듯 씨익 웃으며 '팅부동?' 되받더니만 그래도 저 하고 싶은 말은 끝까지 읊어댔다.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고 사람들이 제법 그 화장실을 드나드는 걸로 보아 곧장 따리까지 가는 줄 알았는데 점심시간이 될 즈음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를 한다. 딸과 함께 휴게소 화장실로 뛰어갔다. 아무래도 버스 안 화장실을 사용하기는 좀 그렇지 싶다. 점잖게 앉아 있는 사람들한테 '나 화장실 갑니다'하고 신고할 일 있나. 더구나 움직이는 차 안에서 중심 잡으며 볼일 보기도 쉽진 않을 테고.

우리보다 앞서 휴게소 화장실로 들어간 여학생 하나가 탄식을 내뱉으며 우뚝 서버렸다. 우리 모녀는 호기심에 두 눈이 딱 마주쳤다. 여학생은 목적 달성은 제쳐 두고 바로 돌아서서 나와 버린다. 우리 모녀는 기대감에 들떴다.

 휴게소의 화장실(왼쪽)과 따리 고성 뒷골목의 화장실(오른쪽)
 휴게소의 화장실(왼쪽)과 따리 고성 뒷골목의 화장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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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말로만 듣고 책으로만 보던, 많은 여행자를 두려움에 벌벌 떨게 하는 그 악명 높은 중국의 화장실, 바로 그것이었다. 문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으니 부끄러움 많은 여학생은(알고 보니 그 여학생은 한국인이자 베이징 유학생이었다) 차라리 참기로 했나 보다.

그에 비해 우리 모녀로 말하자면, 무수하게 머릿속으로 그려 본 것에 대한 호기심 어린 확인쯤으로 받아들였다고나 할까? 아니 그걸 넘어서서, 드디어 겪어야만 할 것을 맞닥뜨린 듯, 예상했던 시험문제를 받아들기라도 한 듯 잘 해내야겠다는 성취욕구가 불끈불끈 솟을 지경이었으니.

우리 모녀는 서로 문짝이 되어 주면서 사이좋게 볼일을 보고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사진까지 찍고 나왔다. 이후 우리 모녀는 화장실 적응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간혹 한 줄로 뻥 뚫리고 칸막이만 처져 있는 곳에서는 대(代)를 이어 똥통에 얼굴을 처박은 <형제>의 이광두가 떠오르기는 했다. 그래도 우리가 겪은 화장실은 양반인 셈이다. 높든 낮든 칸막이는 있었으니 말이다.

중국 화장실에 왜 문이 없는가에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오래 전 똥 돼지를 키우는 구조다 보니 그렇다는 둥, 사회주의니 만큼 화장실에서 모의하는 일을 경계해서라는 둥, 성에 대한 신비감을 없애기 위해 등소평이 화장실 문을 없애라고 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아마도 중국 사람들에게 화장실은, 배설만을 위한 더럽고 지저분한 곳이라기보다는 잘난 놈이나 못난 놈이나 똑같이 기본적인 걸 해결하면서 서로 인사도 나누고 정보도 교환하는 자연스러운 곳인 듯싶다. 그렇게 마주앉은 채로 힘주며 볼일을 보다가 그 자세로 엉거주춤 걸어와 담배를 권하기도 한다는 걸 보면 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배설을 하는 건데 그게 뭐 그리 부끄럽고 숨길 일이냐, 가진 놈이나 못 가진 놈이나 먹은 만큼 뱉어놔야 하는 법, 먹는 것만큼 싸는 일도 자연스러운 일인데 돈 들여 문짝은 뭐하러 다나, 뭐 이런 정도로 나름 해석해 본다. 따지고 보면 장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 드러난 화장실이다 보니 치한이나 범죄에 대한 두려움도 덜할 듯싶다.

우리 가족은 기특하게도 사흘 나흘이 지나면서 화장실에 대한 거부감을 완전히 날려 버렸고, 심지어 여행이 끝나갈 무렵엔 화장실 문이 답답하다고 느낄 정도가 되었다. 특히 5학년짜리 딸애는 낯선 곳 화장실에서 엄마를 앞에 세워 놓고 문은 활짝 열어놓은 채 볼일을 보았으니 아이들의 적응력은 놀랍다. 우리가 전혀 다른 문화 속에 젖어드는 데에 열흘도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물론 대변은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바이다.

세 시간 넘게 달리던 버스가 따리에 도착하자, 모국어 외치듯 '시에시에 자이지엔'(감사해요 잘가요)하는 이 아줌마의 능청스러움에 옆자리의 아가씨가 더 쑥스러운 듯 총총히 사라져 버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달려드는 삐끼 아줌마들, 숙박지 명함을 건네느라 난리들이다. 그들을 헤치고 빠져나오니 성큼 다가선 하늘과 사뿐히 내려앉을 것만 같은 흰 구름. 해발고도 2100m라는 걸 새삼 떠올린다.

서늘하게 와 닿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온몸을 휘감고 도는 듯한 부드러운 바람의 질감이 공기보다 더 투명하게 느껴진다. 풍화설월(風花雪月)의 따리라는 말이 실감 났다. 따리 남부 샤관의 바람, 북부 샹관의 꽃, 서부 창산의 눈, 동부 얼하이의 달이라더니, 우리 가족이 다다른 곳은 바로 샤관 버스 터미널이었다.

 따리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따리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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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7년 12월 13일에 떠나 중국 윈난을 여행하고 12월 24일에 돌아왔습니다.



#중국 윈난여행#중국 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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